등록 : 2017.06.29 18:52
수정 : 2017.07.04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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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개막해 화제 속에 열리고 있는 유니온아트페어 2017 전시장 모습. 서울 인사동 피맛골 입구 뒷골목의 낡은 건물들을 리모델링해 차린 청년작가들의 작품 잔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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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빠고다 가구점에 ‘유니온아트페어’ 개막
건물주가 ‘한 판 놀아보라’ 공간 내줘
작가 166명 10만~100만원대 작품 전시
낡은 공간에 젊은 피…신선한 비엔날레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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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개막해 화제 속에 열리고 있는 유니온아트페어 2017 전시장 모습. 서울 인사동 피맛골 입구 뒷골목의 낡은 건물들을 리모델링해 차린 청년작가들의 작품 잔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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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었던 공간에 죽더라도 낡은 판 거부하는 젊은 꾼들 도전을 집어넣었더니 판도, 모종도 더불어 싱싱하게 살아난다.”
공공미술전문가인 박삼철 서울디자인연구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최근 반색하며 이런 소감을 남겨놓았다. 그가 호평한 곳은 서울 인사동 피맛골 들머리에 최근 차려진 젊은 작가들의 직거래 장터다. ‘유니온아트페어 2017’로 이름붙여진 이 독특한 작품 장터가 소비유흥지대로 전락하며 미술이 사라졌던 인사동 거리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지난 23일 개막한 이 장터 행사는 승동교회를 낀 피맛골 들머리의 옛 ‘빠고다’ 가구점, 노래방 건물과 후미진 골목길을 리모델링한 공간에서 소규모 비엔날레 같은 얼개로 열리고 있다. 올해 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 출품작가인 이완씨와 청년작가 최두수씨 등이 만든 극동예술연합이란 청년작가 모임이 청년작가를 중심으로 원로, 중견, 소장작가들까지 모아 166명이 출품한 작가 직거리 아트페어를 꾸며놓았다. 지난해 첫회를 이태원 블루스퀘어 공간에서 할 때보다 규모가 3배 가까이 커졌다고 한다.
돌아가는 원형계단이 놓인 들머리 1~3층 폐가구점 건물 안에는 거친 시설물 철거 흔적이 보이는 벽체들을 배경으로 젊은 작가들의 모호하고 몽롱한 상상력 잔치가 펼쳐졌다. 물속에 가라앉는 세월호의 선체를 배경으로 풀어낸 차지량 작가의 <안녕을 위한 파도조각> 연작과 패기 어린 회화적 상상력을 보여주는 킹홍 작가의 <활주로에서>, 생리혈이 묻은 속옷으로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선물을 만든 박가인 작가의 작품, 머리 위에 책더미를 올려놓고 종이에 쓰인 글을 위태롭게 읽는 정주희 작가의 영상물 등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방 구석에는 원로작가 김정헌, 중견 사진가 구본창, 만화 거장 허영만씨 등이 행사를 위해 출품한 소품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삼성전자가 개발해 협찬한 액자형의 동영상 스크린도 눈맛이 유난스러웠다. 거칠고 넓은 옛 건축물 공간에 알려지지 않은 군소작가들의 다기한 장르 작품들이 줄줄이 펼쳐지는 얼개는 신선하다. 수천만원대 작품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의 작품 가격이 10만~100만원대의 저가이고 화랑가 거래처럼 중간마진을 붙이지 않았다. 화랑들의 경직된 전시거래 관행에 식상한 애호가나 일반 관객들에게는 특별한 체험이라 할 만하다.
행사를 기획한 최두수, 이완 작가는 “전시와 판매 기회를 좀처럼 마련하지 못하는 요즘 청년세대 작가들이 제대로 놀아볼 수 있는 판을 마련해보자는 게 가장 절박한 과제였다”고 말한다. 전시장을 내주는 것 외엔 설치, 운반 비용 등을 출품작가들이 대부분 부담해야 하는 형편인데도, 많은 작가들이 전시에 호응한 것은 이런 놀이터에 대한 절박한 욕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이들은 강조했다.
유니온아트페어는 자생적인 행사라고 할 수 없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공공지원금 3000만원에, 폐가구점 건물을 사들여 재개발을 추진해온 한 디자인업체가 “판을 벌여보라”고 제안해 만들어진 마당이기 때문이다. 화랑협회를 비롯한 기존 화랑업자들이 화랑을 끼지 않은 작가·관객 직거래 장터가 미술품 유통질서를 교란할 수 있다며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부담이다. 화랑업자들은 최근 한국미술협회와 연 정책세미나에서 “장터 출품작가들은 화랑가 영입을 자제하겠다”며 은근한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원로작가들 구작이 시장에서 인기몰이를 거듭하는 현실 속에서, 작품 발표 공간을 마련하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요사이 청년작가들에게 이 장터는 새로운 활로다. 그렇지만 연례적인 장터로 정착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들쭉날쭉한 출품작 수준에 대한 미술판의 눈총을 불식해야 한다는 과제와 더불어, 행사의 정체성과 자생력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그들 앞에 놓여 있다. 7월2일까지. www.facebook.com/unionartfair.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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