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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7.02 11:41 수정 : 2017.07.02 20:10

앙드레 케르테스의 초창기 대표작 중 하나인 <수영하는 사람>(1917). 수영장 위쪽에서 시선을 내리꽂으며 물빛에 어른거리는 수영자의 몸을 포착한 혁신적인 구도를 보여준다. 1930년대 그의 성가를 본격적으로 알린 <왜곡> 연작의 효시가 된 명작이다.

헝가리 출신 사진대가 앙드레 케르테스 회고전
<왜곡> 연작 등 풍경, 몸에 대한 전위적 감성적 해석 특출
브레송 등 많은 대가들에게 영향 준 사진가들의 ‘멘토’

앙드레 케르테스의 초창기 대표작 중 하나인 <수영하는 사람>(1917). 수영장 위쪽에서 시선을 내리꽂으며 물빛에 어른거리는 수영자의 몸을 포착한 혁신적인 구도를 보여준다. 1930년대 그의 성가를 본격적으로 알린 <왜곡> 연작의 효시가 된 명작이다.
1926년 서구 화단에서 기하학적인 색면 그림으로 주목받던 네덜란드 거장 피트 몬드리안(1872~1944)은 프랑스 파리 작업실로 찾아온 30대 사진가와 특별한 인터뷰를 하게 된다. 대화보다 작업실 안을 이리저리 훑느라 여념없던 사진가의 눈길은 오각형 탁자 위의 정물들에 확 꽂혔다. 재떨이 안의 파이프와 그 옆에 놓인 안경 두 개. 탁자의 일부와 바깥의 어두운 공간을 배경으로 부리나케 정물을 찍은 사진가는 일감을 준 언론사 편집장에게 이 정물 사진을 내밀며 말했다. “그게 몬드리안이오. 얼굴보다 더 그를 잘 말해주지요.”

이 사진이 바로 20세기 세계 모더니즘 사진사의 명작 중 하나인 <몬드리안의 안경과 파이프>다. 찍은 이는 뒤틀리고 과장된 여체 누드 사진 <왜곡> 연작으로 널리 기억되는 헝가리 출신의 거장 앙드레 케르테스(1894~1985). 실제로 몬드리안의 인터뷰 기사에 대표사진으로 실려 더욱 유명세를 탄 이 사진의 실물과 그가 헝가리, 프랑스, 미국을 거치며 70여년간 작업한 주요 작품 189점이 한국을 찾아왔다. 작가가 말년 프랑스 문화부에 기증한 원판 필름들을 인화한 작품의 프린트들로 채워진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의 ‘앙드레 케르테스’ 회고전(전시제목은 ‘앙드레 케르테츠’)이다.

케르테스는 상식적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 괴짜의 면모를 지닌 거장이었다. 평생 어떤 유파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빛으로 글을 쓴다’는 소신 아래 자기만의 시각을 표현하는 자유인으로 유럽과 미국을 떠돌았다. 인간적 감성으로 일상과 사건들을 해석하는 르포르타주 사진에 탐닉했지만, 한편으로는 1920년대부터 거울, 물, 그림자 등의 광학 요소와 위나 아래쪽에 시선을 두는 하이-로 앵글 등의 혁신적 기법을 시도했던 전위주의자였다. 몸과 일상풍경, 사물들의 존재성 자체를 부각하는 그의 실험적 작품들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로버트 카파 같은 사진대가들과 철학·미학비평가 롤랑 바르트, 한국의 1950~70년대 살롱사진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우리가 했던 것은 모두 그가 처음 했던 것들”이란 브레송의 고백대로 그는 사진가, 미학자들의 사진가이자 멘토였다. 첨단 사진기기들을 신속하게 입수한 얼리어답터로서 사진만이 보여주는 선구적인 이미지 작법들을 시도하고 전파한 ‘원조’였던 셈이다.

케르테스의 대표작 중 하나인 <몬드리안의 안경과 파이프>(1926).
전시는 다기한 지층을 이룬 케르테스의 70여년 사진 인생을 1910년대 헝가리 시절의 일상풍경·전쟁 사진들과 뜨거운 열정을 쏟았던 1920~30년대 파리 시절의 실험작들, 현지의 냉대 속에서도 독특한 개성을 밀고 나갔던 1940~80년대 미국 시절 작품들을 통해 고루 보여준다. 100년 전 작품인, 1차대전 당시 병사들의 망중한이나 헝가리 민중과 집시들의 생활상을 찍은 사진들은 핸드헬드 카메라를 들고 뛰거나 디지털카메라로 포착한 듯한 현장감이 여전히 생생해서 놀랍고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물빛에 아롱거리는 수영하는 사람을 위쪽에서 찍거나 물에 비친 남자의 얼굴을 위아래를 뒤바꿔 포착한 작업들은 1930년대 ‘왜곡’ 연작의 효시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몬드리안의 작업실 물건들과 작업실 건물 들머리에 놓인 꽃병과 주위 실내, 묵직한 물성을 보여주는 포크를 놓은 파리 시절 작업들은 모더니즘 사진의 최고 진수로 놓칠 수 없는 명작들이다. 미국 시절 워싱턴, 뉴욕의 도시 일상과 건물, 사람들을 찍은 작품들은 인간적 감성과 물성을 조형적으로 탐구하는 케르테스 사진의 정체성이 일관되게 계속 관철됐다는 것을 일러준다. 카라바조, 페르메이르, 루벤스 같은 회화사 거장들의 화면 효과 등이 간간이 나타나고, 브레송, 로드첸코 등 그와 영향을 주고받은 동시대 작가들의 명작에서 눈에 익은 엿보기, 내려다보기의 시선, 사선형 구도 등을 색다르게 발견할 수 있다는 것도 감상의 즐거움으로 와닿는다. 9월3일까지. (02)722-3729.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성곡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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