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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16 17:11 수정 : 2005.11.17 14:38

무대위아래사람들

큰배우 꿈은 버렸지만 꼭 필요한 ‘소품’ 됐어요

무대소품은 극적 효과나 사실성을 높이고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구실을 한다. 때로는 무대소품 자체가 무대 위의 연기자 못지 않은 극적 비중을 차지하기도 한다.

국내 최고 연출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오태석(65)씨가 이끄는 극단 목화레퍼토리컴퍼니는 공연마다 독특한 무대소품으로 소문난 연극단체이다. 이 극단의 14년차 고참 단원인 조은아(39)씨는 대학로 연극판에서 배우보다는 무대소품 전문디자이너로 더 알려져 있다. 실제로 극단 목화의 공식 직함도 상임무대소품디자이너.

“목화가 다른 극단보다 소품을 많이 쓰는 까닭은 단순히 비주얼의 구실뿐만 아니라, 작품의 장면 전환이 빠르고 장소 전환도 많기 때문입니다. 소품은 관객들에게 그런 것을 알려주는 게시판이나 정보제공의 역할을 하죠.”

사범대에서 가정교육과를 전공했으나 연극반 활동에 더 바빴던 그는 1992년 극단 목화를 찾아가 이듬해 오태석 작·연출의 연극 <백마강 달밤에>로 처음 무대를 밟았다. 그 뒤로 20여편에 얼굴을 비쳤지만 배우로서는 그리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던 그가 생소한 소품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된 것은 1995년 <로미오와 줄리엣> 초연이 계기가 되었다.

목화는 공연마다 배우들이 간단한 무대소품을 직접 만들어 썼는데 평소 그의 눈썰미와 손재주를 유심히 봐왔던 오태석씨가 가장 까다로운 무대소품인 체스제작을 맡겼다. 오태석씨는 작품에서 몬테규 집안과 카플렛 집안의 반목을 사람 크기만한 킹과 퀸, 룩, 나이트, 비숍 등을 이용한 대형 체스게임으로 비유하려 했다.

“어떤 재료를 사용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그러다 스티로폼이 떠올라 김병춘 선배와 함께 열선으로 잘라서 천을 씌우고 색을 입히고 광택제를 발라서 만들었더니, 선생님께서 껄껄껄 웃으시면서 “그렇게 하면 되겠네”라고 하셨어요.”


그때 공연 팸플릿에서 그의 이름 앞에 소품 담당이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그 뒤 그는 1996년 <서푼짜리 오페라>를 끝내고 배우보다는 전문적인 무대소품디자이너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극단 목화를 뛰쳐나왔다. 3년 동안 전문적으로 소품디자인에 매달리자 자신감이 붙었다. 97년에는 세계무대미술전시회에서 그룹전을 열어 ‘알’이라는 설치미술을 선보였다.

그러다 98년에 목화 배우였던 홍원기씨 연출의 <천마도>에서 소품을 맡으며 자연스럽게 친정으로 복귀했다. 종이죽을 이용해 천마총에서 갓 발굴된 것 같은 녹슨 칼과 창, 헤진 덮개 천, 녹슨 왕관, 깨어진 청동거울, 녹슨 화로 등을 만들었는데 오태석씨의 눈에 들었던 것이다.

그는 “무대소품이란 무대에 있을 때에 가장 소중한 것이어야 하며, 배우에게 결정적인 정서를 불러일으킬 때까지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무대소품을 만들 때 “생활에 가까운 것은 배우에게도 객석에게도 가깝다”는 오태석씨의 지론에 따라 합판, 스티로폼, 밀가루 푸대, 쌀 가마니, 박 등 생활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환경친화적인 재료를 쓴다.

그는 2003년 <앞산아 당겨라 오금아 밀어라>에서 단역으로 다시 무대에 복귀한 데 이어 오는 24일부터 12월7일까지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올리는 오태석 작·연출의 신작 <용호상박>에서도 단역 해남댁으로 출연한다. 매일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총연습이 끝나고도 공연에 쓸 대나무 숲과 호랑이, 까치, 닭, 해마, 말향고래 등 무대소품까지 책임지다보니 몸이 파김치가 되지만 마음은 행복하다.

“한때는 인기있는 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지금은 무대에서 배우 못지 않게 꼭 필요한 역할을 하는 소품 제작에 더 보람을 느낍니다. 그렇지만 대배우의 꿈은 버렸더라도 배우생활만은 포기하지 않고 즐겁게 하고 싶어요.”

글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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