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7.17 16:14
수정 : 2017.07.17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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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주 디자이너의 전시장 모습. 2000년대 이후 드라마 등장인물들의 일대기를 적은 도표와 극에 나온 소품들 그림을 나란히 배치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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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끄는 젊은 디자이너의 작가주의 전시들
홍은주, 드라마 주인공 삶 재구성 ‘우리의 욕망’ 드러내
노일훈, 광섬유 샹들리에 수작업으로 첨단과 전통 접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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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주 디자이너의 전시장 모습. 2000년대 이후 드라마 등장인물들의 일대기를 적은 도표와 극에 나온 소품들 그림을 나란히 배치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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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이후 국내 방송 드라마들을 열심히 시청해온 ‘덕후’(마니아)들이라면, 이 전시장은 눈 빛내며 추억의 퍼즐놀이를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서울 서촌의 ㄷ자 한옥에 자리잡은 대안전시공간 시청각. 요사이 이곳에 가면 천장 가까운 벽 위에 ‘김삼순’, ‘장준혁’, ‘안희재’, ‘이서연’, ‘채송하’, ‘윤서래’ 같은 어디서 보고 들은 듯한 인물들의 일대기 연표들이 줄줄이 붙어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 아래엔 군더더기 없는 인공적인 선으로 재현한 실내 사물의 풍경들이 그려진 패널판들이 놓여있다.
이런 풍경으로 전시를 구성한 그래픽 디자이너 홍은주씨의 개인전 ‘거의 확실한’은 최근 10여년 사이의 국내 방송판 드라마들을 생경한 방식으로 복기해낸다. 2000년대 이후 인기를 모은 주요 드라마 11편에서 저마다의 개성과 고뇌를 안고 연기했던 다기한 등장인물과 사물들을 각기 따로 떼어내, 작가만의 의도와 감각으로 재구성했다. 등장인물들은 방송 내용을 근거로 그들의 출생과 생애의 내력, 심지어 사업 실패와 사망 당시 상황까지 일목요연하게 드러난다. 드라마 속 인물들의 삶은 전시장에서 브리핑식 도표로 정리돼 ‘객관적으로 기록된 삶’의 실체로 ‘표현’된다. ‘김삼순-프랑스 르코르동 블루 제과과정 이수… 아버지 심장마비로 사망, 귀국… 제과점 경영상태 흑자 전환’, ‘장준혁-명인대병원 외과 부교수, 잠실롯데캐슬 골드 입주…’ 같은 내용에서 보이듯 영문 모르는 관객들에겐 비교적 잘 나가는 한국인들의 삶을 정리한 일대기로 읽히기 십상이지만, 실제로는 허구의 내용이다. 그러니까, 픽션의 드라마 속 인물들의 연대기를 짐짓 냉정하게 정리함으로써 실제로는 이 시대 한국인의 욕망과 삶의 진실을 반영한 논픽션의 기록을 만들어낸 것이다.
꽃무늬 수납상자, 냉장고, 이케아 선반, 분리수거 가방, 석고상 같은 드라마 속 실내 소품들 모습을 그래픽처럼 떠낸 패널판의 이미지들도 드라마의 실제 방영 장면과는 완전히 다른 냉랭한 사물로 다가온다. 디자인의 감각과 구상으로 2000년대 드라마에 펼쳐진 한국 시대상을 새롭게 해부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전례없는 디자이너의 창의적인 작가주의를 보여주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2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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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일훈 작가가 선보인 조명 설치작품 '파라볼라 파라디소'. 광섬유에 발광다이오드(LED)소자를 꿰어 신비스런 빛의 세계를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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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 플랫폼엘에서 열리고 있는 노일훈 디자이너의 신작전은 첨단과 전통수공예의 접맥이란 또다른 발상의 전환을 보여준다. 밀라노가구박람회 등 국외 무대에서 크게 주목받으며 최근 프랑스 퐁피두센터가 작품을 소장하기도 한 그는, 이번 전시에서 빛나는 실, 빛나는 그물이란 개념을 인상적으로 반영한 작품들을 내놓았다. 광섬유 탄소섬유를 정교하게 직조해 늘어뜨리거나, 나뭇가지처럼 엮어서 짜고 발광다이오드(LED)를 연결해 신비스럽게 빛나는 구조물과 샹들리에 등이 돋보인다. 번개, 물결, 나뭇가지 등 최적화된 완성도를 보여주는 자연 모티브를 첨단기법으로 가공한 소재에 풀고, 이를 다시 전통 짚, 지승공예 등에서 보이는 정교하고 집요한 수작업으로 구현해냈다. 거대한 건축물을 짓는 것은 아니지만, 건축적 작업방식 또한 함께 녹여넣었다는 점에서 숙고를 거듭하며 응결된 과정의 디자인 진수를 엿볼 수 있는 전시다. 9월18일까지.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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