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가 돌아왔다. 여섯 번째 앨범 <블랙>과 함께, 무려 4년 만이었다. 세간은 공백이 무색할 정도로 뜨겁게 반응했다. 게스트가 필요한 예능 프로그램이라면 어디든 이효리를 섭외 1순위로 올렸고, 결혼 후 베일에 싸여 있던 제주 ‘소길댁’의 일상을 허심탄회하게 공개한 ‘효리네 민박’도 시작했다. 화제성은 수치가 증명했다. 티브이(TV) 화제성 분석기관 ‘굿데이터 코퍼레이션’에 따르면 <블랙>이 공개된 7월 1주차 텔레비전 출연자 화제성 순위 1, 2위는 <라디오 스타>(문화방송)와 <해피투게더>(한국방송2)로, 모두 이효리가 출연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세상은 온통 이효리로 왁자지껄했건만, 정작 그가 ‘내 마음을 진정성 있게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는 앨범에 대한 이야기는 조용했다. 아니 조용했다기보다는 초라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그나마 한 줌 남짓 되는 평들은 “이효리가 10곡 중 8곡을 작곡했다”, “‘텐 미닛’, ‘유 고 걸’이 그립다”는 정도의 정보값 없는 얘기들을 쏟아냈다. 그에 따른 네티즌 댓글은 “이제 한물 갔다”와 그에 대항하는 “곡도 쓰는 아티스트 이효리”의 진흙탕 싸움에 그쳤다.
딱히 낯설지는 않다. 음악적 완성도에 비해 스타성이 높은 음악가들이 앨범을 낼 때마다 인터넷에서 자동완성처럼 만나게 되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이돌 출신’이라는 꼬리표까지 붙으면 더할 나위 없다. 올 상반기 정규앨범 <팔레트>로 최고의 화제를 모았던 아이유의 예를 떠올려보자. 언론은 ‘아이유 첫 타이틀곡 작곡, 전곡 작사’에 방점을 찍었고, 댓글란은 온통 “‘좋은날’, ‘너랑 나’가 전성기였다”와 “아티스트 아이유”의 전쟁으로 뒤덮였다.
마치 판박이처럼 닮은 이 반응은 음악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사라진 시대를 슬프게 반영한다. 얕디 얕아진 시대는 고작 음악성과 스타성의 올바른 가치조차 수월하게 구분해내지 못한다. 높은 음악성이 스타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스타성이 음악성을 외면하며 생긴 사고의 누수는, 누가 어떤 곡을 썼느냐가 아닌 얼마나 많은 곡을 썼느냐를 더 중요하게 여기게 만들었다. 스스로 곡을 쓴다는 사실만으로 종이 감투를 부여했다. 음악에 눈 뜬 스타들이 선보인 재능 가운데 오히려 지금보다 더 주목받아야 할 자기연출과 퍼포먼스에 대한 논의는 매번 시작종도 울리지 못한 채 곧장 과대평가의 늪에 빠져버렸다.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다.
어느 시대건 스타는 있었다. 그러나 스타가 직업인으로서의 생명연장을 위해 스스로를 연구하고 곡을 쓰기 위해 애를 쓰는 시대는 지금이 유일하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포착하지 못한 채 좋았던 시절만 돌림노래처럼 반복하거나 곡을 쓴다는 사실만으로 기립박수를 치는 태도는 구태다. 시대의 변화에 발 맞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남는 건 오로지 도태뿐이다.
초라한 탈락을 피하기 위해 부지런히 시대에 발 맞춰 본다. 이효리의 <블랙>은 솔로로 독립한 이후 줄곧 힙합을 비롯한 흑인음악을 뿌리 삼아 활동해 온 그의 외길인생에 걸맞은 앨범이었다. 좀더 꼼꼼한 디렉팅이 필요한 보컬, 깊은 고민의 흔적이 엿보이는 편곡에 비해 다소 수수한 곡 만듦새는 아쉬웠지만 아쉬움이란 다음이 궁금한 이들에게만 부여되는 아직 긁지 않은 복권이다. 논란의 여지는 있을지언정 마냥 허투루 볼 수 없는 단단한 구석이 있는 앨범이었다. 여기에 오직 이효리만이 가능한 ‘블랙’의 뮤직비디오와 ‘화이트 스네이크’ 무대가 가진 폭발력이 더해진다. 감가상각의 가치가 있는 시도였다. 자, 이 글과 얽힌 모두는 최소한의 최선을 다했다. 이제는 당신 차례다.
김윤하 음악평론가
[관련 영상] <한겨레TV> | 잉여싸롱 시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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