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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7.28 08:00 수정 : 2017.07.28 08:00

싱어송라이터 노선을 본격화한 이효리는 과거에 자기 자신을 주제로 삼아 과감한 연출을 하는 일종의 콘셉트 프로듀서로서 케이팝 역사의 한 시대를 일궜다. 그가 당시에 작곡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성취를 누가 폄하할 수 있을까? 사진은 지난 4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 새천년기념관에 열린 이효리의 새 음반 <블랙> 기자간담회. 키위미디어그룹 제공

[미묘의 아이돌 마인드맵]

싱어송라이터 노선을 본격화한 이효리는 과거에 자기 자신을 주제로 삼아 과감한 연출을 하는 일종의 콘셉트 프로듀서로서 케이팝 역사의 한 시대를 일궜다. 그가 당시에 작곡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성취를 누가 폄하할 수 있을까? 사진은 지난 4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 새천년기념관에 열린 이효리의 새 음반 <블랙> 기자간담회. 키위미디어그룹 제공
아이돌은 흔히 ‘남의 곡’을 부르는 이들로 인식된다. 모든 분야를 전문가들이 담당해 만들어지는 존재이다 보니, 이는 적잖이 사실이다. 노래와 춤에 재능이 있고 외모도 훌륭한 이가 꼭 작곡도 잘하란 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작곡을 선보이며 인상적인 활동을 펼치는 아이돌은 점차 많아지고 있다. 이들은 음반 수록곡 일부를 작곡하기도 하고, 꾸준히 타이틀곡을 담당하기도 한다. 때론 종현(샤이니), 지코(블락비), 핫펠트(예은, 원더걸스)처럼 탁월한 성취를 이루면서 그룹과 솔로 활동을 병행하기도 한다.

‘작곡돌’이 부쩍 많아진 건 역시 지드래곤(빅뱅)이 괄목할 성과를 거두면서부터다. 특히 보이그룹을 중심으로 작곡하는 멤버가 있는 그룹이 부쩍 늘어났다. 사람의 매력과 재능을 길러내는 아이돌 산업은 개인의 희생을 대가로 한다. 그렇다면 그 과실을 바탕으로 개인으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통제권을 쥐는 것은 어쩌면 모두에게 해피엔딩일 것이다. 아티스트로서의 성장, 분명 환영할 일이다.

다만, 아이돌 자작곡이 모두 훌륭한 곡은 아니다. 주위 프로듀서들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받는 경우도 흔한데, 가용 자원을 빌려서 더 나은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은 음악가로서 분명 미덕이다. 그러나 ‘전문가의 손길’로도 덮기 힘든, 초심자의 부족함이 그대로 노출돼 있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때론 진영(B1A4)이 작곡한 소녀온탑의 ‘같은 곳에서'처럼 조금 서툰 듯한 표정이 큰 매력이 되어 이를 모방하는 곡들이 쏟아지는 일도 있다. 하지만 그런 멋진 기적은 모두에게 벌어지진 않는다. 심지어는 훌륭한 아이돌이 엉성한 자작곡을 내놓을 때 그 아이돌과 프로덕션이 가진 완벽한 이미지가 오히려 망가지는 애석한 일도 있다.

적지 않은 경우, 아이돌 자작곡은 여전히 보도자료 속 허울 좋은 수사일 뿐이다. 이들이 좀처럼 인정받지 못한다면 이는 실제로 습작 수준의 작품이 많기 때문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사실 ‘자작곡’이란 흔한 단어조차도 여전히 많은 아이돌에게 작곡은 비전문적인 시도에 불과하다는 내외부의 인식을 반영한다. 자신의 작품을 ‘자작곡’이라 부르는 전문 작곡가가 있단 말인가? 개중 완성도 높은 아이돌 자작곡이 등장할 때면 부당한 고스트라이팅 의혹을 암암리에 수군거리는 이들이 있는 것 역시 부분적으로나마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실력의 성장을 꾸준히 지켜보는 것도 재미이긴 하다. 팬들에겐 훌륭한 서비스다. 오히려 부족할수록 더 진솔한 모습처럼 다가와 각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해당 그룹의 팬이 아닌 대중이라면, 고도로 상업화한 시장 속에서 마감만 좋은 미완성작을 굳이 챙겨 들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팬들만 기뻐하는 자작곡도 나쁠 것은 없지만, 팬 서비스를 통해 대중에게도 인정받는다는 건 거의 모순에 가깝다.

아이돌 산업은 ‘각자 잘하는 것’을 조합하는 일이다. 춤과 노래가 뛰어난 이들이 있고, 작곡을 잘하는 이들도 있으며, 콘셉트에 탁월한 감각을 지닌 이들도 있다. 이를테면 최근 싱어송라이터 노선을 본격화한 이효리는 과거에 자기 자신을 주제로 삼아 과감한 연출을 하는 일종의 콘셉트 프로듀서로서 케이팝 역사의 한 시대를 일궜다. 그가 당시에 작곡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성취를 누가 폄하할 수 있을까? 음악의 각 분야에는 우열이 없다. 달리 잘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잘해내면 된다. 누구나 작곡을 해야 할 필요는 없다.

<아이돌로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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