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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7.28 20:32 수정 : 2017.07.28 21:19

2013년 처음 그려본 서촌 동네 풍경. 겸재의 ‘인왕제색도’를 떠올리며 그린 그림이라 ‘신인왕제색도’라고 딱 이름 붙였다. 신인왕제색도, 2013년, 펜&수채, 23×30.5㎝.

[토요판] 김미경의 그림나무
⑮ 신인왕제색도

2013년 처음 그려본 서촌 동네 풍경. 겸재의 ‘인왕제색도’를 떠올리며 그린 그림이라 ‘신인왕제색도’라고 딱 이름 붙였다. 신인왕제색도, 2013년, 펜&수채, 23×30.5㎝.

용감했다. 4년 전 인왕산이 들어간 동네 풍경을 처음 한 장 달랑 그리고 나선, ‘신인왕제색도’라고 딱 이름 붙였다.

그 후, 서촌에 살며 100장 넘게 서촌 풍경을 그리는 동안, 이 골목 저 언덕에서 불쑥불쑥 겸재 정선(1676~1759년) 선생을 만났다. 그의 대표작들이 그려진 장소마다 그림과 함께 서 있는 표지판들로 말이다. 2012년 옥인아파트를 허물고 수성계곡을 복원할 때 근거가 되었다는 그림 ‘수성동’. 인왕산 수성계곡 바로 앞에 살고 있는 덕에, 수성계곡 입구에 붙은 ‘수성동’은 매일 아침 본다. 마실 다니는 청운동 ‘윤동주 동산’에는 한양 시내를 내려다보며 그린 ‘장안연우’가, 서울 농학교 안 언덕배기에는 역시 한양 풍경을 그린 ‘한양전경’이 있다. 말년에 살았다는 옥인동 군인아파트 어린이 놀이터에는, 자신의 노년 모습이 있는 그림 ‘인곡유거’가 붙어 있다.

‘서촌옥상도’라는 이름으로 번호를 붙여가며 그리고 있는 50여점의 그림은 사실 ‘인왕제색도’ 변주곡이라고 할 수 있다. 맘속으로는 작품 이름을 ‘신인왕제색도_서촌옥상도’라 여긴다. 서촌옥상도2, 2014년, 펜, 84×29.4㎝.
내 인생에서 처음 만난 그림은 큰언니 방 세계화가전집 속 서양화가들의 그림이었다. 미술대 학생이었던 큰언니 방에서 함께 생활했던 나는 피카소, 르누아르, 마네, 모네, 고흐, 고갱, 세잔, 밀레, 드가… 서양화가들의 화보집을 심심할 때마다 들춰 보고 또 봤다. 내게 ‘그림은 바로 서양화’라는 이미지를 확고하게 집어넣어준 게 그 화보집이었던 듯싶다. 어릴 적 겸재 정선이나 김홍도, 신윤복, 윤두서, 심사정 등 우리 화가들의 화보집은 단 한번도 본 적 없었다. 4년 전 서촌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도, 나는 우리 땅 선배 화가들의 그림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내가 사는 우리 동네 풍경을 그리면서도 고흐처럼, 에곤 실레처럼 뭔가 서양 분위기 풍기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서양화는 세련되고 멋지고 동양화나 한국화는 촌스럽고 재미없다는 생각이 내면 깊이 깔려 있었던 것 같다.

겸재가 그린 자리를
찾아 앉아 그려보기를
당분간 계속해 볼 참이다
겸재의 눈으로 인왕산을 바라보며
무더위를 이기고 있다

‘인왕제색도’ 외에 겸재 선생의 그림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사실은, 내 그림에 ‘신인왕제색도’라는 이름을 붙이고 나서도 한참 후에야 깨달았다. 뒤늦게 국립중앙도서관, 국립박물관, 겸재정선미술관, 리움미술관, 간송미술관으로 겸재 그림과 글을 찾아다니다가, 깜짝 놀랐다. 겸재가 ‘인왕제색도’ 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양의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도, 아주 신선하고 다양한 시선과 구도로 서울 풍경을 그려냈다는 사실도, 서울뿐 아니라 금강산, 하양, 청하, 양천 등 전국의 풍경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그려냈다는 사실도 몰랐다. 문인 화가도 도화원 화가도 아닌, 새로운 화가의 길을 연 우리 역사상 첫 인물이라는 사실도, 팔십살이 될 때까지 손에서 붓을 놓지 않은 진짜 화가였다는 사실도 까맣게 몰랐다. 갈수록 서촌 풍경을 그린다는 이유만으로, 겸재에 비교될 때 우쭐댔던 게 창피해졌다.

겸재 정선이 ‘한양전경’을 그렸다는 장소에 올라 같은 구도로 그려봤다. 신한양전경, 2017년, 펜&콜라주, 24.5×33.5㎝.
300여년 전 나와 같은 공간을 그렸던 겸재. 첫째, 그림 속의 시선과 구도는 아주 박진감 있고 다양했다. 인왕산 중턱에서 내려다보기도 하고, 인왕산과 북악산 사이에서 보기도 하고, 인왕산 동쪽 아래에서 확 위로 치켜 올려다보기도, 창의문 쪽에서 훑어보기도 한다. 둘째, 아주 재미나다. 그림 속에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등장시키기도 하는데, 산수화 속에 아리송한 스토리를 집어넣어 재미를 더한다. 셋째, 특정한 시점의 아름다움을 잡아채는 능력이 기발하다. ‘인왕제색도’가 대표적이다. ‘제색’이란 ‘비가 온 후 갠 모습’이란 뜻이다. 솔직히 그동안 인왕산을 수십번 그렸지만, 비가 온 후 갠 인왕산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그때의 인왕산을 눈여겨본 적도 없다. ‘인왕제색도에서 겸재가 왜 인왕산 바위를 검정색으로 표현했을까?’ 궁금했지만 그냥 지나쳤다. 인왕산을 보고 또 보고, 그리고 또 그렸던 사람만이 잡아챌 수 있는 찰나의 아름다움이다. 이제, 서촌이 새롭게 보인다.

서울 종로구 신교동 서울 농학교 안 언덕배기, 인왕산 동쪽 자락, 그의 그림 ‘한양전경’이 그려졌다는 바로 그 자리에 앉아, 며칠 동안 ‘서울전경’을 그렸다. ‘한양전경’이 그려진 해가 1740년이라니, 277년 전이다. 그림 속엔 남산 위에 탑도 빽빽한 빌딩도 없다. 당시 허물어진 경복궁이 살짝 보인다. 세종의 왕자 영해군 당의 10대손으로 판서를 지낸 이춘제의 옥류동 정자 ‘삼승정’과 이춘제가 그림 속에 있다. 그의 요구로 그렸음이 분명해 보인다. 내겐 인왕산 자락 정자를 그려달라는 이는 없고, 내 흥에 겨워 그리므로, 이춘제 대신 춤추는 나를 옥상에 오려 넣었다. 2017년판 ‘서울전경’이다.

겸재가 그린 자리를 찾아 앉아 그려보기를 당분간 계속해 볼 참이다. 겸재의 눈으로 인왕산을 바라보며, 무더위를 이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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