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8.02 14:20
수정 : 2017.08.02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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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배우 오현경, 연출가 김도훈, 작가 노경식, 배우 이호재. 늘푸른연극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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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푸른연극제 참가하는 배우 오현경·이호재, 연출가 김도훈, 작가 노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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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배우 오현경, 연출가 김도훈, 작가 노경식, 배우 이호재. 늘푸른연극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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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로 득실한 거리 대학로에 모처럼 원로 연극인들을 주인공으로 한 연극 4편이 무대에 오른다. 지난달 28일 서울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시작된 ‘늘푸른연극제’다. 늘푸른연극제는 원로 연극인들의 공을 치사하고자 시작된 축제로, 지난해 ‘원로연극제’라는 이름으로 첫선을 보였다. 공연에 앞서 가진 개막식에서 최고령 참가자인 배우 오현경은 이번에 개칭한 축제명과 관련해 반가움을 표했다. “원로에 노인을 의미하는 노(老)가 있는데, 사실 노인들도 한때는 푸르렀다”면서 늘푸른연극제로의 개칭에 대한 반가움과 함께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번 연극제에는 82살 현역배우 오현경을 비롯해 노경식(80), 이호재(77), 김도훈(76) 등 평균연령 78.75살의 배우, 작가, 연출가의 대표작 4편이 무대에 오른다. 개막작은 오현경의 <봄날>(6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알레고리의 대가로 불리는 이강백 작가의 대표작으로, 회춘을 꿈꾸는 탐욕스러운 아비가 아들들의 잔꾀에 속아 가진 것을 다 잃게 된다는 내용의 우화다. <봄날>은 1984년 10월 초연됐는데, 오현경은 그때부터 아비 역으로 무대에 섰다. 당시 연극평론가 장성희는 “주책마저도 노추(老醜)가 아닌 천진성과 해학적인 능청으로 살려내 관객의 기립박수를 이끌어”내는 연기라고 오현경의 연기를 추켜세웠다. 그는 이 작품으로 1985년 한국연극영화티브이예술상(현 한국백상예술대상) 연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봄날>에 이어 공연될 작품은 김도훈이 연출하는 <유리동물원>(4~13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이다. 작품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알려진 미국 작가 테네시 윌리엄스의 대표작으로 ‘유리동물원’이라는 환상의 세계에 사는 중하층 계급의 이야기다. 연출가 김도훈의 대표작인 <유리동물원>은 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는 이 작품으로 극단 뿌리를 창단했다. 1982년 세종문화회관 공연 당시엔 하이틴 스타였던 송승환이 출연해 매회 매진사례를 기록해, 김도훈은 그 돈으로 뉴욕 라마마 극단에서 연수도 받을 수 있었다. 이번 공연에는 국회의원을 지낸 최종원이 주인공 톰으로 출연한다.
<한겨레> 편집위원장을 지낸 언론인 장윤환이 “독재에 분노하고 항거한 현실참여 작가”라 소개했던 노경식은 이번 연극제에 정치풍자극 <반민특위>(11~20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를 내놓았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약칭인 반민특위는 일제강점기에 친일반민족행위를 했던 이들을 찾아 처벌하고자 설치했던 조직. 하지만 그들의 처벌을 원치 않았던 이승만 정권은 노골적으로 방해공작을 펼쳤고, 결국 반민특위는 1년도 되지 않아 와해되었다. 연극은 이승만과 고문왕 김태석, 친일경찰 노덕술 등 실존인물들을 등장시켜 당대의 역사적 사실을 무대 위에 재현한다. 2005년에 발표한 작품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초연이나 다름없는 이번 공연에는 노경식의 아들 노석채가 출연해 우익 테러리스트 백민태 역을 소화한다.
연극제의 대미는 이호재가 <언덕을 넘어서 가자>(17~27,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로 장식한다. 연극평론가 구희서가 “명실공히 우리 무대에서 가장 노련한 배우”라 극찬을 아끼지 않은 이호재는 최근 종영한 드라마 <비밀의 숲>에도 출연하고 무대에도 매년 평균 2편 이상 오르는 등 여전히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 중인 배우다. <언덕을 넘어서 가자>는 극작가 이만희가 이호재에게 헌정하고자 쓴 작품이며 그는 2007년 초연 때도 출연했었다. 일흔이 넘은 초등학교 동창들의 이야기로, 고희를 넘어서 연정을 고백하는 그들의 모습에서는 인생의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마저 느껴진다.
연극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연극은 오직 그 순간에만 현존하는 예술이다. 영상의 힘을 빌려 뒤늦게 녹화본을 감상한들, 그것이 극장에서의 실제 관극체험과 같을 리 없다. 존재만으로도 무대를 가득 채우는 노배우들의 현존을 느낄 수 있는 이번 무대는 27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과 아르코예술극장에서 계속된다.
김일송/공연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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