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8.17 19:26
수정 : 2017.08.3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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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미더머니6>. 엠넷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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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하의 어쩐지 신경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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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미더머니6>. 엠넷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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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하나. 때는 2017년 7월의 마지막 일요일, 늦은 아침을 먹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티브이를 켜니 음악 순위 프로그램이 방영 중이다. 1위 후보는 헤이즈와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의 아이돌 그룹 엑소, 레드벨벳. 헤이즈가 방송 활동을 하지 않는 바람에 ‘집안싸움’이 되어버린 1위 쟁탈전을 시큰둥하게 바라보던 순간, 터보가 등장한다. 맞다. 우리의 과거가 기억하고 있는, 바로 그 2인조 그룹 터보다. 그들이 노래를 부르고 퇴장한 뒤, 엑소가 1위를 차지했다. 그렇다. 터보는 그날의 피날레 무대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2017년이다.
상황 둘. <쇼미더머니6>의 프로듀서 합동공연날이다. 유례없이 화려한 프로듀서 라인업이니만큼 다른 회차보다 높은 관심이 쏠렸다. 타이거제이케이(JK)와 비지, 다이나믹 듀오, 재범과 도끼, 지코와 딘. 관례상 후배인 지코와 딘이 첫 무대를, 선배인 타이거제이케이와 비지가 마지막 무대를 장식해야 아귀가 맞을 것 같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다이나믹 듀오가 오프닝을, 지코와 딘이 피날레였다. “(공연 순서) 두번째 해서 다행이다.”(타이거제이케이) “미리 한 게 얼마나 다행이야.”(최자) 진심의 순도 여부야 모를 일이지만 후배들의 무대를 지켜보던 ‘힙합 선배’들의 입에서 쏟아진 말들이다.
프로그램 형태도 장르도 등장인물도 다른 이 두 상황의 공통점은 단 하나, 출연 순서다. 관객이나 시청자야 알 바 없는 일이지만, 가수에게 출연 순서란 때로는 프로그램 출연 여부만큼이나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요소다. 특히 이 원인 모를 자존심 대결에 고작 찬물도 위아래를 따져야 하는 뿌리 깊은 장유유서 정신이 결합되는 순간, 상황은 복잡해진다.
사실 공연이나 방송에서 가장 인기있는 음악가를 마지막 순서에 배치하는 건 상식적인 일이다. 공연장에선 관객 이탈을 최대한 막을 수 있고, 방송이라면 시청자들의 관심을 마지막까지 유지시킬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 연차나 선후배 호칭을 깍듯이 받드는 문화가 끼어든다. 한 해 동안 활동한 가수들이 총출동하는 연말 가요시상식이나, 웬만한 아이돌 가수들을 한자리에서 모두 만날 수 있는 드림콘서트의 출연자 순서를 보다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면 바로 거기가 포인트다. 제작하는 쪽도 가수도 피곤하기 그지없는 무용한 눈치 싸움 속, 터보가 2017년 음악 순위 프로그램의 대미를 장식하고 ‘조상님’ 레벨의 선배들을 제치고 엔딩 공연을 펼치는 지코와 딘의 존재가 생경하게 느껴지는 시대착오적 상황이 무수히 반복된다.
이러한 가요계의 의미 없는 서열화는 곧 왜곡된 선후배 문화의 융성으로 이어진다. ‘베토벤 선배님’이나 ‘제프 버넷 선배님’이라는 어이없는 호칭의 탄생은 발화자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릇된 권력문화가 자아낸 웃지 못할 해프닝이라 보는 편이 옳다. 한국 가수가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올리고 국외 투어를 도는 세상이 되었지만, 피날레 무대를 주지 않는다며 방송사를 보이콧하거나 후배 가수에게 순서가 밀렸다며 출연을 거부하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소문은 아직도 끊이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쯤 연차도 나이도 무엇도 아닌 음악만으로 채워진 무대를 마음 편히 만날 수 있을까. 이것은 한국 가요계나 무대 수준의 질적 향상뿐만이 아닌, 음악을 사랑하는 대중의 음악적 복지와도 깊게 연결되어 있는 문제다.
김윤하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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