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카자흐스탄 국립중앙박물관과 우즈베키스탄 국립역사박물관에서 ‘아리랑 로드 해외순회전’을 열기 위해 현지 채록 활동을 다니던 시절의 진용선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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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록원 카자흐스탄에서 발굴해 공개
집단농장 생활 배경음악 ‘아리랑’ 담겨
“나운규 이전 구아리랑 첫 음원 확인” 독일어 번역하다 ‘아리랑’ 가치 깨달아
1991년부터 고향 정선 터잡고 지킴이로 진 관장은 2014년 8월 강원도 정선군, 국립민속박물관, 한국국제교류재단과 공동으로 카자흐스탄 국립중앙박물관과 우즈베키스탄 국립역사박물관에서 ‘아리랑 로드 해외순회전’을 열었다. 앞서 2012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개막한 ‘아리랑 기획전’을 확대한 것으로, 2013년 일본 도쿄와 오사카에 이어 열린 행사였다. “그때 순회전 준비를 위해 국립민속박물관 이건욱 학예연구사 등과 함께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거주 고려인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그들의 이야기와 아리랑을 채록했습니다. 두 나라 박물관 등에도 자료가 있다는 사실은 증언 등을 통해 알 수는 있었지만 문화자산의 이전은 민감한 외교 문제여서 직접 발굴해오기는 어려웠지요. 그런 만큼 이번에 국가기록원에서 기증을 받아낸 것은 매우 의미가 큽니다.” 옛 소련 당국이 강제이주를 합리화하기 위해 제작한 24분짜리 이 영상에는 고려인들의 한글 학습, 디딜방아 찧기, 음식, 씨름 같은 놀이문화 등 일상과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고려인 집단농장의 학교 간판에 ‘선봉중학교’라고 쓰인 한글 명패와 어린 학생이 칠판에 한글로 ‘친목한’이라는 말을 쓰는 모습도 보인다. 특히 고려극장의 여성 주인공 이함덕의 공연 모습, 연출가인 연성용의 노래 ‘씨를 활활 뿌려라’ 등도 담고 있어 가치가 높다. 고려극장은 1932년 연해주에서 ‘민족예술 수호’를 내걸고 창립됐다가 강제이주와 함께 카자흐스탄의 오지 크즐오르다로 무대를 옮겼고, 2002년 알마티로 옮겨 지금껏 고려인의 예술혼을 잇고 있다고 진 관장은 소개했다. “올해는 한국인이 러시아로 이주해 ‘고려인’이 된 지 153돌이자,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80돌이 되는 해여서 선조들이 부르는 ‘아리랑 육성’이 한층 애달프게 들립니다.” 한국인의 러시아 이주는 1863년 함경북도 경원에서 출발한 13가구 60여명이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에 정착한 것을 시초로 보아, 최초의 집단 해외이주 사례로 꼽힌다. 강원도 정선의 탄광촌 출신인 진 소장은 독일어 번역가로 일하다 ‘아리랑 지킴이’로 변신한 일화로 유명하다. “독일인 교수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는 아리랑 가사를 ‘발에 병(무좀 같은)이 난다’로 번역했어요. 사랑하는 임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그 간절한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게 내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1989년 귀향한 그는 녹음기와 노트를 챙겨 들고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다니며 ‘정선아리랑’을 녹음하고 받아 적기 시작했다. 1991년 11월에는 폐교에 정선아리랑연구소를 차려 정착했다. 번역가이자 시인으로 등단까지 한 아들이 출세는커녕 탄광촌으로 되돌아와 옛 노래만 찾아다녔으니 광원 출신 부친의 반대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묵묵히 고향을 돌며 22년간 2만3천여수의 아리랑을 채록한 그는 중복된 가사를 추려내 5500여수가 담긴 <정선아리랑 가사사전>(2014년)도 펴냈다. 정선아리랑 정리를 마무리한 그는 이름을 ‘아리랑연구소’로 바꾸고 전국을 넘어 재외동포들의 ‘디아스포라 아리랑’으로 관심을 넓혀왔다. ‘영천아리랑’, ‘구미아리랑’ 등 잊힐 뻔한 아리랑 발굴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1993년부터 중국 연변으로 달려간 그는 10여년간 중국에서 기록한 아리랑을 <중국 조선족 아리랑 연구>로 세상에 내놓았다. 다시 러시아 연해주와 일본으로 발길을 돌려 <러시아 고려인 아리랑 연구>와 <일본 한인 아리랑 연구>가 나왔다. 지난해 연말에는 <중앙아시아 고려인 아리랑 연구>도 펴냈다. “동포들이 겪어온 질곡의 근현대사 그 중심에는 언제나 아리랑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93년 여름 프로그램으로 아리랑학교를 시작한 그는 97년 7월 정선의 매화분교에서 정식 개교를 했다. 2005년 아리랑학교 부설 추억의 박물관도 열어 명소로 자리잡았다. “어릴 적부터 유난히 호기심이 많았고 놀이를 좋아해 딱지왕으로 불렸다”는 그는 추억의 박물관 개관 기념전으로 ‘딱지 전시회’를 열기도 했고, 박물관 입장권을 딱지 모양으로 만들 정도로 옛 물건 옛 문화에 애정을 쏟고 있다. 올 4월 정선 탄광마을로 옮긴 박물관에는 민요자료, 고문서·고서, 교육자료, 근현대사 자료, 광업자료 등 1만2천여점의 자료가 전시돼 있다. “고려인 1세대가 거의 세상을 떠나고 이제 한글도 잘 모르는 3세, 4세 후손들에게 아리랑은 잊혀진 노래가 되고 있습니다. 러시아어로 번역한 아리랑 노래책을 만들어 전해줄 계획입니다.” 진 관장은 “우리 민족의 혼이 담긴 아리랑이 대대로 전승되도록, 지금껏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아리랑 문화지도’를 만들어 기록으로 남기는 게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사진 아리랑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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