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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9.03 14:55 수정 : 2017.09.03 19:24

‘비디오 포트레이트…’전의 화제작으로 꼽히는 게리 힐의 절규하는 소녀 동영상과 마리케 하인츠회크의 음악 듣는 노파의 동영상. 다른 성격과 내용의 작품인데도 스크린이 앞뒤로 포개지면서 삶의 활력과 노쇠에 대한 이미지 서사를 전해주는 영상 묶음처럼 변했다.

토탈미술관의 ‘비디오 포트레이트 vol.2’전
게리 힐 등 국외 비디오 대가 11명의 신구작들로 구성
호수에 떠내려가는 식탁의 만찬, 총 맞는 예술가 등등
세상살이, 예술을 바라보는 낯선 시선들 내보여

‘비디오 포트레이트…’전의 화제작으로 꼽히는 게리 힐의 절규하는 소녀 동영상과 마리케 하인츠회크의 음악 듣는 노파의 동영상. 다른 성격과 내용의 작품인데도 스크린이 앞뒤로 포개지면서 삶의 활력과 노쇠에 대한 이미지 서사를 전해주는 영상 묶음처럼 변했다.
암흑 같은 스크린 속. 갑자기 흰 점이 튀어나왔다.

꾸물거리는 허연 점이었다가 조금씩 몸짓이 커지면서 관객 눈앞으로 다가오는 형체는 단발의 백인 소녀다. 그는 분노에 차 있다. 얼굴이 화면을 가득 메우자 면상을 일그러뜨리며 소리를 지른다. 온 신경을 집중하고 얼굴 근육을 모두 움직이며, 이빨과 잇몸을 다 내보이도록 전력을 다해서 내쏟는 고함 장면. 스크린은 왜 절규하는지 설명해주지 않지만, 연속되는 장면들은 시각적 쾌감을 안긴다. 힘차게 나래 펴는 젊은 몸과 얼굴의 활력이 와닿는 까닭이다. 더욱이 스크린 앞에 세워진 또다른 스크린에는 주름이 가득한 얼굴을 찌푸리며 힘겹게 음악을 듣느라 신경을 쏟는 노파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비치고 있다.

이 영상 풍경은 지금 서울 평창동 토탈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국외 작가들의 동영상 기획전 ‘비디오 포트레이트 vol.2’의 후반부에 나온다. 소녀의 절규 동영상은 미국 미디어아트의 대가인 게리 힐, 노파의 동영상은 독일의 중견 작가 마리케 하인츠회크의 작품이다. 게리 힐은 보이지 않는 공간의 틈새에서 원시적으로 소리를 지르고 투쟁하는 젊은이의 상을 비춘다. 이에 비해 마리케 하인츠회크의 작품은 젊었을 당시의 노래를 듣고 있는 노파를 통해 감정의 심연에 대한 느낌을 다큐 영상으로 담고자 했다. 두 작가가 창작하려 한 의도는 현저히 다른 것이다. 그런데 막상 전시장에 두 작품을 함께 포개놓으니 그 영상의 대비가 늙음과 젊음, 활력과 상실이란 개념을 더욱 절실하게 보여주는 이미지 효과를 낳았다.

이스라엘 작가 샤하르 마르쿠스의 출품작인 ‘소금만찬’. 사해 호수 위의 떠내려가는 식탁에서 남녀가 테이블을 붙잡고 억지로 음식을 나누는 모습을 보여준다. 몸과 음식의 관계를 독특한 상황 설정으로 탐구한 작품이다.
‘비디오 포트레이트…’전은 올 상반기 국내 작가 중심으로 벌인 같은 제목의 버전 1 전시에 뒤이은 것이다. 국제 무대에서 활발히 작업 중인 국외 영상작가 11명이 우리 시대 삶과 세상의 현실을 담은 작품들을 다기한 시점과 기법으로 내놓았다. 작가마다 관점이 천차만별이라 특별한 흐름이나 단면만을 짚은 건 아니다. 순간을 고정시키는 사진으로는 실체를 담을 수 없는 세상과 삶의 물리적 시간, 삶과 예술 구석에 스며든 일상성, 권태 등을 훑는 영상적 접근이 신선하다. 짠물 호수인 사해 수면 위를 떠내려가는 식탁 위에서 억지로 만찬을 하면서 지쳐가는 음식남녀를 담은 이스라엘 작가 샤하르 마르쿠스의 영상은 변질, 변화하는 몸과 음식에 대한 블랙유머적 공상을 피워낸다. 쇼핑 아케이드에서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걷다가 돌연 총을 맞아 피를 흘리면서도 설명을 그치지 않는 예술가를 담은 터키 작가 할릴 알튼데레의 영상은 충격적 방식으로 예술가의 시대적 책무를 암시하고 있다. 1970년대 국립미술관 그림을 일부러 훔치는 자신의 범행 퍼포먼스 과정을 그대로 찍은 독일 작가 미케 슈타이너의 파격적 영상들도 등장한다. 회화와 사진에 비춰 시간성을 품은 영상이 지닌 힘은 무엇이며, 그 가능성은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흔치 않은 마당이다. 10월22일까지. (02)379-3994.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토탈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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