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9.14 22:05
수정 : 2017.09.14 22:10
[짬] 독일 국제윤이상협회 회장 발터 볼프강 슈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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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에서 ‘윤이상 100주년 페스티벌’을 준비중인 국제윤이상협회 발터 볼프강 슈파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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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볼프강 슈파러(64) 국제윤이상협회 회장은 올가을 어느 때보다도 분주하다. 베를린에서 열리는 윤이상 탄생 100주년 행사 준비와 관련 재원 마련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탄생일인 9월17일을 중심으로 12월까지 베를린에선 윤이상(1917~95)과 관련한 13개의 행사가 열린다. 우선 18일까지 열리고 있는 베를린음악축제에 ‘윤이상 100주년 섹션’이 마련됐다. 윤이상 관련 전시회, 단상 토론회, 콘서트, 영화 상영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있다. 이어 국제윤이상협회는 새달 29일~11월4일 ‘윤이상 100주년 페스티벌’을 따로 연다.
오는 17일 ‘윤이상 탄생 100돌’ 맞아
연말까지 베를린에서만 13개 행사
10월말 협회 단독 ‘페스티벌’도 열어
80년대초부터 모든 작품 ‘해설’ 맡아
별세뒤 협회 꾸려 22년째 ‘유업’ 기려
“그는 20세기 가장 중요한 작곡가”
‘100주년 페스티벌’에선 윤이상이 교수로 재직했던 베를린예술대학에서 콘서트, 강연, 심포지엄을 진행한다. 정악, 시나위 등 한국 전통음악을 비롯해 최근 두각을 나타내는 한국 출신 작곡가들의 곡들도 선보인다. ‘윤이상과 당대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라는 주제의 심포지엄도 이틀에 걸쳐 열린다. 대미를 장식할 실내악 연주회는 윤이상 곡으로만 프로그램을 짰다. <로양>, <콜로이데스 소노레스> 등 평소 연주회에서 듣기 어려운 곡들이 포진해 있다.
윤이상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 1996년 슈파러 대표는 국제윤이상협회를 설립했다. 매해 상반기와 하반기에 윤이상 콘서트를 열고, 음반을 제작했다. 그는 “작곡가가 사망하면 그 음악은 잊힐 수도 있다. 그 음악이 망각 속으로 사라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윤이상 음악은 매우 어려워서 진짜 이해하고 연주하려면 실력이 있어야 하고,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재단을 만들면 그의 음악이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했다. 오케스트라 곡들은 연주하기 힘들어서 많이 살아남지 못했지만, 실내악 부분은 성공했다.
슈파러는 “윤이상 곡을 연주하는 콘서트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건 그가 의도했던 음악에서 좀 멀어져 있다는 거다. 윤이상 곡의 본모습을 되살리는 게 시급하다. 어떻게 연주해야 할지 모두 해설이 있지만, 모두 분명한 건 아니다. 연습할 때, 어떤 부분이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 이런 부분들이 명확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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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2년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한 연주회에서 발터 볼프강 슈파러(왼쪽)와 윤이상(오른쪽)이 나란히 앉아 리허설을 지켜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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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인 1967년 7월 독일 언론에서 ‘윤이상 납치사건’으로 떠들썩할 때, 슈파러는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이었다. 이른바 박정희 군부정권이 조작한 ‘동베를린 사건’ 때 간첩으로 몰려 입술이 터지고,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는 윤이상의 사진을 보았지만, 아직 어린 그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윤이상 부부를 처음 본 것은 1976년 윤이상의 첼로 콘서트 초연에서였다. 그 뒤 슈파러는 윤이상 교수의 베를린예술대학에서 음악민속학을 공부했다. 슈파러가 본격적으로 윤이상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80년대 초, 그의 작품에 대한 해설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으면서부터다. 그때부터 슈파러는 윤이상의 모든 작품 해설과 초연 팸플릿의 글을 도맡게 되었다. 1987년에는 윤이상 음악철학에 관한 책을 썼다. 이 책은
<나의 길, 나의 이상, 나의 음악>(1994·에이치아이씨이 펴냄) 제목으로 한국에도 번역 출판됐다.
슈파러는 “윤이상 작곡가는 분단 한국을 직접 경험하지는 못했다. 그가 고향에서 살았던 대부분 시기는 일본 식민통치 시기이거나 6·25 전쟁 때였다. 그는 평생 갈구하던 한반도의 평화를 보지 못했고, 지금까지도 한반도의 평화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꼭 통일하지 않아도 서로를 약간이라도 인정하는 것을 시도해 볼 수 있을 텐데, 현재 남북한이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는 거의 불가능한 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슈파러는 윤이상의 음악 특징을 “서양인들이 동양적이라고 부르는 길게 뺀 기본음들, 거기에 덧붙여진 장식과 같은 제2음정, 어떤 한 방향으로 흐르지만 또한 물결을 이루고 있는 음들”이라고 본다. 그는 이어 이렇게 설명했다. “윤이상의 음들은 매우 다채롭다. 선율이 매우 중요한데, 그 음들의 융화에 주목해야 한다. 여러 음이 서로 엮여 무더기를 이룬다. 여러 묶음으로 구성된 조직, 선들이 서로 다시 만나 또 한 조직을 이룬다. 마치 세공과 같다. 음들이 교차하며 층을 이룬다. 특히 고구려 강서고분의 사신도는 윤이상 음악의 근본 상징이다. 윤 작곡가는 120여편의 작품을 썼다. 음색이 풍부하고, 매우 섬세하게 나뉘어 있다. 그래서 무엇이 주제이고 부수적인 요소인지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그는 윤이상을 어떻게 평가할까? “윤이상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작곡가에 속한다. 그는 유럽으로 온 첫 번째 동양인 작곡가로, 독일에서 현대음악가로 활동했고, 한국 전통음악을 12음계 기법의 현대음악 형태로 녹여냈다. 그의 음악이 동양과 서양적 요소의 혼합이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윤이상의 음악은 그냥 윤이상이다.”
베를린/한주연 통신원
juyeon@gmx.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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