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9.19 17:29
수정 : 2017.09.19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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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서울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에서 만난 강운구 작가. 2015~16년 촬영한 연작 12점 앞에서 자신을 찍는 취재진을 휴대폰으로 찍고 있는 모습이다. 그는 “한 작가가 과거의 스타일과 결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전시에는 신작들을 내놓았지만, 과거와 결별하지 못해 미적미적하는 저의 태도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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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사진미술관에 차려진 중견 다큐사진가 강운구 ‘네모그림자’전
네모공간 작가의 그림자, 흔적 등을 작업화두로
휴대전화 촬영, 외국 산하 등을 담은 컬러 작업 처음 선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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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서울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에서 만난 강운구 작가. 2015~16년 촬영한 연작 12점 앞에서 자신을 찍는 취재진을 휴대폰으로 찍고 있는 모습이다. 그는 “한 작가가 과거의 스타일과 결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전시에는 신작들을 내놓았지만, 과거와 결별하지 못해 미적미적하는 저의 태도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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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리도 낯설고 새삼스러울까.
웅크린 그의 그림자들이 사진 도처에서 삐져나온다. 러시아 흑토에 피어난 꽃밭, 서울 시내 공원 흙위의 벚꽃잎들, 그리고 절친했던 지기 한창기의 전남 보성 무덤가 뒤편….
중견사진가 강운구(76)씨가 서울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의 개인전 ‘네모그림자’에 내건 신작들은 어느 것이든, 떠도는 작가의 존재감으로 번득거리고 있다. 액자 속 네모진 격자 속에 등장하는 국내외 도시와 자연 풍경에는 강씨의 그림자와 신발이 등장하거나 집요한 그만의 눈길이 맴돌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스트레이트 사진으로 일컬어지는 엄정한 시선으로 경주 남산과 강원도 너와집 같은 우리 산하와 사람들의 풍경을 30여년 찍어온 지난 이력과는 크게 다르다. 2008년 이후 10년 만에 처음 내보인 신작전의 작품들은 유랑자의 자의식이 물컹하게 와닿는 사진들이다. 수십여차례의 개인전, 기획전을 치렀고, 10여권의 사진집, 산문집 등을 펴냈던 작가는 몇해 전부터는 이 땅의 사진가로서 ‘의무 복무’가 끝났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 뒤로 국내와 세계 곳곳을 유랑하면서 휴대전화 등으로 자유롭게 찍고나니, 사진이 더 흥미로워졌다는 고백을 털어놓았다.
“출품작의 80% 이상을 휴대폰 카메라로 찍었습니다. 과거 전시에 전혀 내보이지 않았던 국외 풍경도 역시 쓰지 않았던 컬러로 포착하고 작품으로 다듬었습니다. 그렇다고 인위적으로 화면을 보정한 것은 아니고요, 다만 내가 현장에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나온 작품들은 디지털과 아날로그, 서정과 서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기한 이미지 세상을 빚어낸다. 네팔 포카라에서 너나 할 것 없이 휴대폰을 꺼내들고 히말라야의 일출을 찍는 관광객들과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속 중절모 쓴 남자 형태의 거울 앞에서 자신의 상을 찍는 모습이 이어진다. 독일의 미학비평가 발터 베냐민이 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소인 스페인 포르부에서는 그의 죽음을 기리는 해변 인근 파사쥬의 통로와 그 끝의 거울에 비친 자신을 찍었다. 그 죽음의 통로 앞에 선 작가의 작은 잔상이 강렬하다. 이 풍속과 풍경이 어우러진 사진들은 말미에 그가 2015~16년 서울의 공간을 집요하게 훑으며 나무와 풀들의 그림자가 자신의 시선과 융합되는 순간을 기다려 찍은 12점의 연작으로 끝을 맺는다. 휴대전화에 고무줄을 연결시켜 손에 끼우고 떨어지지 않게 한 뒤 자기 몸처럼 부려 근작들을 찍었다는 작가는 이 전시에서 정통사진의 규범성에 구애받지 않는 몽상가와 유랑객의 이미지 체험을 한껏 과시하고 있다. 11월25일까지. (02)418-1315.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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