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9.21 18:13
수정 : 2017.09.22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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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 K3전시장에 나온 <커팅오프> 연작 중 일부. 작가의 알몸 모형을 마구 절단한 뒤 접붙인 그로테스크한 작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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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미술의 대가’ 폴 매카시 신작전
작가 본뜬 모형 잘라붙인 ‘컷오프’
뎅강 잘린 백설공주 머리통 조각…
5년 전 못지 않은 그로테스크한 풍경
인간 욕망의 극단까지 까발리며
동화·우화에 숨겨졌던 현실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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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 K3전시장에 나온 <커팅오프> 연작 중 일부. 작가의 알몸 모형을 마구 절단한 뒤 접붙인 그로테스크한 작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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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장의 손은 망치나 톱처럼 움직인다. 어떤 매끈한 소재도 그의 손길이 닿으면 망가진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는 몸이 으스러지고 구멍이 뚫린 채 날선 성욕과 폭력성의 아이콘으로 변질된다. 고즈넉한 숲속 정원에 놓인 정교한 두 남성 인형은 바지를 내려놓고 미친 듯 자위를 하는 몰골을 펼쳐낸다. 누구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비루하고 비참한 세계의 욕망, 혹은 사회의 잔혹성, 폭력성을 그는 보게 만든다. 이런 특출한 개성에 세계 미술계가 열광했다.
성과 폭력성을 화두 삼아 몸과 동화, 신화 세계를 난도질하는 작가로 유명세를 탄 미국 거장 폴 매카시(72)가 신작을 들고 한국에서 두번째 개인전을 차렸다. 15일부터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 K2, K3전시장에서 시작한 전시 ‘컷업, 그리고 실리콘, 여성 우상, 화이트 스노우’는 5년 전 전시 못지않게 그로테스크한 풍경을 펼쳐낸다. 작가 자신의 몸을 뜬 모형을 절단해 생경하게 마구 접붙이고(<컷오프> 연작), 뎅겅 남은 백설공주의 머리통에 도료가 흘러내리고 파이프가 목에 꽂힌 참상이 하얀 백색전시장에 깔끔한 조각물처럼 도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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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으로 나온 ‘피카비아 아이돌’ 연작. 실리콘 조형물의 뼈대인 코어를 작품으로 재활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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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매카시는 1960~70년대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한 청장년 시절부터 몸을 활용한 퍼포먼스와 개념미술이 결합된 도발적 작업을 축적해왔다. 2000년대 들어 디즈니 같은 미국 대중문화의 아이콘 등을 잔혹극의 구도로 뒤틀어 충격을 안겨주는 엽기적 설치 조각을 내놓으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망가진 백설공주와 난장이 조형물을 주로 내놓은 2012년의 첫 국내 개인전과 올해 전시도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작가 자신의 몸을 떠낸 뒤 실리콘을 입힌 조형물을 해체한 작업과 이를 다시 드로잉과 청색, 회색조의 페인팅으로 묘사한 작업들이 등장했다. 20세기 초 전위사조 다다이즘의 주역이었던 프랑스 작가 프랑시스 피카비아(1879~1953)의 회화 ‘여인과 우상’을 모티프로 삼은 조형물 ‘피카비아 아이돌(우상)’ 연작도 다수 등장하는데, 피카비아 회화에 등장하는 우상을 실리콘 조형물로 뜨면서 이 조형물의 뼈대인 코어를 다시금 원작처럼 재창작한 작업들이다. “우연히 발견한 코어 자체의 예측불가능한 추상성과 근원으로 돌아가는 환원의 힘에 매혹됐다”고 작가는 말한다. 코어를 작품으로 만들고, 그 코어의 속 뼈대인 또다른 코어를 다시 작품으로 만드는 과정이 거듭되면서 피카비아의 우상은 형태가 서서히 축소되고 망가져간다. 이런 잔혹한 망가짐의 미학이 피카비아의 작품과 자신의 몸을 숙주 삼아 확대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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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열린 전시 간담회에 나온 폴 매카시가 자신의 <커팅오프> 연작 앞에서 설명하고 있다. 작품의 엽기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시골 할아버지 같은 수더분한 용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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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카시는 자기 몸을 난도질해 조각으로 뜨고 그림으로 만든 신작의 ‘재활용’에 대해 “무엇을 의도하고 작업한 것은 아니며, 몸을 해체하고 이리저리 접붙이다 보니 세계의 폭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했다. “몸은 60년대 행위예술할 때부터 친숙한 소재였다. 이번 신작에는 아마도 나이 들어 쇠잔해지는 내 몸의 감각과 10년 안에 세상을 떠날 수도 있다는 절실한 느낌 같은 것을 담았다.”
16세기 서구 화단에서 종말적 풍경을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으로 담았던 브뤼헐이나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그림을 가장 그악한 현대적인 버전으로 보여주는 것이 매카시의 작품들이다. 보스와 브뤼헐이 인간의 죄악이 빚어낸 상상된 괴물들을 화폭에 그리듯 현실에서 직시하기 힘든 인간 욕망의 극단적인 덩어리들을 작가는 보여준다. 태생적으로 개념미술, 퍼포먼스 작가인 까닭에 출품작들은 조각이지만, 조각적 세계의 전통 미학과는 다르고 속성도 전혀 다르게 읽힌다는 점을 고려하면서 감상하는 것이 좋겠다. 작가는 샌프란시스코 아트인스티튜트,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 수학했다. 1960년대부터 퍼포먼스와 영상작업을 거듭하며 미국식 자본주의 대중문화와 상업성을 그로테스크한 성적인 코드로 풍자하는 작업을 해왔다. 92년 로스앤젤레스 미술관 기획전에서 두 남자의 자위 장면을 클로즈업한 설치작업 <정원>을 선보이며 세계 미술계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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