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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9.24 16:33 수정 : 2017.09.24 20:27

[리뷰] 레자르 플로리상 이색 공연
오페라 ‘다프니스와 에글레’ ‘오시리스의 탄생’
합창단원들도 전통춤 함께 추고
무용수들도 바로크 악기에 화음

지난 23일 저녁,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우아한 춤판이 벌어졌다. 오페라극장이 아닌 연주홀에 오른 이들은 레자르 플로리상이다. 프랑스의 작곡가 장 필리프 라모(1683∼1764)가 1753년과 1754년에 궁전에서 상영하기 위해 만든 작은 규모의 오페라 <다프니스와 에글레>, <오시리스의 탄생>을 연주했다.

두 작품 모두 줄거리는 단순하다. <다프니스와 에글레>는 진한 우정을 나누던 다프니스와 에글레가 서로의 마음이 사랑이었다는 걸 깨닫는 내용, <오시리스의 탄생>은 후에 영웅이 될 아이 오시리스가 탄생한 것을 모두 함께 기뻐하며 춤춘다는, 사실상 스토리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다. 이는 장르적 특성과 연관이 있다. 17세기 말부터 18세기 중반까지 프랑스 궁정에서는 발레의 디베르티스망(스토리와 관련 없는 화려한 춤)과 오페라의 서창을 곁들이는, 볼거리 위주의 ‘오페라 발레’가 유행했다. 줄거리가 서로 연결되지 않는 소규모 작품을 함께 올려 공연하는 일이 흔했고, 라모의 <오시리스의 탄생>과 <다프니스와 에글레>도 그중 하나이다.

무대 위 성악가와 무용수들이 한데 어우러졌다. 소프라노 엘로디 포나르(에글레 역), 테너 레이노우드 판미헬렌(다프니스 역), 소프라노 마갈리 레제(아무르·파미유 역) 등 솔리스트가 노래를 하는 동안 무용수들이 추는 사라반드, 가보트, 지그, 미뉴에트 등 유럽의 기품 있는 전통춤을 합창단원들이 함께 추기도 하고, 무용수들이 입을 모아 소리를 보태기도 했다. 여기에 시대 악기가 들려주는 싱그러운 음향이 우아하고 산뜻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바로크 시대에 사용하던 악기는, 현대의 개량 악기와는 달리 현란한 기교를 보여줄 순 없지만, 특유의 자연미가 있다. 다채로운 빛깔을 더하는 통주저음 악기들과 바로크 플루트, 오보에가 들려주는 맑고 청아한 선율이 유쾌한 감흥을 전했다.

이날 공연에서는 무엇보다 깃털처럼 가벼우면서도 풍부하게 울리는 성악가들의 합창이 놀라움을 자아냈는데, 이는 ‘목소리의 정원 아카데미’가 이룬 결실인 것으로 보인다. 목소리의 정원은 젊은 성악가들을 발굴해 고음악에 특화된 교육을 통해 육성하는 프로그램으로 레자르 플로리상이 2002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레자르 플로리상은 하프시코드 연주자 겸 지휘자, 음악학자인 윌리엄 크리스티가 설립한 단체다. 미국에 거주하던 크리스티는 1971년에 파리로 이주해 프랑스 음악을 깊이 있게 파고들어 옛 연주 양식을 되살리기 시작했고, 1979년에 ‘예술의 번영’이라는 뜻을 지닌 레자르 플로리상을 설립해 고음악 분야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크리스티는 1995년에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으며, 2012년부터는 프랑스 문화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린 자신의 정원에서 매년 음악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멀고도 먼 시대와 문화에 낯섦을 느끼던 관객들은 인간미가 묻어나는 ‘소박한 화려함’에 감동하며 환호했다. 라모가 꿈꾸던 아르카디아(목가적 이상향)가 현대를 사는 한국 관객의 가슴에 스며드는 순간이었다.

김호경 객원기자 writerhoh@gmail.com, 사진 한화클래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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