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9.28 19:09
수정 : 2017.09.28 20:58
|
28일 오후 7시 현재 멜론차트.
|
[미묘의 아이돌 마인드맵]
|
28일 오후 7시 현재 멜론차트.
|
케이팝에서 기록이란 이뤄지는 결과가 아니다. 팬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수상 횟수, 음악방송 1위, 음반 판매량, 그리고 음원차트 성적이 대표적인 예다. 최종적으로 기록되는 성적 외에도 지표는 많다. 한 음반의 수록곡이 차트 상위권에 나란히 오르는 ‘줄 세우기’, 실시간 점유율을 나타내는 ‘지붕킥’ 등이 그렇다. 주로 대중적인 관심사를 나타내는 이런 기록들은 팬덤에겐 이뤄야 할 ‘목표’가 된다. 검색어, 투표, 트위터 트렌드, 또는 아티스트와 관련된 부정적 연관검색어를 밀어내기 위한 연관검색까지, 팬들은 다수의 인력이 집중적으로 투입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한다. 그중 정점에 있는 것은 음원 성적이다. 음원을 반복적으로 스트리밍하고 내려받아 순위를 높이는 일인데, 여러 대의 기기와 다중 계정을 사용해 음원을 무한정 틀어놓는 일은 다반사다.
어떤 시스템이 가진 허점을 이용해 본래 목적에서 벗어나는 결과를 의도적으로 이끌어내는 일, ‘어뷰징’이다. 이에 대해, 음원 사이트들은 아이돌의 차트 점령을 막겠다며 집계 방식을 변경하기도 했다. 하지만 팬들은 언제나 그렇듯 기술적 필터링을 우회할 대책을 찾아내 공유하며 이를 무력화했다. 아이돌 세계에서 스트리밍은 너무나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티스트 본인이 팬들에게 ‘스밍’을 요청하는 일도 다반사고, 때론 유명 저널리스트마저 이를 권하는 발언을 하기까지 할 정도다.
그래서 지금 음원차트 성적은 거의 무용지물이다. 본래 음악 차트는 지금 인기 있는 음악을 보여주고, 이를 후대에 증언하는 기록물로서의 가치를 갖는다. 이를테면 윤종신의 ‘좋니’를 통해 후일 우리는 음악 홍보 채널이 다변화된 2017년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형 아이돌이 컴백할 때마다 사실상 차트가 ‘조작’된다면 데이터에는 대량의 ‘노이즈’가 포함된다. 그럴 때 차트가 증언할 수 있는 오늘이란 ‘팬덤의 화력이 대단했다’는 것에 불과하다.
음원차트에서 실질적 이득을 보는 것은 결국 음원 사이트다. 결제 대금을 비롯해, 영업이익과 직결되는 수치들이 한없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만일 차트가 차트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한다면, 팬들은 매우 무가치한 희생을 계속하고 있는 셈이다. 희생이 작은 것도 아니다. 공장식 스트리밍을 위해 본인인증된 계정이나 이메일, 비밀번호 등을 대량 수집하는 것도 당연시된다. 계정을 바꿔가며 유료결제를 반복하기도 한다. 팬에게 남는 것은 작은 성취감과, 팬으로서 ‘진정성’의 징표가 전부다. 팬덤 내 분쟁이 있을 때 사이버불링을 당하지 않기 위해 ‘스밍 인증’을 증거로 제출할 수 있으니 말이다. 단지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도 하겠지만, 팬들이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런 팬들에게 자정을 요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좋아하는 스타의 이름이 걸리기만 하면 어디라도 ‘기 살려주기’ 위해 헌신적으로 투표하고 참여하는 게 팬들이다.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의 발로인 만큼, 팬들은 어떤 환경이 되더라도 크고 작은 희생을 자발적으로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피착취 당사자에게 시스템의 개선을 요청하는 것은 무리다.
결국 기형적인 음원차트를 개선하는 일은, 집계의 주체인 음원 사이트가 결단해야 할 문제다. 실시간 차트로 경마장 같은 경쟁 구도를 지속하면서 ‘줄 세우기’만 당장 눈앞에서 치우는 건 한참 부족한 미봉책이다. 어뷰징을 막을 장기적 전략과 시스템적 대책을 마련하고, 팬들에게 무력화당하고, 또다시 방어벽을 세우는 지긋지긋한 싸움을 시작해줘야 한다. 이것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청이 아니다. 스트리밍으로 인한 이득과 차트의 권위 사이의 선택이다. 알다시피 우리 음악 시장에서 권위 있는 차트란 오래도록 공석이다.
미묘 웹진 <아이돌로지> 편집장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