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0.10 18:11
수정 : 2017.10.10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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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용 감독이 제작을 맡은 국악판타지극 <꼭두>의 한 장면. 국립국악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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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판타지극 ‘꼭두’ 리뷰
저승길 동행 전통 장례인형 소재
김태용 영화감독 연출로 화제
손주들 여정 따라가는 서사 탁월
무대는 허상·영화는 현실로
무대 분할의 역발상 돋보여
전통춤 더하며 다층적 의미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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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용 감독이 제작을 맡은 국악판타지극 <꼭두>의 한 장면. 국립국악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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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는 보고 듣는 재미가 쏠쏠한, 유명 영화감독의 무대가 펼쳐지고 있다. 4일부터 공연 중인 국악판타지극 <꼭두>다.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는 죽음에 관한 세계관을 주제로 한 작품인데, 영화 <만추>, <가족의 탄생> 등을 만든 김태용 감독이 연출해 화제를 뿌렸다. 직접 본 공연 현장도 기대 이상으로 짜임새나 주제의식이 충실했다.
<꼭두>의 주역은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망자를 이끄는 꼭두인형으로 배우들이 꼭두인형을 연기한다. 우리의 전통 장례 상여에 붙어 그 모습을 구체적으로 만날 수 있는 가상 캐릭터다. 망자와 동행해 편한 저승길로 안내하는 구실을 한다는 꼭두들이 이 작품엔 넷이나 등장해 그들만의 여정을 그려내고 있다.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할머니가 갖기 원하는 꽃신을 손자와 손녀가 찾아다닌다. 어쩌면 사고로 죽음에 이르렀을지도 모르는 그들을 꼭두들이 동행하며 따라간다. 그 과정이 ‘미로’, ‘사천꽃밭’, ‘삼도천’, ‘흑암지옥’ 등의 험한 저승길 구석구석을 가는 모양으로 나타난다.
죽었을지도 모르는 손자와 손녀, 혹은 죽음이 임박한 할머니라는 두 개의 가정 사이에서 죽음의 여정길이 펼쳐지는 것이다. 작품 구조로는 상당히 영리한 배치라 할 수 있다. 보는 관객들은 어린 손자와 손녀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운 심정을 내내 그대로 품으면서 이들의 여정을 따라가게 된다. 한마디로 작품의 스토리를 제대로 다룰 줄 아는구나 하는 느낌이 왔다. 극 무대가 처음일 텐데도 능란하게 서사를 구성하고 펼쳐내는 김 감독의 내공이 드러난다.
저승으로 향하는 여정 속에서 펼쳐지는 춤들은 판타지를 구현하는 적절하고 효과적인 요소들이다. 화려한 부채춤은 의인화된 꽃으로, 도솔천은 살풀이의 긴 장삼으로 표현된다. 우리의 전통춤이 가지고 있는 다층적 의미들을, 돋보이는 시각적 해석으로 풀어내는 장면들이었다. 환상의 세계는 실재로, 현실의 모습은 영화로 풀어낸 무대의 분할도 논리적이다. 연극과 영화가 한 무대에 등장하는 형식은 1920년대에 잠시 등장했던 연쇄극(키노 드라마)이라는 명칭으로 존재한 바 있는데, 당시엔 구현하기 힘든 것을 영상으로 대치시키는 것이 일반적 흐름이었다. 하지만 <꼭두>에서는 이와 반대로 가상을 실재로, 현실을 허상으로 대치시켰다. 그리고 그 허상의 백미는 ‘진도만가’와 장례의례였다. 이제는 쉽게 볼 수 없는 우리의 전통문화가 영상을 통해 현대인에게 소개되는데,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 만날 수 없고 간소화한 장례로 잊혀가는 죽음의 의식이 영상을 통해 전해진다.
그런 차원에서 작품 <꼭두>는 완성도를 떠나 구조상 탁월한 면모를 갖추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판타지가 현실처럼 쉽게 구현되는 요즘 세상에서 잊혀가는 전통문화를 영상 속에 잡아 놓겠다는 발상이 극의 기본 뼈대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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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용 감독이 제작을 맡은 국악판타지극 <꼭두>. 국립국악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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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공연계에서는 이승과 저승의 사이를 다룬 작품이 눈에 많이 띈다. 얼마 전 하정우와 차태현의 캐스팅으로 화제가 된 신작 영화 <신과 함께>와 서울예술단이 공연한 같은 제목의 창작가무극은 만화가 주호민의 웹툰이 원작이다. 대사가 없는 무용에서도 국립현대무용단의 근작 <이미 아직>처럼 이승과 저승 사이를 다루는 공연들이 올려진 바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잃어가는 시간을 만가, 만장, 상여, 꼭두로 영상에 담고, 아름다운 진도의 풍광과 잊혀가는 세시풍속을 현실적으로 영화에 담은 <꼭두>의 콘텐츠는 주목할 만하다. 발전된 기술력으로 쉽게 구현되는 판타지를 통해 잊혀가는 현실과 실재를 드러내는 작가의 문제의식이 연극, 무용, 영화 등의 여러 장르를 아우르는 이해력과 잘 융화된 작업이었다.
다만, 손자·손녀의 여정이 끝나는 지점에서 할머니와의 만남을 영상도 아니고 실재도 아닌 사막과 그림자, 영상으로 처리한 부분은 좀 아쉽다. 기법은 훌륭했지만 왜 그들이 그렇게 이승과 저승으로 최종 배치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고, 유독 이 장면만 서둘러 처리된 듯한 인상을 주었다. 공연은 22일까지.
박성혜/춤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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