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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0.16 22:32 수정 : 2019.09.05 16:27

【짬】 강화도 전등사 회주 장윤 스님

강화도 전등사 회주 장윤 스님.
“이곳은 일년에 딱 두번 문을 엽니다. 그만큼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공간이죠. 사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과 바로 오늘입니다.”

지난 14일 오전 인천 강화도 전등사 가람 뒤에 자리한 정족산사고 장사각의 문을 열어주는 행자 스님의 말씀이다. <조선왕조실록>을 250년간 보관했던 왕실 사고의 문이 열린 ‘바로 오늘’은 해마다 10월 ‘삼랑성 역사문화축제’에 맞춰 열리는 ‘현대미술 중견작가전’의 개막일이다.

“올해로 어느덧 10년을 맞아 특별히 ‘성찰’이란 주제로 10명의 작가를 초대했습니다. 외적의 침입을 막고자 5천년 전 단군의 세 아들이 쌓은 삼랑성이 곧 성찰의 교훈을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성찰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자는 작가정신을 모았습니다.”

축제 공동위원장인 전등사 회주 장윤 스님(66)에게 고구려 소수림왕(381년) 때 창건한 국내 최고(最古)의 불교 사찰과 현대미술의 ‘특별한 인연’을 들어봤다.

지난 14일 전등사 가람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정족산사고의 장사고에서 ‘제10회 현대중견작가-성찰’ 전시회의 문이 열리고 있다.

2001년부터 ‘삼랑성 역사문화축제’
‘현대미술 중견작가전’ 10년째 후원
출품작 모두 구입해 300여점 소장

동국대 이사로 미술작가들과 ‘인연’
2007년 ‘신정아 사건’ 첫 제기해 수난
“불교미술-현대미술 보기 드문 교감”

지난 14일 전등사 정족산사고에서 개막한 ‘현대중견작가-성찰’ 전시회는 오는 22일까지 열린다. 김기라 작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
“난 잘 몰라요. 산중에 들어앉아 있는데 현대미술을 어찌 알겠어요.” 한사코 말을 아끼는 장윤 스님의 이력을 살펴보니, 사실 현대미술과 직접적인 관련은 보이지 않았다.

13살 때인 1964년 대구 동화사에서 출가한 그는 상목 스님의 상좌를 거쳐 서운 스님을 시봉했다. 85년부터 조계종 직할사찰인 전등사 주지를 20년 넘게 맡았고,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으로 7선을 지낸 종단의 원로다. 2002~07년 동국대의 학교법인 동국학원의 사무처장과 이사를 지냈고, 2004~08년 대구 능인학원 이사장을 맡았다.

궁금증은 지난 10년간 전시에 모두 참여한 서양화가 오원배 교수(동국대 미술학부)의 ‘뜻밖의 증언’으로 풀렸다. “2007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정아 학력위조 사건’ 때 가장 먼저 동국대 이사회에 문제 제기를 한 분이 장윤 스님이었어요. 저를 비롯한 대학미술협의회 교수들과 화단에서 스님께 자료와 함께 ‘제보’를 했거든요. 그 여파로 이사는 물론 주지 자리까지 내놓는 수난을 겪으셨지요. 그 파문을 계기로 인연을 맺은 미술인들과 자연스럽게 현대불교미술에 대하여 토론도 하게 됐죠. 이어 미술인들이 전등사에 ‘그림 보시’를 하자는 뜻을 모았어요.”

그 뜻에 동참해 정족산사고에서 특별전시를 하자는 아이디어와 함께 2008년 첫 전시를 기획한 것은 미술평론가 윤범모 동국대 석좌교수였다. “당대 현장에서 가장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는 중견작가 10명의 최신작을 한자리에서 소개하는 전시 자체가 보기 드문 사례라 할 수 있어요. 그보다 더 대단한 것은, 전등사에서 매해 출품작 전부를 구입해, 어언 10년 300여점의 현대미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점이죠. 물론 재료비 정도의 실비만 받지만 작가들에겐 큰 영광이자 후원이 되고 있죠.”

2012년 새로 자리한 전등사의 ‘무설전’은 불교신행과 현대미술 전시를 함께 하는 복합문화공간이자 그 자체 첨단 불교미학의 구현으로 명소가 되고 있다.
그렇게 ‘현대미술전’은 장윤 스님이 주지 시절인 2001년 10월 첫선을 보인 ‘삼랑성 역사문화축제’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았다. 2012년 11월에는 불교신행과 현대미술 전시를 함께 하는 복합문화공간 ‘무설전’도 들어섰다. 석굴암에서 영감을 받은 본존불은 금색이 아니라 흰색 우레탄 도료로 칠한 무광으로 김영원 작가가, 그 배경의 후불화는 프레스코 기법으로 부처와 십대 제자를 그린 벽화로 오원배 작가가 맡는 등 불교미술의 현대적 해석으로 화제가 됐다.

전등사 무설전의 법당 맞은 편 회랑을 활용한 서운갤러리. 지난 10년간 ‘현대미술 중견작가전’을 통해 소장하고 있는 300여점의 작품을 교대로 전시하고 있다.
장윤 스님의 은사이자 전등사 조실이었던 서운 큰스님의 이름은 딴 ‘서운갤러리’는 무설전의 회랑을 이용한 공간으로, ‘현대미술전’을 통해 수집해온 중견작가들의 작품을 교대로 소개하고 있다.

이번 가을 시즌엔 노상균·김태호·문범·한만영·강애란·조덕현·문경원 등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2012년 무설전 개관 기념전에는 민정기·서용선·임옥상 등 80년대 이래 민중미술가들의 작품도 내걸렸다. 오는 22일까지 열리는 올해 장사각 전시에는 오원배를 비롯해 공성훈·권여현·이종구·김기라·강경구·김용철·김진관·이주원·정복수 등이 참여했다. 특히 ‘성찰’ 주제에 맞춰 전등사 대웅보전을 소재로 한 작품을 저마다 한 점씩 선보여 비교의 재미도 맛보인다.

이처럼 작품이 계속 쌓이고 관객들의 발길이 더해지면서 전용 현대미술관을 짓자는 안팎의 요구도 커지고 있다. “인연의 시작은 나로부터 비롯됐지만 앞으로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지는 내 몫이 아니겠죠?” 역시나 말을 아끼는 회주 스님은 자신의 상좌이자 현 주지인 승석 스님에게 답을 넘겼다.

“전등사 남문 밖에 마땅한 자리가 있기는 합니다. 앞으로 3년 목표로 불자들의 정성을 모아볼 생각입니다.”

승석 스님의 화답을 누구보다 반긴 윤 교수는 “전통 불교미술의 보고인 사찰에서 현대미술까지 품게 되면서 과거와 미래의 교감이라는 예술 본연의 가치가 한층 살아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2007년 ‘신정아 학력 위조 사건’ 여파로 전등사 주지를 스스로 물러난 장윤 회주 스님은 가람이 전혀 보이지 않는 외진 구석에 자리한 ‘관해암’에서 수행하고 있다. 앞마당에서 직접 기른 푸성귀를 뜯어다 차려낸 ‘양푼이 비빔밥’ 공양.
그사이 장윤 스님은 축제 인파가 몰려 점심 공양을 따로 챙기기 어려운 일행을 위해 수행거처인 관해암 앞마당에서 직접 기른 채소들로 ‘양푼이 비빔밥’을 손수 비벼 냈다. “정성을 담았으니 밥 한 톨도 남기면 안 되는 거 알지요?”

강화도/글·사진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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