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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0.30 18:36 수정 : 2017.10.30 21:10

여덟번째 앨범 들고 돌아온 루시드폴

제주 살며 곡 쓰고 노래하고
직접 지은 오두막에서 녹음
자연스런 보컬 도드라져
‘엔지니어 조윤석’ 첫 앨범 의미

세월호 뭍으로 올라온 그날
1년만에 첫 곡 ‘부활절’ 작곡

“직접 해보지 않으면 평생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이 말이 지금 루시드폴(조윤석)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말 같았다. 세 해 전 제주에 내려간 루시드폴은 직접 귤 농사를 짓고 비료도 직접 만들어 쓴다. 앨범 발표 전 ‘무농약 인증’을 받은 귤을 생산했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농사 말고도 그는 직접 음악을 만들어 부른다. 인디 밴드 미선이의 멤버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건 그에겐 너무나 익숙한 일이었다.

여덟 번째 앨범 <모든 삶은, 작고 크다>에선 ‘직접’이란 목표를 갖고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자신이 원하는 소리가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 직접 9평짜리 오두막을 세우고 거기에서 노래를 녹음했다. 본디 녹음실이란 치밀한 설계가 필요한 공간이지만 루시드폴은 그저 ‘공간의 울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나무를 골라 바닥에 깔고 벽을 세웠다. 특별하지 않게 일상의 공간에서 노래하고 녹음하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오두막을 만들고 처음 기타를 튕기며 노래를 했을 때 일반적인 스튜디오와 다르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직접 해보지 않으면 평생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미선이 때부터 10장 가까이 음반을 냈는데 녹음실 엔지니어에게 ‘잘해줘’ 말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그래서 소스를 가지고 직접 해보고 싶었고, 특히 제 목소리가 어떤지를 알고 싶었어요. 아내랑 우리가 농사를 짓지 않았으면 우리가 먹는 것들이 어디서 왔는지 몰랐을 거라고 자주 얘기하는데 음악도 마찬가지 같아요. 직접 해보니까 정말 다르더라고요. 오두막도 직접 뼈대 세우고 콘센트, 문고리 하나하나 직접 고르고, 고장 나면 고치고 하는 것들이 제겐 또 다른 경험이었어요.”

그는 <모든 삶은, 작고 크다>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그에겐 거의 모든 앨범이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미선이 1집이 인간으로서의 첫 앨범이었다면 루시드 폴 1집은 혼자로서 첫 앨범, <레미제라블>은 전업 음악가로서 첫 앨범, <꽃은 말이 없다>는 프로듀서로서 첫 앨범, 이런 식으로 각각의 앨범에 의미를 부여했다. <모든 삶은, 작고 크다>는 엔지니어로서의 첫 앨범이다. ‘엔지니어 조윤석’은 자신의 목소리를 알기 위해 계속해서 녹음하고 듣고를 반복했다.

오두막에서 녹음한 소리는 여름밤 풀벌레 소리가 들어가 있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대신 보컬이 도드라진다. 루시드 폴은 “녹음하면서도 그렇게 되겠다 생각은 했다”며 “(브라질 음악가) 시쿠 부아르키(Chico Buarque)의 음반처럼 보컬이 커도 거슬리지 않는 그런 밸런스를 녹음 중간에 생각했어요”고 밝혔다. 시쿠 부아르키의 예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여전히 브라질 음악을 중심으로 이른바 월드 뮤직의 향취를 ‘루시드 폴(청명한 가을)’이란 이름에 어울리는 서정적인 스타일에 녹여낸다. 처음 이 시도가 성기고 어색한 면도 있었다면 이제는 오랜 시간 공을 들인 만큼 우아하고 자연스럽다.

제주에서 귤 농사를 지으면서, 그 역시도 귤나무와 닮아 있었다. 보통 귤나무가 해거리를 하며 한 해 열매를 많이 맺고 한 해 잠시 쉬는 것처럼 그도 한 해를 쉬며 정리를 하다가 곡을 쓸 시점이 됐을 때 몰아서 곡을 쓴다. 일곱 번째 트랙 ‘부활절’은 1년 넘게 쉬다 맺은 첫 열매다. 2017년 4월 15일에 완성한 이 노래에 대해 루시드폴은 “부활절 전야에 완성된 곡. 2년 만에 처음으로 노래를 쓴 그날은 세월호가 3년 만에 물밑에서 올라온 날이기도 하다”는 설명을 붙였다.

“첫 곡 하나를 쓰는데 한 달, 두 달이 걸리기도 해요. 보통 새벽 세 시쯤 일어나 곡 작업을 하는데 그날은 유독 실마리가 안 풀려서 계속 오두막에 있었어요. 그러다 우연찮게 완성을 했는데 티브이를 보니 마침 세월호가 올라오는 날이었고 부활절 전날이었어요. 의도와 관계없이 툭 떨어지듯이 첫 곡이 그렇게 쓰였고, 그 다음부터는 탄력을 받아서 일주일에 한 곡, 3일에 한 곡 썼던 것 같아요.”

‘부활절’은 이런 가사로 시작한다. “길고긴 밤을 넘어 이슬에 젖어있는 새벽 / 잠 못 이루고 기대앉은 우리 / 우리는, 얼마나 먼 길을 가야할진 몰라도 / 눈을 감은 그대여 아침이 왔어 우리가 그렇게 기다린 아침이” 루시드폴의 노래는 여전히 작고 크다.

글 김학선 객원기자, 사진 루시드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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