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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1.05 19:55 수정 : 2017.11.05 21:08

서울 인사아트센터 1층에 내걸린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앞에서 나란히 선 남편 노승기(오른쪽) 화가와 부인 장진영(왼쪽) 작가. 21개의 부분도를 연결한 637cm 대작으로, 연분홍 치마가 날리는 사진을 찍기 위해 수십번 치마를 펼치거나 모델을 서는 등 부인의 ‘내조’가 작품 곳곳에 숨어 있다.

늦깎이 데뷔 ‘개인전’ 노승기씨
암 이기고 산문집 펴낸 장진영씨
5년전 은퇴뒤 서로 꿈찾기 응원

서울 인사아트센터 1층에 내걸린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앞에서 나란히 선 남편 노승기(오른쪽) 화가와 부인 장진영(왼쪽) 작가. 21개의 부분도를 연결한 637cm 대작으로, 연분홍 치마가 날리는 사진을 찍기 위해 수십번 치마를 펼치거나 모델을 서는 등 부인의 ‘내조’가 작품 곳곳에 숨어 있다.
“보성고 1학년 때 불안정한 가정 사정으로 학교를 가지 않았더니 미술 교사였던 담임께서 미술실에서 놀기라도 하라고 넣어주셨어요. 그런데 정작 그림을 잘 못 그려서 동기와 위아래 선·후배까지 통틀어 미대를 못 간 2명 중에 한명이었죠. 하지만 그때 미대를 가지 않은 게 다행이지 싶어요. 그림을 업으로 했더라며 이렇게 자유롭게 즐기지 못했을 테니까요.”

지난 1~6일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 1층에서 첫 개인전이자 초대전 <권력과 저항>을 열고 있는 ‘늦깎이 화가’ 노승기(60)씨의 얘기다.

“타인은 포기하고 나 자신에게 유의미한 경험을 선택했다. 독자도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는 데 생각이 이르렀다. 한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해서 30년을 살았다. 그리고 그 남자가 올해 회갑을 맞았다. 이 책은 마음을 담아 수고한 이에게 전하는 나의 선물이다.”

전시장에서 도록과 나란히 선보이고 있는, 그 화가의 부인 장진영(54)씨의 산문집 <그림 그리는 남자 글쓰는 여자>를 펴낸 동기다.

그런데 도록과 산문집을 펴낸 출판사 ‘하우스 모차르트’ 대표는 남편이고 부인은 편집장이다. 요즘 단어조차 희귀해진 ‘부창부수’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하우스 모차르트는 원래 내가 지으려던 ‘시니어 타운’의 이름이었어요. 금융위기 한파로 동업자들이 줄줄이 쓰러지는 바람에 접어야 했죠. 그래서 자의 반 타의 반 은퇴를 하고 ‘그림’으로 돌아온 셈이죠.”

노승기 화가의 첫 개인전 ‘권력과 저항’ 포스터.
남편 노씨는 1983년 고려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뒤 30여년간 건축기술사와 건설업 경영자로 일했다. 6년 전 대학 시절 활동했던 미술동아리 서화회 친구들 모임에서 ‘동인전’을 하기로 뜻을 모을 때만 해도 선뜻 내키지 않았다고 했다. 오래전 대학 졸업 동인전 때 마음에 드는 작품을 그려내지 못했던 ‘불편한 기억’ 탓이었다고 했다. ‘한동안은 나를 괴롭히는 그놈이 ‘동인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실은 그놈은 ‘망설임’이었다. 하얀 캔버스 앞에서 붓 들고 있는 나를 상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래, 이제는 그만 도망다니자. 그리고 무엇을 그릴 것인가를 찾아보자. 그림 그리는 눈을 만들어보자.’

2012년 봄, 남편의 결심에 아내는 선뜻 응원을 해줬다. “삼십여년 전 결혼하고 첫 생일에 화구세트를 선물해주고 같이 보성고 교정에 들러 남편은 그림을, 나는 뜨개질을 했던” 추억을 간직해온 장씨는 55살 생일 선물로 팔레트와 물감을 새로 장만해줬다. 그로부터 5년, 학점은행을 통해 미술학사를 마치고 홍대 미술대학원에도 진학한 노씨는 남다른 성실성과 열정으로 그룹전을 꾸준히 해오더니 마침내 ‘전업작가’로 정식 데뷔를 한 것이다.

동시에 남편은 숙명여대 국문학과를 나온 아내 장씨에게 ‘작가의 꿈’을 되찾게 해주었다. 가난한 4형제 집안의 맏며느리로, 남매를 키우며,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살아온 아내가 지난해 돌연 폐암 수술을 한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올해 초 북한산 산기슭의 작은 다락방을 구해 아내에게 집필실을 선물하고 1인 출판사를 차려 두 권째 책을 내준 것이다.

“작가의 남편으로, 화가의 아내로, 서로 마주 보며 ‘인생 2막’을 함께 연출해갈 겁니다.”

글·사진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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