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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1.13 18:03 수정 : 2017.11.13 20:59

2014년 그린 작품 <전국노래자랑> 앞에 선 이상원 작가. 그는 자신의 작업들을 “군중을 시각화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뒤돌아보려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내일의 작가’ 수상 이상원 개인전

유원지에서 촛불집회 등으로 확장된 10년간의 군중 한자리
군중의 공통된 행동과 분위기에서 시대의 진실 찾기

2014년 그린 작품 <전국노래자랑> 앞에 선 이상원 작가. 그는 자신의 작업들을 “군중을 시각화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뒤돌아보려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여름에>란 제목이 붙은, 이 덩치 큰 조각그림과 마주하면 관객은 착시게임에 빠져들게 된다. 작은 수채화 154장을 맞붙여 만든 가로세로 5m 넘는 대작은 수채화 조각들마다 해변에서 피서하는 수영복 차림 남녀노소의 한무더기 몸짓들을 실감나게 그려놓았다.

우선 떨어져서 본다. 그림 속 사람들이 비슷비슷한 컬러무늬로 변해 화폭 바깥으로도 쏟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일어난다. 가까이 다가가 본다. 관객은 대개 어느 해수욕장의 심심한 풍경을 포착한 것으로 넘겨짚게 된다. 피서객들 행색, 행동거지가 다 비슷하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상은 정반대다. 그림 속 장소는 한국과 미국, 타이, 프랑스, 이탈리아, 뉴질랜드의 해변 수십곳. 작가가 국내외의 다기한 여름 해변 풍경들을 수년 동안 일일이 찍은 뒤 추리고 버무려 ‘세팅’한 결실이다. 그러니까 이 그림은 구상이 추상화하는 회화 표현의 변신술과 더불어, 서로 다른 듯 비슷해진 세계화 시대 획일적인 생활스타일의 변천상까지 털어놓는 셈이다.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 별관 1층에 내걸린 이 작품 <여름에>를 그린 이는 이상원(39) 작가다. 이 미술관에 ‘2017년 내일의 작가’ 수상 기념전 ‘군중의 색깔들’을 차려놓은 그는 억센 역마살 덕에 그림을 죽 그려왔다. 2006년 세상 곳곳의 얼굴 없는 군중들이 어떻게 나타나고 움직이는지 새의 눈으로 살펴보겠다는 뜻을 품었다. 당시 대학원 졸업 뒤 한강 강변공원이 마주보이는 곳에 작업실을 차렸다가 여가를 위해 모여든 이들의 획일적인 행렬들을 보고 군중과 시대를 포착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 뒤 지난 10여년간 이 땅과 국외 여러 나라를 떠돌면서 군중들의 각양각색 사진을 찍고 수채와 유화, 아크릴, 먹으로 그렸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부감 구도가 특징인 그림뿐 아니라 설치, 영상물, 미디어아트까지 작업 반경을 넓혔다. “발품 들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작업이 넓혀져갔다”고 했다.

이상원 작가의 2017년작 <쓰여진 것들>. 세월호 사건의 충격 속에서 자신의 작업을 되돌아보면서 생긴 상념들을 담은 글들을 중첩시켜 빽빽하게 써내려 가면서 만든 자전적인 글그림이다.

디지털 기술로 무엇이든 금방 이미지로 뽑아내는 시대에, 이 작가는 가장 많은 품이 들고 고통스럽기까지 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여러 상황 속의 군중들을 그려왔다. 수만장 사진을 찍고 수백번 드로잉하고 크고 작은 그림을 그리고, 그들 가운데서 최종 작품의 구도를 골라낸다. 그림의 색감, 형상, 설치방식 등에서 파격을 종종 감행하지만, 고투는 화면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관객들은 그가 <전국노래자랑>의 환호하는 군중을 찍기 위해 공연장 뒤 야산을 기어오르고 주변을 배회했듯이, 작품의 정면과 측면, 위아래 등을 두루 둘러보아야 이상원 회화 특유의 강직한 논리를 알게 된다.

본관 1, 2층 전시장에는 2000년대 초반 유원지, 놀이공원 등의 세부 인간군상들을 냉랭한 시선으로 포착한 작업들부터 노무현 추모집회장의 노란 풍선 물결, 촛불시위, 북한 평양의 반미집회장 군중 등을 두터운 유화물감으로 추상화한 근작들까지 십여년간의 군중 연작들이 망라돼 나왔다. 세월호 사건 뒤 쓰기 시작한 자성적인 글들을 화폭에 중첩되게 그려넣어 빽빽한 글자 숲으로 엉기게 한 신작 <쓰여진 것들>은 정직한 작가정신을 드러내는 징표 같은 작품이다. 19일까지.

(02)722-3729.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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