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1.29 18:26
수정 : 2017.11.2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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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 <트로이의 여인들> 음악감독 정재일. 국립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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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밴드로 데뷔·영화음악 참여
청와대 ‘트럼프 만찬’ 공연도
이번엔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
그리스 신화에 전통소리 입혀
‘판소리의 압도적 힘’ 선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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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 <트로이의 여인들> 음악감독 정재일. 국립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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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 <트로이의 여인들>(연출 옹켕센·극본 배삼식)은 그리스 신화에 우리 전통의 소리를 입힌 수작이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의 사랑의 도피로 시작된 10년 전쟁이 끝나고, 패전국인 트로이의 여인들이 노예로 끌려가게 되는 비통한 상황을 판소리로 표현한 공연이다. 웃음기라곤 없는 비극이나 120분간의 시간이 결코 지루하지 않다. 주연부터 코러스까지 누구 하나 처짐 없이 음악으로 풍성하게 채운 덕이다. 28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트로이의 여인들> 음악감독을 맡은 정재일(35)을 만났다.
정재일은 “텍스트만 봐도 너무 아름다운 작품이라 읽으면서 음악이 들리는 것 같았다”며 “판소리만 살리자는 연출자의 제안으로 여기에만 집중했다”고 말했다.
<트로이의 여인들>은 배역별로 지정된 악기가 소리꾼과 짝을 이뤄 극을 이끈다. 트로이의 왕비인 헤큐바는 강인함을 주려고 장엄한 거문고를, 복수심에 불타는 딸 카산드라에겐 그 열기를 더해줄 대금을 배치했다. 남편과 어린 아들마저 죽임을 당한 며느리 안드로마케의 찢어지는 아픔은 처연한 음색의 아쟁으로 표현했다. “헬레네와 짝을 이루는 건 피아노다. 유일한 서양악기다. 극 중에서 여성도 남성도 아닌 ‘절대적 미’로 그려지는 서정성을 표현하는 데 화성 악기인 피아노가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현대음악을 하는 작곡가이지만 정재일의 전통음악 사랑은 유별나다. 국악그룹 푸리 활동을 했고, 소리꾼 한승석과 함께 지금껏 2장의 판소리 앨범을 발매했다. “판소리가 한국어로 된 노래 중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시김새(음을 꾸며내는 모양새)나 가사 표현이 기가 막히다. 판소리 완창의 경우 3~5시간을 하는데 그렇게 압도적인 에너지를 쏟아내는 음악이 세계적으로 매우 드물다.”
판소리의 세계화 가능성은 이미 여러 번 확인했다. 지난해 초연한 <트로이의 여인들>은 올해 9월에 싱가포르 예술축제에 초청돼 다녀왔고, 내년 5월과 6월엔 영국 브라이턴과 런던에서 초청 공연을 한다. “한번은 독일에서 ‘적벽가’ 공연을 보는데 객석의 몰입도가 정말 대단했다. 소리꾼 이자람은 프랑스에서 책을 낼 정도로 공연을 많이 했다. 이번 창극의 싱가포르 공연 반응도 그렇고, 판소리가 가진 힘은 그만큼 의심의 여지가 없다.”
중학교 3학년 때 한상원·정원영 밴드의 멤버로 공식데뷔한 정재일은 20년간 경계 없는 음악을 해왔다. 각종 뮤지션의 앨범에 참여한 것은 물론 영화 <해무> <옥자> 등의 음악을 만들고, 연극 <그을린 사랑>,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등의 무대 음악을 맡았다. 미술가들과 함께 전시 및 설치음악 작업도 한다. 이달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 때 청와대 환영 만찬 공연을 맡기도 했다. 얼굴이 덜 알려져 있다 보니 가수 박효신과 함께 있는 사진에서 ‘일반인’으로 오해돼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재일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고, 아무렇지 않았다”며 웃었다.
<트로이의 여인들>을 하는 지금도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설치미술가인 장민승 작가와 미술 작품을 준비 중이라 조만간 부다페스트로 녹음을 위해 떠난다. 같은 소속사인 박효신의 앨범 곡 작업을 하면서, <제이티비시>(JTBC) 예능 <비긴 어게인 2>의 출연도 논의중이다.
“예술 창작자보다 소비자가 본업이다. 무용, 연극, 인문학 등 좋아하는 것들이 모두가 연결되다 보니 하는 일의 가지가 자꾸 뻗어 나가는 것 같다. 이제는 경험치를 늘리기보다 깊이를 더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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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 <트로이의 여인들>. 국립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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