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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2.11 05:01 수정 : 2017.12.11 09:25

8일 오후 루이지 콜라니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전시장에서 드로잉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디디피 제공

-곡률의 디자이너 루이지 콜라니 전시회-
비행기부터 찻잔까지…날렵한 곡선미 눈길
공기역학 등 자연법칙 응용한 ‘조형의 학자’
DDP설계 자하 하디드와의 비교도 흥미

8일 오후 루이지 콜라니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전시장에서 드로잉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디디피 제공

“지구는 둥글다. 모든 천체도 둥글다. 천체는 원운동을 한다. 이는 미시세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나는 갈릴레오의 철학을 추구할 것이다. 나의 세계는 둥글다.”

배·자동차·항공기부터 시계·안경·만년필·찻잔 같은 소품까지 부드럽게 굽이치는 선과 날렵한 형태미로 ‘곡률 디자인’을 성취해낸 디자이너 루이지 콜라니(1928~)가 작품 50여점을 들고 한국에 왔다. 8일 오후 기자간담회가 열린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나타난 그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지만 아흔살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왕성한 에너지를 뿜어냈다. 한시간가량 진행된 간담회 내내 “더 많은 질문을 에너제틱하게 하라”며 호령했고, 자신을 촬영하던 기자를 갑자기 불러 그의 캐논 카메라를 뺏어 들곤 “이게 콜라니 스타일”이라고 외쳤다. 전시장에선 직접 드로잉을 하는 작업을 보여주기도 했다.

곡선형 디자인으로 그립감이 우수한 캐논 T90. 디디피 제공
귓바퀴 모양인 스피커. 디디피 제공
평소 “인간이 만든 어떤 구조물보다 거미줄이 더 탁월하다”고 말해온 콜라니답게 이번의 전시 주제는 ‘바이오 디자인’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90%는 자연에서, 10%는 멍청한 번역가 콜라니에게서”라고 설명하며 영감의 원천은 자연이라고 했다. 콜라니에게 자연이란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만이 아니다. “미래의 디자이너들은 질문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 옳은 일을 하고 있는가? 우리가 써야 하는 만큼 적절히 소재를 쓰고 있는가? 만약 역사가들이 지금 이 세기를 찾아온다면 범죄의 세기라고 명할 것이다”라는 말은 그의 디자인 철학을 압축하고 있다. 인간의 산업기술이 지구에 끼치는 ‘민폐’를 줄일 방법을 구체적으로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연비가 높은 항공기 돌고래 에어버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미래형 스포츠카 T600.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베를린에서 조각을 공부한 뒤 파리의 에콜폴리테크니크에서 공기역학을 배운 것도 그런 맥락이다. 콜라니의 전시를 전담해온 기획자 로베르토 궤리니는 “콜라니 인생의 관심사는 더 빠르고 더 효율적이고 더 안전한 비행기·자동차·배를 만드는 데 있었다”고 말한다. 1971년 오일쇼크를 목격하곤 연비가 우수한 유선형 트럭을 처음으로 만들었고, 효율이 높은 터빈을 설계해 상용화시키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 나온 돌고래 에어버스(1968)는 1천명을 태울 수 있는 항공기로, 우아하고 민첩한 형태뿐 아니라 에너지 효율이 높은 터빈을 장착해 운항 거리를 30% 늘릴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최근 작품인 미래형 스포츠카 T600(2015)은 길이가 5.5m, 높이는 2.2m에 달하는데 시속 600㎞를 목표로 한다. 전시장에 놓인 텔레비전·의자·그릇 등은 공상과학영화의 소품 같은 느낌을 준다.

스탠드형 텔레비전.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루이지 콜라니의 특징인 부드러운 곡선이 돋보이는 쿠슈 의자. 디디피 제공

그러나 시대를 너무 앞서간 탓에 그의 작품은 현실화되지 못한 것이 많다. 지난 수십년 동안 각종 탈것 등을 포함해 6000여개의 제품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는데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않거나 대량생산체계엔 적합하지 않은 것들이 많아 비전을 제시하는 데서 그쳤다. 콜라니를 산업디자이너가 아니라 ‘조형의 학자’라고 말하는 이유다.

콜라니의 작품과 형태적 유사점이 있는 디디피에서 이번 전시회가 열린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콜라니는 디디피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가 자신의 작품을 보고 난 뒤 작업 스타일이 직각에서 곡률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유사성 말고도 두 사람의 차이점을 대조해 보는 것 또한 흥미로운 일이다. 김민수 서울대 디자인역사문화전공 교수는 “하디드와 콜라니의 디자인이 비슷해 보이는 것은 맞지만, 하디드는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곡률 디자인을 실현시킬 수 있었던 반면 콜라니는 그 모든 3차원 작업을 수작업으로 해냈다. 또 하디드는 조형적 요소를 강조하면서 기술적 발전을 다소 과장되게 기념비적으로 남기는 데 치중했지만, 콜라니는 자연법칙에서 어떻게 아름다움을 뽑아낼지 연구하는 이상주의의 맥락에 서 있다”고 평가했다. 3월25일까지. (02)2153-0690.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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