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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2.12 05:01 수정 : 2018.02.12 09:21

출장작곡가 김동산이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서촌의 식당 ‘궁중족발’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녹음하고 있다.

행사서 부른 노래 호응 별로라
‘1000원에 노래 만들어줘요’
즉흥적으로 ‘출장작곡’ 시작

‘첫고객’은 왕따 경험한 초등생
‘잘 지내보자’ 노래에 누나는 펑펑
“노래로 소통할 수 있겠다”생각

노부부 일생·한국사회 문제…
일상사는 이들 사연 100곡 노래로
”노래로 만드는 ‘만인보’” 응원 받아

출장작곡가 김동산이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서촌의 식당 ‘궁중족발’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녹음하고 있다.
김동산이라고 합니다. 노래하는 사람이고, ‘출장작곡가’라고 부르고 불립니다. 출장작곡가란 말 생소하시죠? 말 그대로 자신만의 노래를 원하는 분들에게 찾아가 사연을 듣고 노래를 만들어주는 사람이에요. 어릴 때 지금은 세상을 떠난 ‘도시아이들’의 김창남씨가 방송에서 남편이 만날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온다는 한 아주머니의 사연을 유쾌한 세미 뽕짝으로 만들어주는 걸 본 기억이 있거든요. 그 기억이 지금 출장작곡가 김동산의 일부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수원에서 자랐어요. 혼자 기타를 치다가 고등학생 때 스쿨밴드 활동도 했고, 처음에는 또래들 듣는 너바나나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메탈리카, 건스 앤 로지스 이런 것들 듣다가 거꾸로 옛날 음악들을 찾아 듣기 시작했죠. 에릭 클랩턴, 닐 영, 밥 말리 같은 고전을 듣고, 음악을 들을수록 블루스가 좋아져 군대에서 전역하고는 수원 친구들과 블루스 밴드를 하기도 했고요.

곡을 만들기 위해 의뢰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작곡가 김동산.
첫 직장이 서울내러티브연구소라는 곳이었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 ‘담화’를 통해 이에 대비하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곳이었어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는데, 이게 상당히 스킬이 필요한 일이거든요. 예를 들어 대구 지하철 참사 생존자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피해자분들의 감정에 너무 깊이 개입해서도 안 되고 그때 상황을 정확하게 기억하게 해서 트라우마를 감소시켜야 하는 일이에요. 저는 거기에서 주로 기록 및 실무를 맡았는데 생각해보면 그때 했던 일이 지금 제가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노래를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또 ‘쓰레기’에 꽂혀서 환경운동을 하기도 했고요. 쓰레기 줄이기 운동도 하고 재생예술도 배우고 정신적으로도 검소하게 살자는 운동인데, 제가 지금 수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롱-플레이’도 그 운동의 연장이에요. 오래된 물건이나 잡동사니 같은 것들을 파는 되살림 가게입니다. 음악 좋아하는 분들 오셔서 카세트테이프나 엘피 사셔도 좋고요.

출장작곡가 작업은 저랑 잘 맞습니다. 제가 미리미리 계획하거나 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마치 잼(jam) 연주를 하듯 즉석에서 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출장작곡가의 첫 작업도 무척 즉흥적이었죠. 2010년 환경운동 행사가 있던 수원의 한 공원에서 즉흥적으로 시작을 한 거거든요. 반핵을 주제로 한 노래 ‘물결’을 불렀는데 호응이 별로여서 즉석에서 라면 박스에 “출장작곡 해드림―단돈 1000원에 자신만의 노래를 만드세요”라는 문구를 적고 첫 손님을 기다렸어요.

작곡가 김동산이 ‘아현포차 30년사’공연을 앞두고 준비하고 있는 모습.
첫 ‘고객’은 영원히 잊지 못하죠. 대학생 누나 손을 잡고 온 한 초등학생이었어요. 작년까지 같이 잘 놀던 친구들이 학년이 바뀌면서 자기를 왕따시킨다는 게 꼬마의 고민이었어요. 사연을 듣고 일부러 밝은 분위기로 “다시 잘 지내보자”는 가사를 써 노래를 불러줬는데 노래를 들으면서 누나가 펑펑 우는 거예요. 그때 처음 내 노래가 모든 사람에게는 아니겠지만 누군가에겐 소통의 계기가 될 수 있구나 생각을 하고 출장작곡가의 길을 걷게 된 거죠.

그렇게 노래를 만들다 보니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이 생겼어요. 유난히 노래가 잘 나온다 싶을 때가 있는데 집에 와서 다시 들어보면 본 조비 노래 표절일 때도 있고요. 보통은 연령에 맞는 장르를 몇 개 생각해 두거든요. 한 어머님에겐 트로트로 노래를 만들어드리려 했는데 어머님이 크리스천이라며 트로트 싫어하신다고 하셔서 급하게 “옛날 흑인 노예들이 하나님 찾으면서 불렀던 음악”이라고 영가 스타일로 노래를 만들어드린 적도 있고요.

경로당 찾아가서 할머니·할아버지 이야기 듣고 노래도 만드는데 대부분 좋아하세요. 그런데 1·4 후퇴 때 얘기, 남편분이 정신병에 걸려서 힘드셨던 얘기, 시가에서 쫓겨나 소박맞은 얘기, 너무 고생한 이야기가 많으셔서 듣고 있는 게 힘들 때도 있어요. 남궁순 할머니 노래도 있는데, 할머니가 할아버지와 너무 행복한 일생을 보내셨다고 해서 그 이야기를 ‘남궁순의 러브송’이란 노래로 만들어서 할머니·할아버지 앞에서 불러드린 적도 있거든요. 노래 만들고 2년 뒤에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기억에 남아요. ‘남궁순의 러브송’은 유튜브에 가면 들을 수 있습니다.

출장작곡가 김동산의 공식 앨범 <서울·수원 이야기>와 해설집
노래 하나를 만드는 데 30분 정도가 걸려요. 10분 정도 의뢰자의 이야기를 듣고 20분 동안 노래를 만들거든요. 이번에 발표한 앨범 <서울·수원 이야기>에는 수원시립 ‘아이파크’미술관, 콜트·콜텍, 옥바라지골목 등 신문 사회면에서 볼 수 있는 한국 사회의 문제를 많이 담았지만 계속해서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분들의 노래를 만들려고 해요. 이미 만들어놓은 노래만 100곡이 훌쩍 넘고요. 저는 고은 시인의 <만인보>를 몰랐거든요. 이걸 한참 하다 보니까 한 분이 노래로 만드는 <만인보> 같다며 응원을 해주시더라고요.

왜 노래를 하냐고요? 잠깐 생각 좀 할게요. 되게 어렵네요.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영향을 받았던 것들을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실제로 해보니 몇 명이라도 공감을 해주시더라고요. 그것보다 가치 있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일 가운데선 많지 않을 것 같아요. 내가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피드백을 노래를 통해서 받을 수 있는 거죠. 사회와 나, 타인과 나의 관계에서 모두를 좀 더 괜찮게 해주는 게 노래인 것 같아요.

김학선 객원기자 사진 땅도프로덕션, 황경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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