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2.14 17:01
수정 : 2018.02.14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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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안리 하얀 수녀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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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안리 하얀수녀원’ 책에 담긴
분도수녀회 부산 본원 증·개축
건물 원형에 ‘혈’ 살리는 세심한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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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안리 하얀 수녀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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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이었다.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분도수녀회) 소속의 호세아 수녀가 자료가 가득 담긴 두툼한 갈색 봉투를 들고 건축가를 찾아왔다. 서울과 부천의 수녀원을 개·증축하는 일을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건축사사무소 오퍼스·모노솜디자인이 설계한 가톨릭 그룹홈 시설인 ‘수국마을’(2013년)을 보고 찾아왔다고 했다. 건축가 우대성은 집주인들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위해 부산 광안리에 있는 분도수녀회 ‘본원’을 방문하기로 했다. 마침 방문한 날은 수도회에서 가장 중요한 의례 중 하나인 ‘종신서원식’(수도자들이 하느님에게 자신의 일생을 봉헌하기로 약속하는 의례)이 열리고 있었다. “성당을 좀 새로 지어야 하는데… 좁고 비가 새고 천장에서 뭐가 떨어지고…” 부산의 수녀들은 성당을 새로 짓자는 뜻밖의 제안을 했다. 수도원 성당의 초록색 불투명 유리 창문으로 한여름 햇볕이 스며들었고 수녀들의 기도 소리로 실내 공기가 부풀어올랐다. 건축가는 왠지 이 프로젝트에서 발을 뺄 수 없겠다고 생각했던 예감이 맞아떨어짐을 느꼈다.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광안리 하얀 수녀원>(우대성·조성기·김형종 지음, 픽셀 하우스 펴냄)은 1965년 지어진 분도수녀회 부산 본원을 50년 만에 증개축하는 과정을 담은 기록이다. 건축가들은 설계부터 완공까지 부산 현장을 70번 넘게 방문했고, 수녀들을 대상으로 7차례의 건축설명회를 열었다. 수녀원의 첫번째 요청은 성당 신축이었으나, 건축가들은 현장을 둘러보고 수녀들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 “새롭게 지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결국, 성당을 새로 짓는 대신 증축을 하고, 수녀들의 숙소와 주방·작업실 등을 손보는 동시에 도서관을 신축하기로 했다. 건축가는 “기존 질서의 유지라는 바탕에 소통의 흐름을 만드는 것”을 수녀원 리모델링 프로젝트의 원칙으로 삼았다.
건축가들은 수도원 리모델링 작업을 ‘혈을 짚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막힌 곳에 새로운 길을 내 사람·공기·빛의 흐름을 터주는 작업이란 뜻이다. 텃밭과 주방 사이 문을 내고, 도서관 회랑이 중정과 맞닿게 함으로써 마당과의 접촉면을 늘렸다. “벽은 문으로, 창은 길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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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안리 하얀수녀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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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명이 50년간 쓰는” 건물을 만들기 위해 건축가는 오랫동안 시간이 지나더라도 변치 않는 검박한 느낌과 이를 구현하는 재료를 선정하는 데 고심했다. 건물 표면은 기존의 수도원과 같은 흰색을 유지하되 오염을 덜 타는 외부단열재(모노쿠슈)를 발라 따뜻하고 내구성이 강한 건물을 만들었다. 도서관을 신축하면서도 이전 건물을 뜯으며 나온 목재를 깎고 다듬어 바닥에 깔았고, 낡은 책장도 분해해서 서가의 판으로 재활용했다. 문 손잡이 같은 소품도 가능한 한 되살려 썼다.
흔히들 수도원을 종교시설로 간주하지만, 건축가들의 눈에 중요한 것은 일상이었다. 건축가들은 “식사를 준비하고 집을 청소하고 빨래를 하는 일상적 노동을 무시하고서는 훌륭한 삶을 살 수 없다”는 톨스토이(‘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의 글귀를 되새기며 “신발 한 켤레가 비뚜루 놓여도 감지되는 (수도회의) 섬세한 일상”을 존중하려고 애썼다.
건축가는 수도원 건축이 앞으로 우리 사회의 과제인 ‘1인 고독 세대’의 주거문제를 찾을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우대성 건축가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공동으로 쓰는 시설물이 혼재돼 있는 수도원 건축은 노인주거나 공유주택에 좋은 모델이 될 것”이라며 “각각의 집단에 맞는 기율과 일상의 원칙을 살려 수도원 건물의 원리를 변주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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