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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5.03 09:27 수정 : 2018.05.03 09:27

지금 청소년들에게 독일은 어떤 이미지일까? 부자 나라, 자동차 강국, 축구 잘하는 나라, 맥주와 소시지 정도일까? 지금 아재들이 청소년이었던 1980년대에는 달랐다. 그때 독일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우리나라와 같은 분단국가라는 이미지였다. 실제로 2차 대전 이후 독일은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어 수십 년을 살았다. 한반도에 휴전선이 있다면 독일에는 베를린 장벽이 있었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을 동서로 나누는 장벽의 길이는 43킬로미터. 서베를린 외곽 장벽은 무려 156킬로미터에 달했다. 베를린 장벽은 독일의 분단뿐만 아니라 수십년 동안 이어진 냉전시대의 상징이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1989년 크리스마스. 전설적인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이끄는 교향악단이 베를린 시내 한복판에서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환희의 송가’를 연주하는 장면이 뉴스에 나왔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은 서독과 동독 출신을 아울렀고 심지어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에서 온 사람들도 참여했다. 그리고 시민들이 직접 곡괭이와 망치로 베를린 장벽을 허무는 모습도 중계되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실감이 안 나서 멍하니 뉴스를 지켜봤다. 왠지 모를 감격이 치밀어 올라 눈물을 흘렸던 기억도 난다. 장벽의 규모가 워낙 컸기에 실제로 장벽이 다 철거되는 데는 거의 1년이 걸렸다.

그즈음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던 독일 록그룹 ‘스코피언스’의 노래가 발표되었다. 제목은 ‘윈드 오브 체인지’. 록에 미쳐 있었던 나는 당연히 음반을 사고 뮤직비디오를 구해 보았다. 휘파람 소리로 시작해 장엄한 멜로디로 이어지는 노래 자체의 감동만큼 뮤직비디오도 인상적이다. 세계 각국에서 벌어진 전쟁과 분쟁, 민주화의 주요 장면들이 실제 화면으로 삽입되어 있다. 시민들이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는 모습은 물론이고, 아직 엄혹한 냉전의 굴레에 갇혀 있던 모스크바의 거리, 중국 천안문의 광장에서 한 청년이 맨몸으로 탱크를 막아서는 그 유명한 장면까지. 그야말로 냉전시대의 주요 장면들을 요약해 놓은 영상물이라고 해도 좋다.

이 노래는 독일 통일의 상징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냉전시대의 종식을 선언하는 노래가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마치 데자뷔처럼 미래의 어떤 사건을 예언하는 노래가 되었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우리나라가 통일되는 순간이 떠올랐다. 그 과정은 독일 이상으로 극적일 것이다. 휴전선의 철조망은 통일을 기념하는 거대한 구조물로 바뀔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한강이 아닌 대동강 변에서 피크닉을 즐길 것이다. 백두산이 보이는 호텔에서 사랑을 나눌 것이다. 노래를 들을 때마다 이런 식으로 미래의 순간순간을 떠올렸다.

내 또래의 아재들은 통일보다 반공 이데올로기를 먼저 주입받으며 자란 세대다. 특히 내 경우는 누구보다 철저하게 반공 교육을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무장공비가 침투했던 울진-삼척 지역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공산당이 싫다고 외치다가 입이 찢어져 죽었다는 이승복 어린이는 서울 아이들에게는 교과서에 나오는 인물이지만 나에게는 동네 형이었다. 내가 뛰놀던 앞바다는 북한 간첩이 침투해 온 군사작전 지역이었다. 어린 시절 내 의식을 지배하던 반공의식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이사를 오면서 조금씩 흐려졌다. 대신 수도 없이 이 질문을 떠올렸다. 과연 우리나라는 내가 죽기 전에 통일이 될 수 있을까?

북한 잠수함 침투사건, 서해교전, 연평도 해전, 천안함 침몰사건…. 그리고 끝내 감행해버린 핵무장. 북한의 태도를 볼 때마다 비관적인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는 안 돼! 매번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은 대화와 회담, 각종 선언도 지리멸렬해 보였다. 그런데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다르다. 어떻게 다른지는 수많은 뉴스에서 분석해 줄 것이고, 음악 칼럼인 이 글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지금…, 환청이 들린다. 어, 이 노래는? 스코피언스의 ‘윈드 오브 체인지’잖아? 통일을 예언했던 바로 그 노래!

고백하건대, 우리나라의 통일은 북한정권의 붕괴로 인해 갑작스럽게 찾아올 거라고 예상했다. 그럴 거면 차라리 최대한 늦게 통일이 되는 게 낫겠다는 생각까지도 한 적이 있다. 통일 후에 우리가 감내해야 할 혼란과 고통 분담이 두려웠다. 그런데 이번 회담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의 통일도 합의와 계획에 맞춰 진행될 수 있고, 겁내는 것보다 훨씬 더 질서정연하게 이뤄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

에헴. ‘윈드 오브 체인지’를 들으면서 예언을 하나 할까 한다. 멀지 않은 어느 날, 이 칼럼을 평양의 한 호텔에서 쓰게 될 것이다. 그 칼럼에서 잘난 척을 하리라. 나는 이 순간을 예언했다고.

함께 노래를 듣고, 함께 뮤비를 보고, 함께 예언해보자. 통일 후 우리의 모습을.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은 어디서 무엇을 제일 하고 싶은가?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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