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5.03 18:05
수정 : 2018.05.03 21:08
김주대 ‘한겨레’ 연재작 등 125점
‘시인의 붓’ 묶고 15일까지 전시회
처음엔 ‘밥’ 때문이었다. 5년 전 페이스북에 글 쓰는 재미를 붙이면서 ‘에스엔에스로 시 팔아 먹고사는 방법 없을까’ 궁리했었다. 한 페친이 태블릿 피시를 주면서 그림과 시를 함께 담은 파일을 만들어달라고 한 것이 계기였다. 터치 스크린으로는 그림 맛이 안 나 결국 붓을 들자, 페친들은 이번엔 어떤 붓을 사라, 종이는 뭘 써라 하면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첫 작품이 15만원에 팔리자 붓을 계속 쥐기로 했다. 본래 ‘문인화’란 직업적 화공이 아닌 문인들이 기예를 닦고 예술적 소양을 가다듬기 위해 짬을 내 그리는 것이지만, 시인 김주대에게 문인화는 가난한 시의 시대에서 생존하기 위한 도구였다.
2015년 첫번째 시화집 <그리움은 언제나 광속>(현암사)을 펴낸 김 시인이 그동안 <한겨레> 신문에 연재한 작품들과 페이스북에 실었던 그림 125점을 묶어 책으로 펴냈다. <시인의 붓>(한겨레출판). 그는 책에 실린 작품 중 66점을 골라 15일까지 서울 인사아트프라자갤러리에서 ‘김주대 문인화전―웃는 붓’ 전시회도 연다.
그의 그림과 글은 그리 행복하지 못했던 유년기의 기억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극진한 사랑의 경험과 그 결핍에서 오는 외로움, 천진함과 천연덕스러움이 적절히 조화된 눈치있는 눙침, 불의한 정치에 대한 분노와 새 시대에 대한 희망 등을 담고 있다. 사람을 만나면 사사삭 사라지는 ‘도둑 고양이’를 보면서 “새벽, 아버지의 칼을 피해 도망치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돌아보면, 모든 속도가 슬프다”고 읊조린다. 새벽차를 타고 아들의 전시장을 찾아 떡을 나눠준 어머니(<어머니를 나누어드립니다>를 위해 “조상님요, 부처님요, 하느님요, 위에서 보면 뭐 좀 보이능교, 저분이 우리 어무이라요”라고 능청을 떨며 “맨날 저커고 사시이 소원 함 들어주소”라고 빈다. 무거운 짐을 끌고 당기며 들판을 걷는 모자의 대화는 또 어떤가. “어머니, 좋은 날이 올까요?” “살다보면 와, 안 와도 가야 하는 거고.” “네, 어머니.” “아들아, 가자, 가다보면 온다.”
차에 물감과 물통, 붓 세자루 싣고 “여, 저, 빌빌 돌아댕기며” 부지런히 살지만, 화폭에 찍히는 외로움의 발자국은 어쩔 수 없다. 무리에서 벗어나 뽀로로 날아가는 두 마리의 새들을 그리면서 “세상 둘도 없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둘도 없이 외로운 자들…세상 같은 것 날마다 버리고 싶은 자들이니 사랑의 지극은 고독의 지극이다”(<저희끼리>)라고 노래한다.
지금은 기적적으로 남북관계가 해빙기를 맞게 됐지만, 남북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았던 2015년 박근혜 정권 당시 김 시인은 안타까움과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미륵님, 올라만 좀 빨리 와요. 우리나라가 이상해요. 전쟁광들이 판을 쳐요. 남이든 북이든 세상을 이래 만드는 사람들 그 심장의 원점을 타격해주세요.”(2015년 원점 타격). 최근 4·27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을 기원하는 전면광고 이미지를 딱 1천원 받고 그려준 김 시인은 “독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화구 들고 북쪽 가서 빌빌, 돌아댕기고 싶어요. 북한 사람들이 가라고 허락하는 데만 가도 상관없어요. 내가 가진 감각만으로 우리들의 깊은 동질감을 표현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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