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5.04 05:01
수정 : 2018.05.0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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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미술관 건축미학의 핵심으로 꼽히는 중앙홀 입구 모습. 2층에서 3층까지 9×9×9m의 빈 정육면체 모양으로 공간을 틔운 것이 특징이다. 미술관 특유의 3분할 구성의 원리가 가장 극명하게 반영된 얼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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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미술관:근대의 걸작’전-
국내 최초의 전용 미술관 ‘덕수궁관’
80주년 맞아 건축 내력 첫 조명
중앙홀·나선계단 등 ‘8경’ 공간 감상
이중섭·박수근·김환기 작품 등
미술관 소장작, 수집 사연 담아 소개
근대미술 컬렉션 변천사도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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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미술관 건축미학의 핵심으로 꼽히는 중앙홀 입구 모습. 2층에서 3층까지 9×9×9m의 빈 정육면체 모양으로 공간을 틔운 것이 특징이다. 미술관 특유의 3분할 구성의 원리가 가장 극명하게 반영된 얼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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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미술관으로 지었는데, 근대 작품을 내걸 수 없었다.
이 떡 벌어진 미술관 앞에서 지난 세기 국내 미술가들은 오래도록 열등감을 곱씹어야 했다. 1938년 3월, 서울 덕수궁 석조전 서쪽에 일본인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헤이의 설계로 들어선 조선 최초의 전용미술관은 첫발부터 개운치 않았다. 일제 총독부는 미술관을 불상과 도자기 등 옛 조선왕실의 고미술 수집품만 모아 보여주는 ‘이왕가 미술관’으로, 고종 황제의 마지막 거처였던 석조전은 일본 근대미술 전시장으로 변질시켰다. 식민정책의 모토였던 ‘내선일체’를 가시화하고 일본 미술과 조선 미술의 격차를 부각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식민지시대 많은 화가들이 웅장한 6개의 열주를 두른 이왕가미술관 앞을 지나며 탄식을 내뱉곤 했다. 해방 직후인 1945년 10월 무려 97명의 작가가 이 미술관에 몰려들어 ‘해방기념 문화대축전 미술전람회’를 열고 132점의 작품을 쏟아낸 건 이런 차별에 대한 일종의 ‘한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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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분관의 정면 모습. 1938년 일본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헤이의 설계로 완공된 건물이다. 건립 당시에는 ‘이왕가미술관’이란 이름 아래 일제강점기 옛 조선왕실에서 수집한 고미술 컬렉션을 주로 전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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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뒤엔 덕수궁미술관, 국립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쓰는 주체와 이름이 계속 바뀌면서 부지해온 현재의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분관은 착잡하고 혼돈스러운 공간 역사를 지닌 건축물이다. 지난 3일부터 미술관 전관에서 시작된 특별전 ‘내가 사랑한 미술관: 근대의 걸작’이 기획된 배경 또한 일제강점기의 건립 80주년과 1998년 덕수궁관 개관 20주년을 함께 기억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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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2층 남쪽 전시실 문 바깥에 설치된 나선형 계단.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건립 당시의 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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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영역으로 짜인 전시는 건축물 자체를 소장된 그림, 조각 등의 근대 명품 100여점과 더불어 출품작으로 설정한 점이 독특하다. 건축사가인 김종헌 배재대 교수가 기획한 1부 ‘1938년 건축과 이왕가미술관’이 그것이다. 70~80년대 국전 전시장으로 쓰이면서 국가전람회장으로만 비쳐왔던 덕수궁관의 건축 내력을 처음 재조명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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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올린 덕수궁미술관의 나무판 상량문. 중앙홀 부분의 유리천장 철골 구조물에 붙은 채로 남아 있다가 최근 발견됐다. ‘이왕가미술관’이란 이름과 건축물의 장수를 기원하는 소망 글귀 등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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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자는 미술관이 소장한 근대기 명품들과 비슷한 성격의 주요 소장품으로 건축물을 간주한다. 중앙홀과 연결통로, 나선계단 등 미술관 안팎의 여러 공간들을 이른바 팔경으로 분류해 감상 대상들로 놓고 동선을 짰다. 특히 정면 입구 코린트식 기둥의 기둥 간격이자 석조전과 미술관을 잇는 통로의 폭인 3m를 미술관의 공간과 형태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 단위요소(모듈)로 파악하고, 이 수치가 기본이 된 중앙홀의 가로세로 높이 9×9m의 정육면체 빈 공간을 건축 미학의 핵심으로 제시했다. 관객들은 원래 검정색으로 복원된 홀의 기둥과 남쪽 출입구 쪽의 나선형 계단, 계단실 위의 수작업 전등, 유리창 천장 아래에 널빤지 모양으로 붙은 상량문 사진 등을 미술관 곳곳을 옮겨 다니며 볼 수 있다. 생생하게 현장성을 살린 설계도면과 시방서들, 수년 전 일본에서 발견된 바로 옆 석조전의 설계도면 등도 1부 전시에 나와 그림 같은 미감을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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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전시장에 나온 미술관 설계도면들 가운데 일부인 ‘채광을 위한 지붕 철골 상세도’.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는 중앙홀 유리지붕의 철골 얼개를 상세히 표현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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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부는 미술교과서 등에서 낯익은 근대 그림·조각 소장품들의 특별한 마당이다. 1972년 ‘한국근대미술 60년’전 이후 국립미술관에서 모으기 시작한 근대 컬렉션들이 선별돼 수집 내력과 함께 내걸렸다.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이인성, 유영국 등 대중에 널리 알려진 거장들을 비롯한 작가 70여명의 명품들이다. 최초의 양화가 고희동이 타계한 뒤 발견된 <자화상>, 인상파 화풍의 대가 오지호의 <남향집>, 최근 수집한 이중섭의 해방 전 작품 <세 사람> <소년>, 권진규의 명작 <지원의 얼굴> 등을 간략한 수집 사연과 함께 만나게 된다. 덕수궁미술관에 둥지 틀었던 초창기와 과천 본관 이전 뒤인 1998년, 덕수궁관을 신설하고 ‘근대를 보는 눈’전을 하면서 본격화한 근대 미술 컬렉션의 변천사를 짐작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작품 영역을 구획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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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미술관, 20년의 궤적’ 전시장 모습. 앞뒤가 트인 진열장에 조각가 권진규의 대표작 <지원의 얼굴>과 말 조형물 등이 놓여 있다. 진열장으로 비치는 안쪽 벽에는 김기창과 장우성의 1930년대 수묵채색화 등이 내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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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명품을 일체화한 기획력이 돋보이지만, 전시 기점 설정이나 콘텐츠 성격에는 논란의 여지도 있다. 38년 개관 당시 컬렉션 실상에 대한 심층적 소개나, 53년부터 72년까지 고미술품, 고고유물을 전시한 또다른 주인이었던 국립박물관 컬렉션에 대한 내용은 없다. 덕수궁관은 앞서 국립현대미술관 본관으로서 1973~86년 운영됐는데, 덕수궁관 개관 20주년에만 별도 방점을 찍은 부분도 혼돈을 일으킨다. 많은 일반인에게 덕수궁관은 국립현대미술관 그 자체로 기억되고 있는 까닭이다. 정치사회적 격변에 떠밀려 터를 숱하게 옮기며 떠돌았던 국공립 예술기관의 과거 난맥상을 어쩔 수 없이 드러낸다고도 할 수 있겠다. 10월14일까지. (02)2022-0600.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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