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8.05.06 18:44 수정 : 2018.05.06 19:11

【짬】 서양화가 허윤희 작가

허윤희 작가는 갤러리 디스위켄드룸에서 20일(12일과 13일은 휴관)까지 열리는 ‘나뭇잎 일기 특별기획전’을 두고 스스로 만족한다는 말을 했다. 갤러리에 전시된 자신의 그림들을 보면서 마치 숲에 들어온 것 같아 “놀랐다”고도 했다. “한장 한장 나뭇잎이 모여 숲이 된 것 같았죠. 봄여름가을겨울이 다 담겼어요.”

허윤희 작가는 나뭇잎 그림 2천점을 그렸다. 시작은 2008년 5월5일이었다. 그 전해 이사 온 서울 종로구 부암동 근처 숲을 산책하다 <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글이 떠올랐다. 소로는 모든 나무와 풀이 푸른색에서 갈색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가장 선명한 색채를 띠었을 때 그 모습을 그려 책으로 내고 싶어 했다. 숲길을 걸어 작업실로 향했던 허 작가는 ‘내가 그 일을 하리라’ 맘먹었다. 아침 7시면 일어나 산책길에서 나뭇잎을 채집했다. 하루 1점씩 나뭇잎을 그렸다. 그림 아래엔 짤막한 글도 붙였다. 주로 사람에 대한 얘기였다.

이 수고로움이 책(<나뭇잎 일기>, 궁리 펴냄)이 됐다. 책을 들추니 매일매일 변하는 나뭇잎의 변화무쌍한 자태가 아름다움을 넘어 숭고함까지 느끼게 한다. 작가의 꾸밈없는 글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 넘실거린다. 책이란 매체가 사람에게 큰 위안을 줄 수도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서울 청담역 근처 갤러리 ‘디스위켄드룸’을 찾으면 작가가 작년 1월1일부터 그린 430여점의 나뭇잎 그림을 만날 수 있다.(전시는 20일까지, 12~13일은 휴관)

1일 전시장에서 작가를 만났다. 2012년부터 3년 동안 나뭇잎을 그리지 않았다고 했다. ‘이게 예술인가’, 회의가 들어서다. 다시 그렸다, 왜? “뭐가 되든 나에게 소중한 기록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남이 뭐라고 하든 제가 그 순간을 간직하고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는 깨달음이죠. 앞으론 중단 없이 이 작업을 계속할 겁니다.”

갤러리에 전시된 나뭇잎 그림들. 허윤희 작가 제공

작가에게 ‘순간의 기억’이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저는 목탄으로 주로 그림을 그립니다.(나뭇잎 그림엔 색이 들어간다.) 목탄은 나무를 태운 거라 먼지의 속성이 있어요. 그리고 보면 먼지가 되어 떨어집니다. 그 자연성이 좋아 목탄을 택했죠. 목탄으로 벽화를 그린 뒤 지워 버립니다. 다른 곳에 걸어놓을 수가 없어요. 벽화 역시 지금 이 순간이 강조되는 것이죠.” 덧붙였다. “순간이 진실하다면 (예술이 추구하는) 영원에 닿을 수 있어요. 내 나뭇잎 그림은 순간의 빛깔을 간직하고 있어요.”

그는 책 말미에 실은 ‘나의 삶 나의 예술’이란 글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려고 애쓰기보다는 먼저 그런 존재가 되고 그렇게 살려고 애쓴다.” 삶과 예술이 다르지 않다는 말일 것이다. 어떤 작가가 되고 싶으냐는 질문엔 이렇게 답했다. “자유로운 존재로 살고 싶고, 삶의 진실을 깨닫고 싶고 표현하고 싶어요.” 자유롭나요? “네, 그럼요. 나뭇잎을 그리면서 자연의 생기와 생명력을 받으며 더 긍정적이 된 듯해요. 사람 관계를 들여다보면서 더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죠. 이 작업을 하면서 굉장히 행복합니다. 작가로 사는 것도 행복해요.”

‘월든’ 작가 소로의 바람 착상
지난 10년 나뭇잎 2천여점 그려
책으로 묶고 20일까지 전시회도

“순간 간직하고 기억하는 게 중요
예술가도 공동체 삶에 관심을”
최근 추첨으로 녹색당 대의원 돼

그는 서울예고와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거쳐 1995년부터 2004년까지 독일에서 미술 공부를 했다. 독일 브레멘예술대를 졸업할 때 이 대학 최고상인 브레멘예술대학상을 받았다.

나뭇잎에 딸린 글엔 사회 참여 내용도 꽤 된다. 지난달엔 7년 전에 입당한 녹색당 대의원이 됐다. “추첨으로 뽑혔어요. 100 대 1 경쟁이었다고 해요.” 당을 주위에 널리 알리는 게 대의원의 주된 일이란다. 나뭇잎을 그리기 전부터 구독했던 <녹색평론> 표지화를 4~5차례 그리기도 했단다. “독일 유학 때까지만 해도 정치에 무관심했어요. 내 실존에만 갇혀 있었죠. 귀국해 한국 사회를 보면서 예술가도 공동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예술가도 인간으로서 공동체의 삶을 들여다볼 의무가 있어요.”

전시회에 나온 나뭇잎 그림 작품. 허윤희 작가 제공

전시장 모습. 허윤희 작가 제공

가장 재밌는 일은 친구들과 함께하는 공부이다. “공부와 우정이 저에겐 중요해요. 작년 가을부터 한달에 한번 친구들과 식물 탐사를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곳곳을 다니며 야생화를 관찰하고 나무 전문학자에게 배우기도 해요. 지난 2년 3주에 한번씩 친구들과 책읽기 모임도 하고 있죠.”

그는 모교인 서울예고에서 13년째 강사 생활을 하고 있다. 서울대 등 여러 대학에서 드로잉을 가르쳤다. 올해는 대학 강의는 하지 않고 있다. 그가 그리는 목탄 그림은 미술 시장에서 ‘비인기 상품’이다. “1년에 한두점 정도 팔려요. 내용보다는 보기 좋고 화려한 그림이 팔리잖아요. 예술은 생각의 표현이고 이 표현을 통해 사람들이 소통하는 게 예술의 중요한 기능인데도 사람들은 작품을 가지고 생각하는 걸 싫어해요.” 주 수입은 강사료란다. “제가 딱 생활할 수 있을 만큼만 벌어요.”

화가보다 더 오래된 꿈은 시인이다. 나뭇잎 그림보다 아래 글을 쓰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단다. “매일 24시간 동안 나뭇잎을 들여다보듯 한 사람에 대해 자세히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만남의 의미가 더 또렷하게 느껴지죠.” 두 쪽짜리 ‘나의 삶 나의 예술’ 에세이를 쓰면서 몸무게가 2㎏이나 빠졌단다. “언어가 주는 예민함이나 직접성이 있죠. 글을 쓸 때 더 자유로워지는 것 같아요. (글을 쓰며) 제가 아마추어란 걸 최대한 즐겨요. 그림은 잘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잖아요.”

그는 책에서 독일 유학 시절이 아주 즐거웠다고 썼다. “한국 미술교육은 너무 경쟁, 입시 위주이죠. 대학에서 가르치며 가장 아쉬웠던 것은 학생들과의 관계가 일회적으로 끝난다는 것이죠. 제가 시간강사인 탓도 있겠죠. 독일은 한 교수 밑에서 6~7년 배우기도 해요. 관계가 깊어요. 예술은 삶에서 나옵니다. 그 사람의 삶을 알려면 시간이 필요해요.”

글·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