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8.05.11 05:01 수정 : 2018.05.11 09:48

연극 <피와 씨앗>의 한 장면. 두산아트센터 제공

리뷰 l 연극 ‘피와 씨앗’

‘무엇이 이타적 행동인가’ 질문
영상 활용한 연출 돋보이지만
정답 정해진 듯한 흐름 아쉬워

연극 <피와 씨앗>의 한 장면. 두산아트센터 제공
공연의 절정은 남자의 몸이 피로 흠뻑 젖는 장면이다. 이야기는 살인죄로 12년째 복역 중인 죄수 아이작이 소피아의 집에 도착하면서 시작한다. 소피아에게는 신장병으로 투병 중인 손녀 어텀이 있다. 지금으로선 아이작만이 어텀의 유일한 희망으로, 아이작은 장기 기증을 위해 잠시 출소했다. 그러나 결정적 순간, 아이작이 한발을 빼자 이에 분노한 어텀의 이모 바이올렛이 아이작에게 피를 퍼붓는다. 이 미장센은 원작 희곡에는 없던 것으로, 작품을 연출한 전인철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연극 <피와 씨앗>의 한 장면. 두산아트센터 제공
두산아트센터가 올해 두산인문극장 두번째 무대로 선택한 건 연극 <피와 씨앗>이다. 올해 두산인문극장의 주제는 ‘이타주의자’로, 작품은 ‘무엇이 이타적 행동인가, 누가 이타주의자인가’ 질문한다. 원작자인 영국 극작가 롭 드러먼드는 ‘트롤리 딜레마’에서 착안해 작품을 집필했다고 한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널리 알려진 트롤리 딜레마는 윤리학의 사고실험으로 이런 내용이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차가 선로작업 중인 인부 5명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다른 선로엔 한 사람만 있고, 당신 앞에는 선로를 변경할 수 있는 레버가 있다. 당신은 5명을 살릴 것인가? 1명을 살릴 것인가?’

공연에서는 이와 유사한 문답이 오간다. 소피아가 아이작의 보호관찰관인 버트에게 묻는다. 자식을 위해 죽을 수 있는가? 물론, 대답은 대동소이할 것이다. 그러면 질문을 조금 비틀면 어떨까? 자식을 살리기 위해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가? 여기서 버트는 망설인다. 양심의 가책을 덜어주려 소피아가 덧붙인다. 죽여야 하는 이가 만약 ‘인간쓰레기’라면? 버튼은 이 물음에 “버튼 같은 것만 하나 눌러서 처리하는 거라면…”이라며 말꼬리를 흐린다.

연극 <피와 씨앗>의 한 장면. 두산아트센터 제공
작품 제목이나 등장인물들의 이름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피와 씨앗’은 혈육을 일컬을 때 쓰는 흔한 비유다. 작품에선 주술적 의미까지 더해졌다. 과거 켈트족의 추수감사절 의식 중엔 밀로 만든 밀짚 인형의 배에 살아 있는 여자아이의 피를 넣는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등장인물의 이름에도 의미가 있다. 아이작(이삭)은 창세기에 따르면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번제물로 바칠 뻔한 인물이다. 어텀은 가을, 소피아는 로고스, 바이올렛은 파토스다. 버트는 ‘총명한 갈까마귀’를 의미하는 게르만어에서 유래했다. 사라질 존재를 뜻하는 가을, 어느 쪽도 완전하지 않은 이성과 정념, 직업윤리에 따라 파국을 막으려는 버트 등 이름은 배역을 상징하는 장치다.

영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눈길이 간다. 무대 위에는 거실만 있다. 그 외의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무대 뒤에서 연출되며, 이는 실시간으로 벽에 투사된다. 배우들이 카메라를 응시하는 장면에서는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마저 인다.

<피와 씨앗>은 이렇듯 생명윤리와 장기 기증에 대해 윤리적 질문을 던지지만, 한편으론 ‘정답’이 정해져 있어 인식의 지평을 넓히기엔 다소 부족한 느낌도 든다. 6월2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02)708-5001. 김일송/공연 칼럼니스트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