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5.12 05:00
수정 : 2018.05.13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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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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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익의 아재음악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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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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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김창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런 표현을 썼다. 넘쳐흐르는 영감의 샘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진정한 시인의 모습이란 이래야 한다며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워즈워스가 썼던 표현에 정확히 부합하는 가수라고. 데뷔 이래 그가 만들고 불렀던 영롱한 노래들을 들어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신도 참 불공평하시지. 김창완에게는 넘쳐흐르는 영감의 샘 외에 다른 재주도 많았다. 연기자로서도 상당한 커리어를 갖고 있으니 할 말 다 했지.
그중 하나가 말솜씨다. 그는 참 말을 아름답게 한다. 그래서 디제이(DJ)가 되었고, 아름다운 방송을 만든다. 그래서 프로그램 제목도 ‘김창완의 아름다운 이 아침’일까. 애주가를 넘어 주신 디오니소스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술을 많이 마시면서도 아침 방송 시간만큼은 칼같이 지킨다. 심지어 방배동 집에서 목동 방송국까지 자전거를 타고 오는 일도 허다하다.
방송이 얼마나 좋은지는 들어본 사람은 다 알 것이고, 밖에서 잘 모르는 디제이 김창완의 모습을 살짝 알려드리겠다. 매일 아침 여러분들이 듣는 그 아름다운 오프닝 원고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그는 매일 아침에 방송 오프닝 원고를 직접 손으로 쓴다. 스튜디오 옆의 소파에 앉아 독한 커피로 숙취를 내몰면서. 헝클어진 머리를 기울인 채 펜을 잡고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내려간다. 시와 다름없는 방송 원고를. 노벨 문학상을 받은 미국의 포크가수 밥 딜런의 모습이 겹쳐진다. 노벨 문학상 가즈아!
<김창완의 아름다운 이 아침>이 내가 매일 출근하는 <에스비에스>(SBS)의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은 축복이자 자부심이다. 종종 스튜디오 앞에서 그와 마주친다. 한 번도 그냥 지나치신 적이 없다. 인사를 하면 언제나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받아주시고, 가끔은 안아주시고, 유독 기분이 좋은 날이면 손으로 하트도 날려주신다. 화장실에서 소변기 앞에 나란히 서서 볼일을 볼 때면 영광스럽기까지 하다. 그건 마치 프레디 머큐리(퀸) 형님과 포차에서 소주를 마시거나, 로버트 플랜트(레드 제플린) 형님과 사우나를 가는 일과 마찬가지의 감흥을 준다. 이것이 실화?
또 하나의 잊을 수 없는 모습. 몇 년 전, 방송국 송년회 자리였다. 장소는 홍대 근처, 라이브 공연이 가능하게 간단한 음향시설과 악기들이 갖춰진 카페였다. 피디(PD)들과 디제이들이 함께 어울린 자리에서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무렵, 어느 피디인지 모르겠으나 무례한 짓을 했다. <최백호의 낭만시대>를 진행하고 계신 최백호 형님에게 노래를 부탁한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수에게 노래를 청하는 일은, 말하자면 김연아 선수한테 맨발로 피겨 공연을 해보라는 것과 마찬가지인데도…, 형님은 기타를 잡더니 즉석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러주셨다. 그가 직접 작사·작곡한 명곡 ‘낭만에 대하여’.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와…, 정말 끝내주는 밤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그 옛날 항구의 다방으로 순간이동을 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최백호 형님의 노래가 끝나자 옆에서 술을 마시던 김창완 형님께서 자연스럽게 기타를 건네받으셨다. 그리고 졸렬한 내 글재주로 표현할 길이 없는 눈빛과 목소리로 ‘청춘’을 불러주셨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영가가 구슬퍼
그 순간 내 직업에 대해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최백호와 김창완이 술자리에서 함께 노래하는 광경을 대체 누가 볼 수 있단 말인가? 재벌 2세도 안 부러웠다.
아, 최백호와 김창완 중에 누가 더 멋있었냐고?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 두보와 이백에 비할까?
위대한 예술은 세월이 흘러도 빛을 잃지 않는다. 김창완의 음악 역시 그렇다. 수많은 후배 가수들이 그의 노래를 다시 불렀다. 아이유와 함께 다시 부른 ‘너의 의미’나 김필이 부른 ‘청춘’은 지금 10대, 20대들에게도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장기하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산울림은 저의 바이블입니다. 저희 노래 중에서 산울림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곡은 단 한 곡도 없습니다.”
장기하뿐일까. 시대와 장르를 불문하고 후배 가수들의 음악 속에 김창완과 산울림의 음악은 풍성한 자양분으로 흡수되었으리라. 우리는 알게 모르게 모두 그 과실을 먹고 있다.
이별 후에 울면서 ‘회상’을 들으면, 아이와 함께 ‘산 할아버지’를 들으면, 엄마 생각하며 ‘어머니와 고등어’를 들으면, 엘피(LP)바에서 머리를 흔들며 ‘아니 벌써’를 따라 부르면, 얼~마나 맛있게요? 오늘도 잘 먹겠습니다 형님!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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