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6.27 18:39
수정 : 2018.06.2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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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과 기계부품으로 만든 주재환의 2017년작 ‘오, 인공지능이여 낙엽도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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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환·김정헌 ‘유쾌한 뭉툭’
진보미술 큰형님 둘 모처럼 나들이
청년작가 기획전 ‘유령팔’
가상과 현실 사이 고민·정서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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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과 기계부품으로 만든 주재환의 2017년작 ‘오, 인공지능이여 낙엽도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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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맞는 미술판은 쏟아지는 전시들로 번잡해 보이지만, 한편으론 적막한 느낌도 감돈다. 1960~70년대 단색조 회화나 김환기 같은 일부 근대 거장들의 작품들만 좇는 시장의 편식증이 수년째 지속중인 반면, 새로운 방향성을 예고하는 기획전시들을 거의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답답한 분위기 속에서 위로처럼 다가오는 두개의 전시가 있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작가의 정체성과 작업 초점이 뚜렷하다. 서울 통의동 보안여관에 차려진 70대 원로작가 주재환·김정헌씨의 2인전 ‘유쾌한 뭉툭’(02-720-8409)과 서울 중계동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에 펼쳐진 청년세대 작가들의 전시 ‘유령팔’ 전(02-2124-5568)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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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헌 작가의 2018년작 ‘벽돌 한 장으로 남은 조선총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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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뭉툭’ 전의 주인공 김정헌(72), 주재환(78) 작가는 80년대 참여미술동인 ‘현실과발언’의 동료선후배였고, 국내 진보미술진영에서 큰 형님 노릇을 해온 이들이다. 서로를 ‘김품격’ ‘주격조’라고 부르는 두 사람은 “40여년간 미술을 갖고 놀며 낄낄거렸으나 이제 이야기할 거리도 다 떨어져서 전시를 하게 됐다”고 전시의 변을 밝혔다. 옛 보안여관의 으스스한 공간과 그 옆에 신축된 새끈한 신관에 선보인 그들의 구작과 신작 80여점은 두 작가의 연령대를 의심하게 할 만큼 상상력과 문제의식이 강렬하다. 껌, 성냥개비, 소주병 마개, 스티커 같은 자질구레한 일상의 잔재들을 접붙여 현실풍자적 이미지를 재구성하는 주재환 작가의 근작들은 최근 들어 특유의 난장끼와 심오함이 더해졌다. 유리액자와 벽돌, 밧줄, 커터로 만든 근작인 <정신타격> 액자나 2026년의 달력을 미리 만들어넣고 들어갈 이미지를 달라고 공지해놓은 설치조형물들은 은근한 해학과 끈질긴 전위정신이 읽힌다. 신관 지하에 내걸린 <비깨도> 연작은 그의 상상력이 신기 어린 무의식의 세계로 더욱 치닫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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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가상현실에서 짜깁기한 일상 이미지들을 환각적으로 풀어놓은 람한 작가의 디지털페인팅 작품 ‘룸타이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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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에 얽힌 역사적 이야기의 실체를 이미지화하는데 골몰해온 김정헌 작가의 내공도 더욱 깊어졌다. 1995년 철거된 옛 조선총독부(중앙청)의 벽돌을 골판지 위에 놓고 벽돌의 역사와 자기 존재와의 연관성을 되묻는 ‘벽돌 한장으로 남은 조선총독부’나 푸른 달빛 아래 형상이 뭉개져 사라지는 주목나무의 풍경을 담은 푸른빛 근작들은 그의 시선과 기법이 일상 풍경 속 이야기를 더욱 다채롭게 풀어내는 경지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여섯 팀이 출품한 북서울미술관의 ‘유령팔’ 전은 가상과 현실의 의미 구분을 상실한 요즘 디지털 세상에 적응한 청년 작가들의 작업이 집약돼 있다. 일상의 이미지들이지만 온라인 가상현실에서 짜깁기하고 뒤섞어 환각적이고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창조한 람한 작가의 디지털페인팅은 이 전시의 방향성을 예시하는 길잡이 구실을 한다. 마트의 카트·아이 유모차 같은 이미지가 사회적 적폐나 논란거리를 담은 이미지 덩어리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강정석 작가의 <사육마> 연작이나 자신의 몸이 또다른 가상의 신체로 변해 실제 작가와 협업하는 구상을 조형화한 김정태 작가의 작업들은 일단 받아들이고 적응해야하는 지금 디지털 세상의 냉혹한 시각적 질서를 나름대로의 기법과 정서로 체화한 작업들로 비친다. 두 전시 모두 7월8일까지 열린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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