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8.14 22:44
수정 : 2018.08.16 15:42
[짬] ‘김대중 추모’ 창작음악극 공연 김정민 명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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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다섯마당 완창을 해내며 ‘동편제’ 여성 국악인의 맥을 잇고 있는 김정민 명창. 사진 박경만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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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첫 아이의 출산을 위해 처갓집에 있던 어느 날, 우익단체 사람들이 우루루루 달려들어 다짜고짜 청년을 경찰서로 끌고 가서 시위대의 주모자라며 사정없이 퍽퍽퍽 두들겨 패더니, 그렇게 사흘 밤낮 퍽퍽퍽 매질을 당한 청년은 간신히 혐의를 풀고 경찰서에서 나서는구나!’
여성 국악인으로는 드물게 판소리 완창 공연으로 매진 행진을 해온 김정민(50) 명창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을 판소리로 들려준다. 그는 김대중 서거 9주기를 맞아 오는 18일 경기도 고양에서 열리는 ‘2018 고양평화콘서트’에서 김대중의 상징인 인동초를 제목으로 내건 창작 음악극인 <겨울을 품은 꽃>(총감독 최종태)의 판소리를 맡았다.
사상 최악의 폭염 속에 에어컨도 없는 방음실에서 매일 3시간 넘게 연습에 전념하고 있는 김 명창을 지난 10일 서울 광장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1994년 영화 ‘휘모리’ 주연으로 출연
관람온 김 전 대통령과 딱 한번 ‘인연’
“다음에 ‘쑥대머리’도 들려달라 했는데”
김 전 대통령 9주기 추모제 ‘재능기부’
전반기 일대기 그린 ‘겨울을 품은 꽃’
18일 고양시 일산문화공연 야외무대
“김대중 일대기 공연을 위해 그 분의 자서전을 몇 번씩 읽으면서 고난 속에서도 타협하지 않은 그 분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존경심이 커졌어요. 위대한 역사적 인물을 다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누가 되지 않도록 떨리는 마음으로 연습하고 있어요.” 그는 “워낙 밤 10시쯤 잠들어 아침 5시반쯤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해왔는데 요즘 그 분의 삶을 생각하다 음이 떠오르면 밤 12시가 넘도록 작업하는 날이 많아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고도 했다.
김 명창이 이처럼 이 작품에 몰입하는 까닭은 24년 전 김 전 대통령과 약속했던 ‘말빚’ 때문이다. 1994년 영화 <휘모리>(감독 이일목)에서 주인공 ‘명창 이임례’를 연기했던 그는 정계에서 물러나 있던 김대중·이희호 아태평화재단 이사장 부부와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 옆 음식점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났다. 그는 “그때 두 분께서 ‘이렇게 좋은 소리는 처음 듣는다’며 즉석에서 청해 <심청전> 중 심 봉사가 눈뜨는 대목을 들려줬더니 너무 좋아하시며 나중에 <쑥대머리>도 듣고 싶고 배우고 싶다며 금일봉까지 주셨어요. 하지만 그뒤 대통령에 당선되시고 더 이상 인연이 닿지 않아 생전에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가 뒤늦게나마 김대중 추모 공연에 참여하게 된 것은 뜻밖의 인연 덕분이었다. 지난해 모교인 중앙대 ‘87학번 홈커밍대회’에서 고양평화콘서트의 연출을 맡은 동문에게 출연 요청을 받은 것이다. “뜻이 좋아 재능기부를 하겠다고 즉석에서 약속했어요. ‘민중을 대변하는 음악’인 판소리로 그 분의 뜻을 기릴 수 있는 기회를 줘서 고마웠어요.”
근현대사 인물을 주제로 하는 창작 판소리에 대해 그는 “전통 판소리는 은유적 표현이나 고사성어가 많아 듣기가 쉽지 않아요. 옛 전통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지금 시대에 맞는 새로운 판소리를 만드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판소리 다섯 마당도 그 시대를 대변하는 노래였고, 지금 시대에 맞는 창작 판소리도 후대에 이르면 고전이 될 것이다. 인물을 노래하는 판소리가 자꾸 만들어지다 보면 새로운 ‘류’가 될 수도 있다”고 이번 음악극의 의미를 부여했다.
영화 <휘모리>로 그해 대종상 신인여우상도 받았던 김 명창은 이후 영화나 연예계에 곁눈질을 하지 않고 오직 소리 연마와 국악 강의 등에만 전념했다. 그는 박녹주 명창의 제자인 박송희 명창에게 사사를 받아 국가무형문화제 5호 <흥보가> 이수자가 되었다. 박녹주~박송희~김정민으로 ‘동편제’ 여성명창의 계보를 잇고 있는 셈이다.
그는 지난 3년간 ‘흥보가’ 7회, ‘적벽가’ 3회 등 10차례 완창 공연 때마다 매진 기록을 세웠다. 이달 초에는 첫 정규음반 <박녹주제 흥보가>(소니음반)도 냈다. 혼자서 ‘흥보가’를 3시간 동안 쉬지 않고 완창한 것이다. 그는 내년 5월쯤에는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를 포함한 판소리 다섯 마당 완창 공연을 하면서 실황 음반도 낼 계획이다. 또 스승에게서 전수받은 ‘숙영낭자전’을 비롯해 지금은 거의 맥이 끊긴 ‘변강쇠타령’ 등을 복원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음악극 <겨울을 품은 꽃>은 18일 오후 7시 경기도 고양시 일산문화공원 야외공연장에서 첫 선을 보인다. 올해 공연은 김대중의 어린 시절부터 정치입문 시기까지 전반부를 그려내며, 내년 10주기 때는 후반부 공연이 이어질 예정이다.
“김대중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투쟁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지만 알고보면 민주주의와 평화를 일관되게 추구해온 삶이었지요. 그 분의 남다른 삶과 뜻이 판소리를 통해 더 널리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박경만 선임기자
ma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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