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싱어송라이터 샘 스미스가 9일 저녁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3 샘 스미스’ 무대에서 노래하고 있다. 현대카드 제공
9일 첫 내한공연 리뷰
슬픔과 기쁨이 공존한 무대
팬들의 열기가 부흥회 흡사
“서울에 또 오겠다” 약속
영국 싱어송라이터 샘 스미스가 9일 저녁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3 샘 스미스’ 무대에서 노래하고 있다. 현대카드 제공
영국 싱어송라이터 샘 스미스의 히트곡은 주로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것들이다. 그는 자신의 실제 경험을 담아 ‘스테이 위드 미’, ‘아임 낫 디 온리 원’, ‘팰리스’ 등을 만들었고, 이는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9일 저녁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펼친 첫 내한공연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3 샘 스미스’에서 그는 어두운 모습만을 보이진 않았다. 자신의 장기인 슬프고 장엄한 노래뿐 아니라 신나고 흥겨운 노래들로 공연장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내 음악이 가끔은 우울하고 슬프지만, 오늘 밤은 당신들이 행복하길 바란다”는 그의 말대로 슬픔과 기쁨이 공존하고 단맛과 짠맛이 교차하는 무대에 2만 관객은 울고 웃었다.
하늘색 슈트를 입고 등장한 샘 스미스는 첫 곡 ‘원 라스트 송’으로 문을 열었다. 지난해 발표한 2집 <더 스릴 오브 잇>에 실린 미디엄 템포의 곡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이어 그는 무반주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2014년 발표한 데뷔 앨범 <인 더 론리 아워> 수록곡이자 국내에서 가장 사랑받는 곡 ‘아임 낫 디 온리 원’의 후렴구였다. 관객들도 곧바로 따라 불렀다. 실연의 상처를 담은 노래는 모두의 합창으로 서로 토닥여주는 위로의 노래가 됐다.
영국 싱어송라이터 샘 스미스가 9일 저녁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3 샘 스미스’ 무대에서 노래하고 있다. 현대카드 제공
그는 “지금 부를 노래는 내가 가장 먼저 만든 곡 중 하나다. 이 노래를 부르는 게 지금도 여전히 좋다”고 소개한 뒤 ‘레이 미 다운’을 열창했다. 2010년대 초반 런던으로 상경해 어느 바에서 일하던 샘 스미스는 틈틈이 노래를 만들며 가수 데뷔를 꿈꿨다. 영국 일렉트로닉 듀오 디스클로저가 그의 노래 ‘레이 미 다운’을 우연히 듣고 자신들의 곡 ‘래치’에 보컬로 참여시켰다. ‘래치’를 들은 영국 프로듀서이자 디제이 너티 보이는 자신의 곡 ‘라라라’에 그의 목소리를 실었다. 이 두 노래로 이름을 알린 그는 2014년 데뷔 앨범을 발표했고, 이듬해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노래, 올해의 레코드, 최우수 신인 등 4개의 트로피를 거머쥐며 세계적인 스타로 도약했다.
영화 <007 스펙터> 주제가 ‘라이팅스 온 더 월’을 부를 땐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 사운드로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는 이 노래로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최우수 주제가상을 받았다. 이어 그는 ‘머니 온 마이 마인드’, ‘라이크 아이 캔’, ‘베이비, 유 메이크 미 크레이지’ 등 흥겨운 노래들을 잇따라 불렀다. 슬프고 엄숙한 노래를 부를 땐 흑백으로 나오던 대형 스크린 영상이 신나는 노래를 부를 때면 컬러로 바뀌었다. 샘 스미스는 리듬을 타며 몸을 흔들었다. 관객들도 일어나 손뼉치고 춤췄다.
“이 노래를 통해 여러분께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어요. 나는 ‘게이’인 것이 자랑스러워요. 사랑은 사랑일 뿐이에요.” 그리고는 2집 수록곡 ‘힘’을 불렀다.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고백하는 내용의 노래다. 그는 2015년 그래미 시상식 수상 소감에서 “지난해 사랑에 빠졌던 그 남자에게 감사한다. 그에게 차여서 이 음반이 나왔다”고 자신의 성정체성을 당당히 밝힌 바 있다. “아이 러브 힘”(나는 그 남자를 사랑해요)이라는 가사로 노래를 마치자 그의 뒤에서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일곱빛깔 무지개 조명이 하늘로 치솟았다.
영국 싱어송라이터 샘 스미스가 9일 저녁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3 샘 스미스’ 무대에서 노래하고 있다. 현대카드 제공
‘투 굿 앳 굿바이스’를 마지막으로 본공연을 마친 그는 앙코르를 요청하는 관객들에게 ‘팰리스’로 화답했다. 2집에서 가장 사랑받는 곡으로, 애플 크리스마스 광고에도 쓰였다. 샘 스미스와 여성 코러스 가수가 마주보며 애틋한 분위기로 노래하던 도중 포옹하고 입맞춤을 하기도 했다. 이어 대표곡 ‘스테이 위드 미’를 부를 땐 관객들 모두 ‘떼창’을 했다. 하늘에선 붉은 꽃가루가 날렸다.
앙코르 마지막곡 ‘프레이’(기도하다)를 부르는 순간, 공연장은 흡사 부흥회장 같았다. 샘 스미스를 추앙하는 신도들은 공연이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기도하는 듯 보였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샘 스미스는 “서울에 또 오겠다”고 약속했다. 공연 전 서울 홍대 앞, 경복궁 등을 둘러보고 광장시장에서 산낙지를 맛보며 서울의 매력에 빠진 그의 약속은 빈말로 들리지 않았다. 이번 내한공연은 1분 만에 매진됐다. 표를 못 구해 발 동동 굴렸던 이들에게도 복음이 될 약속을 남기고 그는 무대 뒤로 사라졌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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