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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0.11 11:03 수정 : 2018.10.11 11:32

한기명 스탠드업코미디언. 이지양 작가

작가 2명과 장애인 7명 함께한 전시회 ‘당신의 각도’
김원영 “장애인·비장애인 함께 했지만 혁명적 의미 없어”
유화수 “장애에만 초점 맞춘 거 아니다…예술작품으로 봐달라”

한기명 스탠드업코미디언. 이지양 작가

“‘스탠딩 코미디언’이 아니라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에요. ‘스탠딩 코미디언’은 ‘콩글리시’인데요, 기자님.” (한기명)

아뿔싸. 인터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예상치 못한 잽이 날아왔다. 날카로운 지적에 우물쭈물 다음 질문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한기명씨는 자신의 장애를 코미디 소재로 활용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다. 올해 초부터 무대에 서기 시작했고, 지난달에는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에도 다녀왔다. 작가 유화수씨가 그의 코미디 무대를 영상으로 접한 뒤 <당신의 각도> 전시회에 참여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고, 한씨는 선뜻 수락했다. 유씨는 “장애를 숨기지 않고, 가지고 놀고 있는 듯한 분위기가 멋졌다”고 했다. 한씨가 곧바로 추임새를 넣었다. “저는 실제로 장애를 즐기고 있어요. (웃음)”

7살 교통사고로 뇌병변장애를 얻었다는 한기명씨는 오른쪽 손목이 바깥 방향으로 돌아서 있다. 인사를 건네니 웃으며 오른손을 쑥 내민다. 그 찰나에 오만 생각이 스쳤다. ‘어디를 잡아야 예의에 어긋나지 않을까.’ 머뭇머뭇 두 손을 건네 손목과 손 중간 어딘가를 살짝 잡고 악수를 나눴다.

김원영 변호사. 이지양 작가

“그냥 조촐하게 작업한 거예요. 새로운 예술적인 소재를 찾는 작가와 자신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은 창작자들이 모여 하는 퍼포먼스일 뿐이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한다고 해서 이 전시회에 너무 사회적인 의미를 부여하시는 것 같은데요.” (김원영)

아차, 이번엔 좀 더 강한 훅이다. 인정해야 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기획 단계부터 함께 참여한 전시회라길래 관심이 생겼다는 걸 부인할 수 없었다. 약간의 호기심에 도덕적인 당위가 몇 방울 섞여 성사된 인터뷰였다. 장애인을 대상화하지 않는, 그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전시회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변호사이자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저자이기도 한 김원영씨에게 미리 보낸 질문지엔 무언가 ‘대의’를 찾고자 하는 질문으로 가득했다. 인터뷰하는 동시에 질문지에 없는 질문을 고민하느라 부단히 머리를 굴려야 했다.

그는 한술 더 떴다. “유화수라는 작가가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하는 ‘관종’(‘관심종자’의 줄임말로 관심을 끌고 싶어하는 사람이란 뜻)적 기질이 있는 장애인들에게 제안을 해서 이뤄진 작업이지 뭐 대단한 혁명적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에요. 전시회 오시면 소박한 예술적인 가치나 새로움에 집중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왼쪽부터) ‘당신의 각도’ 전시회를 함께 기획한 작가 유화수씨, 변호사 김원영씨, 스탠드업코미디언 한기명씨. 박다해 기자
오는 18일까지 서울 종로구 온그라운드 지상소에서 열리는 <당신의 각도>는 한기명씨와 김원영씨를 포함, 7명의 장애인과 유화수·이지양 작가가 함께 기획한 전시회다. 7명 각자에게 필요한 맞춤형 가구를 만들되 예술성을 함께 부여해 제작한 설치 작품, 가장 편한 자세를 찾아 그 모습을 가감없이 담은 사진을 함께 전시한다. 전시회 이름 ‘당신의 각도’는 장애인들이 가장 편하게 느끼는 각도를 뜻한다. 지체장애, 발달장애, 뇌병변장애 등 참여자들의 장애만큼이나 다양한 작품이 전시됐다. 누워서도 작업할 수 있는 독서대, 양팔을 쓰지 않고 빨대로 소주를 마실 수 있는 의자, 뜨거운 국물이나 차를 안전하게 운반할 수 있는 테이블, 자신의 강직된 신체부위를 강조한 티테이블 등이다.

“(우리나라에) 등록된 장애인 수만 250만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보통 그들에게 무언가를 베풀어야 한다거나 빤히 쳐다보면 안 될 것 같은 고정관념에 갇혀 있잖아요. 정작 제대로 아는 건 없고 습관적으로 회피하거나 외면하죠. 저부터 그런 걸 바꿔보고 싶었어요.”

설치미술과 전시기획을 함께 하는 작가 유화수씨가 장애인과 함께 만드는 전시회를 기획한 이유다. 그는 “장애인과 함께했지만 단지 ‘장애’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며 하나의 예술작품으로서 충분히 훌륭한 가치를 지니도록 하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앞서 3일부터 7일까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음센터에서 1차 전시를 마쳤다. 장애인 관객이 찾아오기 편하도록 일부러 두 차례에 나눠 전시를 진행했다. 유씨는 “장애인 관련 예술 프로젝트가 잘 없다. 있다고 해도 대부분 ‘동행’이나 ‘아름다운’ 같은 단어와 함께 홍보하고 뭔가 후원을 받아 (장애인을) 도와야 한다는 인식을 지닌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전시를 준비하며) ‘기금을 지원받고 싶어서 하는 거냐’, ‘장애를 (소재로) 다룰 만큼 공부를 했냐’ 같은 시선도 많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장애를 다루려면 공부까지 해야 하고, 다른 수많은 종류의 전시 중 하나로 보지 않는 것 자체가 그만큼 사회에서 장애가 얼마나 노출되지 않는지를 보여준다. ‘인간극장’ 같은 다큐멘터리에서 볼 수 있는 어떤 숭고함만 기대하는 것 같다”며 “이 전시는 그동안 해 온 설치미술 프로젝트의 연장선으로 오로지 ‘좋은 전시’를 만드는 데 집중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왼쪽부터) 김원영씨에 맞춰 제작된 ‘누워서 읽을 수 있는 독서대’, 한기명씨의 오른팔을 본뜬 티테이블. 작가 유화수씨 제공
김원영씨는 이번 전시가 장애를 바라보는 사회의 이중적인 시선과 그 간극을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들의 도구는 무조건 편리해야한다’는 인식과 장애의 예술적 가치는 오로지 그것을 극복하는 숭고한 태도에 있다는 믿음, 그 두 가지를 모두 배척하고자 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골격계 장애가 있어 “중력이 부담스럽다”는 그의 가구는 누워서도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서대다.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면 ‘실용성’을 삶의 제1원칙으로 삼으라는 이야기를 어렸을 때부터 자주 들었을 거예요. 옷에 관심을 가지면 (미적인 면 보다는) ‘실용성’을 강조하죠. ‘화장실을 갈 때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처럼요. 사회도 ‘꾸미는 일’은 장애인과 동떨어진 일이라고 여기기도 하고요.

한편으론 장애인에게서 어떤 ‘아름다움’을 기대해요. 척박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장애를 잘 통제하고 극복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감동을 준다고 생각해요. 일종의 ‘숭고미’ 같은 걸 느낀달까요. 제한된 신체를 활용하고 역경을 돌파하는 게 어떤 숭고함을 주잖아요. 그런데 그런 종류의 감동은 결국 장애를 타자화했을 때 받는 거죠. 옛날 서양인들이 동양에 와서 느꼈던 오리엔탈리즘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사실 장애인들의 일상은 그런 의미에선 전혀 아름답지 않거든요. 사회가 바라보는 두 가지 시차 사이에 우리 삶이 놓여있죠.”

장애를 자신의 가장 큰 재능으로 활용하고 있는 한씨의 가구는 한쪽으로 꺾인 자신의 팔이 지탱하고 있는 티테이블이다. 그에게 이번 전시는 자신의 언어로 직접 장애를 풀어내고 동시에 예술의 소재로 활용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의 연장선이다.

당신의 각도

“교통사고를 당하고 사경을 헤매다 깨어났을 때 <개그콘서트>를 보게 됐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저도 웃음, 재미, 감동 세 마리 토끼를 다 선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그 꿈을 이루어가고 있는 중인 것 같아요. 미국에도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뇌성마비 장애인분이 있는데, 언어는 다 못 알아들어도 그분의 코미디를 여러 번 봤죠. 제가 바라는 건, 장애와 상관없이 선입견은 안드로메다로 버리고 막 웃어주시는 거예요. 저는 장애를 오픈(공개)하는 게 좋아요. 편하게 말씀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이번 전시회도 참여해요. 처음 작가님의 메시지를 받았을 때 저도 (장애를 반영한) ‘나만의 가구’를 갖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는 선뜻 자신의 스탠드업 코미디 레퍼토리를 선보였다. 무대에서 가장 반응이 좋았던 거라고 했다.

“솔직히 여기 계신 분들 다 장애인 아니에요? 제가 누구인지 다 짚지는 않겠는데 탈모 장애도 있고, 비만 장애도 있고, 안면비대칭 장애도 있고… 많네요. 국가에서 급수만 안 매겼을 뿐이지 여러분도 다 장애인이에요.”

“제가 전철의 노약자석에 앉아서 가면 반대편에 계신 어르신께서 이런 말씀을 하세요. ‘장애인은 좋겠어. 나라에서 돈도 나와, 세금도 안 내, 전철도 공짜야∼’ 제가 말하죠. ‘그럼 니들도 장애인 하던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퍼뜩 정신이 든다. 좌우 비대칭, 틀어진 골반, 건조한 두 눈과 비뚤어진 코뼈, 각종 알레르기를 달고 사는 나는 장애인인가, 비장애인인가. 다시 첫 만남을 되짚어 본다. 한씨가 청한 악수에 당황함을 못내 감추지 못하고, ‘장애’란 단어에 구태여 각종 의미를 갖다 붙이려 했던 나의 사고방식은 얼마나 폐쇄적인 반경 안에 있는가. 그렇다면,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는 누가 정의하는가. <당신의 각도> 전시가 우리에게 남기는 물음이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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