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1.08 19:16
수정 : 2018.11.19 21:20
[짬] 농민운동가 나상기 이종옥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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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상기 이종옥 부부. 사진 <뉴스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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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형 선고 따위에도, 쓰다 달다, 도무지 표정이 없다.’ 한 시인은 그를 ‘잘 깍아 만든 목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나상기(70)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고문은 20대 때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 회장을 맡아 유신독재에 반대하는 학생운동을 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20년형을 선고 받고 75년 2월 석방됐다. 1970년대 후반 기독교농민회를 조직하고 농민운동에 참여해 1990년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을 만드는 데 큰 몫을 했다.
남편은 민청학련 옥고 치른 뒤
70년대 후반부터 농민·민주화 운동
치매 모친 돌보며 사진에 취미
피아노 공부한 경상도 출신 아내
3년 전 시작한 민화에 푹 빠져
9일부터 ‘사진이랑 민화랑’ 부부전
20대 때부터 농민운동, 재야·민주화운동을 했던 그가 60대 후반에 사진기를 들게 된 것은 어머니 때문이다. 한국전쟁 때 아버지가 세상을 뜬 뒤 어머니는 독자인 그를 홀로 키웠다. 나 고문은 “어머니와 나는 연인관계”라고 했다. 평생 아들을 믿고 의지하며 살던 어머니에게 치매가 왔다. 사회운동을 한다고 돌아다니던 그는 “밖에서 활동했던 몸을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 어머니를 돌보았다. 그런데 어머니가 가끔 ‘당신 누구요?’라고 하실 때마다 자신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럴 때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마음을 풀곤 했는데 그 때 지인이 사진기를 들어보라고 권유하더라구요.”
더욱이 그 무렵 평생 동지였던 아내도 암에 걸려 마음이 아팠다. 나 고문은 1978년 아내 이종옥(71)을 서울에서 만났다. 경북 영주 출신인 이씨는 서울에서 피아노를 배우며 작곡을 공부하기도 했다. 신협운동과 크리스찬아카데미 교육운동을 했던 이씨는 운명적으로 남편을 만났다. “집안에선 전라도 사람이라고 반대했지만, 그때 제가 큰 애를 임신해버려 부모님도 어쩔 수 없었죠.” 아내는 쫓겨다니는 남편을 대신해 서울에서 피아노 레슨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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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상기 고문이 찍은 담양 메타세과이어길의 가을 풍경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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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고문이 1987년 광주에 농민문제연구소를 개설하면서, 이씨는 전남 해남·강진·무안 등 농촌현장을 10여 년 동안 돌아다녔다. 1990년대 초반 생계가 막막해져 한 때 피아노를 팔고 통닭집을 열기도 했다. “많이 힘들어 한 순간 좌절도 했지요. 통닭집을 하니 꼭 감옥살이 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때마다 남편한테 화풀이 하면 다 받아주고 그랬어요.” 이씨는 2002년 4월 ‘아음치유예술교육원’을 세워 장애 어린이와 부모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교육활동을 했다. 이씨는 지금껏 암 수술을 받지 않고 스스로 치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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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옥씨가 그린 붓꽃 민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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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3년 전 문화센터의 민화반을 다니기 시작했다. 80년대 농촌탁아소 운동을 할 때 권력자를 상징하는 호랑이와 민중을 뜻하는 토끼 이야기 등 전래동화를 아이들에게 많이 들려주면서 민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단다. 바쁘게 살다가 뒤늦게 민화에 푹 빠졌다. “옛날 생각이 되살아나서 그림 공부 열심히 했어요. 그리는 쪽쪽 지인들에게 선물을 해 남아있는 작품이 몇 점 되질 않아요.”
민주주의가 잘린 유신시대부터 50년 남짓 농민운동, 여성농민운동, 재야 민주화운동을 해왔던 부부는 이제 “재야 사진가와 민화작가”로 변신했다. 이씨는 민화 15점을, 나 고문은 사진 30점을 추렸다. 부부는 9~15일 광주시 금남로 2가 우영갤러리에서 <사진이랑 민화랑> 제목으로 첫 전시회를 연다. 오프닝 행사는 9일 오후 5시다.
나 고문은 9일 오후 3시 <시사집> 출판기념회도 연다. ‘기다림의 꽃, 그리움의 풍경’이란 주제엔 그의 삶의 철학이 녹아 있다. <시사집>엔 150점의 사진 한 장 한 장에 시를 써 넣었다. 아직도 한을 풀지 못한 채 허기진 남도의 풍광을 사진으로 포착했다. 기다림과 그리움이 눈에 들어왔다. “조급하게 사회를 변화시키려고 했던 젊은 날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어요.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지요. 자신을 비추는 거울처럼 저에겐 사진이 그런 역할을 한 것 같아요.”
농촌·농민운동의 길을 함께 걸어 온 부부는 이제 사진과 민화로 ‘예술’의 길을 함께 걷게 됐다. 이씨는 ‘셀카 전문가’라고 할 정도로 사진에도 밝다. 나 고문은 “아내와 함께 사진을 찍으러 다니면 현장에서 농사 짓는 후배들도 가끔 만나 정담도 나눈다. 어떤 의미에서 이번 전시회는 평생 고생하는 아내한테 바치는 작은 선물이고, 농민·재야운동 등 민주화운동을 해온 선후배와 공감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이씨는 “한 길, 한 목표를 향해서 함께 살아왔다. 부부 이전에 동지이고. 그런데 또 사진과 민화로 만나니 기쁘다”라며 “앞으로 민화의 느낌을 살려 평화와 통일의 염원이 담긴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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