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1.16 05:01
수정 : 2018.11.16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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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규의 1957년작 유화 <밀폐된 창고>. 작가가 직접 막노동자로 일하며 겪은 일본 전후 자본주의사회의 모순적 구조와 하층민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 등을 회화적으로 구현했다. 구획된 창고벽면과 거친 표정의 인간군상 등을 통해 작가의 비판적 목소리를 더욱 확장시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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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립 하정웅미술관 ‘조양규 첫 회고전’
좌익 사냥에 쫓기던 32살 미술가
일본으로 건너가 12년 화단 활동
냉혹한 자본주의 풍경 거칠게 표현
전후 일본 미술계에 큰 반향
1967년부터 소식 끊겨 행방 감감
일본과 남한엔 10여점만 남아
일본인 편집자가 엮은 앨범집
‘동경역’ ‘풍경드로잉’ 등 첫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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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규의 1957년작 유화 <밀폐된 창고>. 작가가 직접 막노동자로 일하며 겪은 일본 전후 자본주의사회의 모순적 구조와 하층민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 등을 회화적으로 구현했다. 구획된 창고벽면과 거친 표정의 인간군상 등을 통해 작가의 비판적 목소리를 더욱 확장시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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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허공에 매달리는 듯한 상태를 벗어나려 한다.”
가슴 절절한 고백이었다. 58년 전 북조선 귀국을 앞둔 32살의 재일동포 미술가는 이런 심회와 함께 “고국의 현실 속에서 격투하고 싶다”고 썼다. 1960년 10월, 일본 전후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화가로 한창 주목받던 조양규는 니가타에서 북송선을 타고 동해 바다 너머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12년간 화업을 닦았던 일본과, 나고 자랐으나 48년 좌익 단속에 쫓겨 밀항하며 등진 남녘 고향 진주와의 영원한 이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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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찍은 조양규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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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철한 좌파 지식인이던 조양규는 일본 화단에서 불과 12년밖에 활동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전후 미술을 대표하는 리얼리스트로 평단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삭막하고 냉혹한 자본주의 도시 구석을 강렬한 물질적 감각으로 포착한 그의 도시 풍경 연작들은 울림이 컸다. 리얼리즘 계열이었지만, 추상적 구도로 옮겨가면서 더욱 냉혹한 현실감을 전해주는 항구의 창고, 호스 널린 맨홀 등을 주된 소재로 삼았다. 화폭 속엔 머리가 벗겨지고 얼굴이 마구 긁힌 노동자들의 아픈 군상들이 드문드문 출몰했다. 진주사범학교를 나와 교사로 일하며 남로당 활동에 참여하다 이승만 정부의 빨갱이 ‘사냥’을 피해 밀항했던 그는 도쿄의 재일동포 거주구역인 에다가와 빈민촌에서 창고지기와 막일꾼을 하며 힘겹게 그림을 그렸다.
작가의 시선은 당시 급속성장하던 일본 사회의 그늘에서 창고지기, 막일꾼, 돼지치기 등을 하며 멸시받았던 동포들의 공간과 삶을 좇았다. 이런 시선은 화면에서 번호가 매겨진 창고의 무정한 벽들이 부각된 격자 구성의 이미지들, 마구 긁혀 벗겨진 피부의 인간 군상, 호스가 지나가고 비루한 인간이 머리를 내민 맨홀 구멍과 인근 땅의 거칠고 황막한 질감으로 나타났다. 모더니즘 미술의 주된 관심거리였던 사물의 물질성과 촉각성은, 거꾸로 조양규 작업에서는 처절한 계급적·민족적 현실 체험을 강렬한 현실비판 메시지로 은유하는 매체가 되었다. 서구에서 유입된 색면 추상의 열기 속에 피상적으로만 흘러갔던 일본의 전후 미술계를 날카롭게 찌르며 활보했던 조양규는 부인과 딸 2명, 화구와 기존 작품들을 싣고서 자원해서 북한으로 갔지만, 북송 7년여만인 1967년 이래 소식이 끊겼다. 지금도 생사는 물론 말년의 삶에 대해 한국과 일본 미술인 모두 어떤 구체적인 정보도 접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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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규의 1958년작 유화 <맨홀 비(B)>. 일본 미야기현립미술관 소장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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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9일부터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조양구 회고전은 1989년 그의 작품을 남한 화단에 처음 소개한 윤범모 미술평론가의 말처럼 만시지탄의 느낌이 앞선다. 북송된 지 58년 만에 그의 고향이 있는 남한에서 이제야 초기 작품들을 망라한 전시가 차려지게 된 건 남한과 일본을 통틀어 현재 남아있는 그의 작품이 불과 10여점밖에 없는 사정에서 기인한다. 일본 화단에서 12년 남짓 불꽃처럼 활동하면서 상당수의 습작과 드로잉, 작품을 내놓았지만, 북송선을 탈 때 100점 이상을 가져갔고, 이후 일본의 화랑가에서는 거의 거래가 이뤄지지 않아 유존 작품이 별로 없는 형편이다. 그럼에도 미술관 쪽과 김영순 미술평론가, 이미나 도쿄예대교수 등의 노력으로 <31번 창고>, <목이 잘린 닭> 등 하정웅 컬렉션 소장품과 <밀폐된 창고>(도쿄국립근대미술관) , <맨홀 B>(미야기현립미술관) 등 현존하는 조양규 대표작이 모두 나왔다. <동경역>(1949~1951년 추정)과 총련계 재일코리안미술작품보존협회가 소장한 그의 북송 이후 작품인 <풍경 드로잉>(1965)이 처음 공개됐고, <인물 소묘>(1953)와 <농부와 소>(1957) 등도 국내 처음 선보이는 작품들이다. 그가 북으로 가기 직전 일본 평론가 8인이 힘을 합쳐 도판과 작품론을 실은 조양규 화집, 일본인 사진가가 조양규의 작업실을 직접 찾아가 찍은 사진들을 20여년 뒤 일본인 편집자가 별도로 엮어 비장해온 앨범집이 공개된 것도 뜻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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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오후 광주시립 하정웅미술관 전시장에서 열린 조양규 탄생 90주년 학술세미나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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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열린 전시회 기념 세미나에 참석한 김영순 평론가는 “분단체제, 재일동포들의 민족차별 현실까지 싸안고 자기체험적 리얼리즘 회화를 길어올렸던 조양규는 분단모순에 희생된 디아스포라(이산)의 화가”라며 “우리 근현대미술사에서 똑부러진 자기 담론을 만들고 창작과 담론, 현실을 일치시키는데 매진했던 보기드문 리얼리스트란 점에서 지금 작가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된다”고 짚었다. 내년 1월20일까지. (062)613-5390.
광주/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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