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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1.19 19:11 수정 : 2018.11.20 16:10

【짬】 그룹 ‘소리모아’ 가수 박문옥·오정묵씨

가수 겸 작곡가이자 음반제작자인 박문옥(왼쪽)씨와 오정묵 미디어넷 대표가 지난 12일 광주의 한 카페에서 1980년대 민중가요 테이프를 만들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나눴다. 정대하 기자

“38년 묵은 카세트 음질은 놀랄만큼 생생하다. 당시의 슬픔과 분노, 자유의 갈망이 호흡마다 느껴진다.”

가수 겸 작곡가이자 음반제작자인 박문옥(63)씨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음반(시디)에 적은 글의 일부다. 이 시디엔 ‘금관의 예수’, ‘보람된 생활’, ‘해방가’, ‘사노라면’, ‘출정가’, ‘미칠 것 같은 이 세상’ 등 당시 운동권 학생과 노동자들이 불렀던 민중가요 29곡이 담겨 있다. 이 노래들은 1980년 5·18 학살 일곱달 뒤인 그 해 겨울에 녹음된 것이다. 박문옥은 “스물다섯 오정묵(62·오미디어넷 대표)이 그 해 겨울 기타 한 대와 녹음기 하나로 밤새워 만든 테이프를 복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이 테이프는 오정묵의 친구 은우근(현 광주대 교수)의 도움으로 만들어져 500개 가량 복사돼 전국으로 퍼졌다. 박문옥은 시디를 복각하면서 테이프 원음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살렸다. 이 테이프는 최연석 목사가 보관해 온 유일본이다. “녹음기 누르는 소리, 테이프 길이가 다 되어 노래 중간에 ‘툭’ 끊기는 것마저 가슴이 뭉클하여 지울 수 없었다.” 박문옥은 “그날 밤 청년 오정묵의 목소리는 오늘도 우리의 심장을 달군다”고 적고 있다. 오정묵은 “느린 박자의 노래도 빨리 불렀다. 내가 불렀던 노래를 지금 다시 들어도 당시 상황이 떠올라 숨이 가빠질 정도”라고 말했다.

오정묵의 노래 테이프는 ‘5·18 노래운동’의 귀중한 자료 중의 하나다. 박문옥은 “소설가 황석영씨도 이 노래를 들었고, 이 테이프 때문에 오정묵이 ‘임을 위한 행진곡’의 첫 가수가 되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실제로 오정묵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처음 불렀던 장본인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2년 4월 황석영·전용호 등 광주지역 문화운동가 10여 명이 영혼결혼식을 한 윤상원·박기순의 넋을 추모하려고 제작한 ‘넋풀이-빛의 결혼식’이라는 테이프에 들어 있는 7곡 중 마지막 곡이었다.

오정묵이 1980년 겨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제목으로 제작한 카세트 테이프가 시디로 복각됐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실린 카세트 테이프는 광주에 살고 있었던 소설가 황석영의 운암동 양옥 2층 거실에서 제작됐다. 밖으로 소리가 새 나가지 않도록 창문을 모두 군용 담요로 가린 채 새벽까지 녹음기 한 대로 작업했다. 오정묵은 전남대생 김종률의 곡 ‘임을 위한 행진곡’의 악보를 처음으로 본 뒤 현장에서 익혔다. “오정묵이 서정적이면서도 약간의 비장한 느낌이 들도록 불렀다. 처음에 녹음한 테이프에 기차 지나가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섞여 다시 한번 더 녹음을 했다.” 테이프 제작에 참여했던 전용호(61·소설가)는 “오정묵은 무대에 서진 않았지만 가수 반열의 실력을 갖춘 꾼”이었다고 기억했다.

오정묵의 38년 전 테이프를 복각하자고 제안한 이는 박문옥이다. 박문옥은 전남대 재학 시절 후배 박태홍·최준호와 함께 포크 트리오 ‘소리모아’를 결성해 1977년 제1회 엠비시(MBC) 대학가요제에서 ‘저녁 무렵’을 불러 동상을 받았다. 박문옥은 “군 제대 후 교사로 재직하면서 1982년께 오정묵의 첫 테이프를 우연히 들었는데, 감동적이었다”고 회고했다. 1983년 교사를 그만둔 박문옥은 광주에서 활동하며 지금까지 7장의 앨범을 내는 등 창작활동을 하면서 광주문화방송 피디였던 오정묵과 ‘음악의 동반자’로 지내왔다.

‘대학가요제 동상’ 박씨 제안으로
‘오정묵 민중가요’ 시디로 부활
80년 겨울 29곡 담아 500개 찍어
2년 뒤 ‘임을 위한 행진곡’ 첫 녹음
“광주 분노 담은 노래 여전히 감동”

내달 12일 복각음반 소개 ‘더힐링’ 공연

특히 박문옥이 1986년 11월 광주에서 지역 최초의 전문 녹음실인 ‘소리모아 스튜디오’를 설립한 것은 의미가 크다. 소리모아 스튜디오에서 제작된 각종 앨범만도 지금까지 100여 장에 달할 정도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민중가요 카세트 테이프였다. ‘광주출전가’로 잘 알려진 범능 스님(예명 정세현)도 20여 장의 앨범을 소리모아 스튜디오에서 제작했다. 박문옥은 “동시대 광주에서 살면서 부른 노래들이어서 민중가요와 대중가요의 구분이 무의미했다”며 “그런데도 광주의 서정적 노래엔 광주의 정서가 흐르고 있었고, 광주에서 만든 ‘운동권 가요’엔 다른 지역과 다른 ‘전라도 애조’가 스며 있었다”고 말했다.

12월 12일 광주 빛고을문화관 소극장에서 열리는 소리모아 공연 홍보물.
박문옥은 ‘오정묵 복각 음반’을 시민들에게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소리모아는 다음달 12일 저녁 7시30분 광주 빛고을문화관 소극장에서 여는 ‘더힐링’이라는 공연의 부제를 ‘빼앗긴 들에도 봄은’이라고 붙여 복각 음반 출반을 축하할 참이다. 소리모아엔 2015년부터 3명의 싱어송라이터 외에 오정묵도 가세했다. 박문옥은 “소리모아 공연에 오시는 관객들에게 오정묵 복각 시디를 무료로 선물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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