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1.24 21:07
수정 : 2019.01.24 21:51
|
김미영 작 <화가의 겨울>(2018·부분)
|
김미영 화가 개인전 ‘칠해진 회화’
|
김미영 작 <화가의 겨울>(2018·부분)
|
겨울, 전나무, 산들바람…
화폭 전체를 온통 율동하는 색채의 덩어리와 붓질 선들로 채워넣은 젊은 화가 김미영(35)씨의 근작들은 이런 제목들이 붙어있다. 작가의 주관적인 내면 세계나 감각의 속살을 표현하는 추상에는 맞지않는 구상적인 느낌의 단어들이다. 하지만, 담백하거나 투명한 빛을 띠는 물감선들이 활발한 붓질을 타고 여기저기서 꿈틀거리는 그의 그림을 보고나면, 이런 제목들이야말로 작가 특유의 감각적 성향을 단적으로 암시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서울 방배사이길 갤러리기체에 차려진 김 작가의 6번째 개인전 ‘칠해진 회화’(Painted Painting)는 이야기나 주제 대신 작가의 감성 자체를 화폭에 부려진 물감의 물성과 붓질의 움직임 자체에 몰입해 풀어놓는 회화적 시도를 보여준다. 전시장에 내걸린 12점의 유화와 볼펜 드로잉들은 색덩어리나 선 등이 리듬감있게 울렁거리며 화면의 전면을 채운 이른바 ‘올오버 페인팅’이다. 추상회화의 전형적 특징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그런데, 이 작품들 대부분이 작가가 일상의 구체적 현실에서 느낀 순간적 경험이나 감각들에서 영감을 얻은 뒤 독특한 변용과정을 거쳐 전면 추상의 이미지를 얻게됐다는 점을 주시할 만하다. 안쪽 창가에 놓여있는 큰 그림 <화가의 겨울>이 이런 과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흰색과 회색, 누런색을 띤 물결무늬 모양의 색 덩어리들이 이리저리 꼬물거리며 얽힌 듯한 추상적 도상은 기실 눈내리는 어느날 작가의 신발에 눈덩어리들이 닿으면서 회색으로 변색되던 그 순간의 강렬한 시각적 기억을 끄집어낸 것들이다. 작가는 머리 속에서 그때의 기억을 색과 색의 조합, 붓질의 방향과 성격으로 개념 정리하고 이를 직관적이고 재빠른 붓질로 풀어냈다. 출입문을 열면 맞은편 벽에 바로 보이는 두점의 대작 <화가의 전나무>도 이런 경험과 개념적 사유를 거쳐 나온 작품이다. 작가는 핀란드 작가 레지던시 작업 당시 목격한 현지의 거대한 전나무숲의 풍광을 전나무 특유의 푸른 빛을 여러 톤으로 나뉘어 드러낸 붓질의 흔적들, 그리고 그 흔적들이 중첩된 색면을 통해 감각적으로 전달한다.
|
김미영 작 <칠해진 그림>(Painted Painting, 2018·부분)
|
대학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가, 영국 왕립예술학교에 유학하며 현대 추상회화의 길로 접어든 이력을 지닌 작가는 작업의 모태였던 동양회화 특유의 즉흥성과 감각적 긴장감을 추상화면에서도 구현시키려 애써왔다. 다른 추상작가들의 작업과 구분되는 선과 색채의 강렬한 역동성과 감성적이면서도 치밀하게 계산된 화면 연출은 이런 노력으로 일궈낸 작가적 특장이다. 1월 31일까지. (070)4237-3414.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