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2.13 17:16
수정 : 2019.02.1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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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야일 작 <구름을 만드는 사람>(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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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사고 이후 10년 만에 개인전
팍팍한 현실 속 한줄기 희망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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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야일 작 <구름을 만드는 사람>(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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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처럼 기와집의 윤곽이 얼비치는 석양의 하늘. 지평선에 내려앉은 구름 덩이 위에서 남자가 땅 파듯 구름을 판다. 벌겋게 물들인 화면 색조와 더불어 그의 허청거리는 몸짓이 허망하게만 비치는 풍경이다.
특정한 자연과 사물을 배경으로 르네 마그리트의 화풍을 떠올리게 하는 초현실적 풍경을 그려온 박야일 작가의 근작들은 어느 작품이든 쓰라린 현실을 상징하는 도상이 깔려 있다. 13일부터 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시작한 그의 개인전 ‘인투’(into·들어가기)의 풍경이다.
전시장엔 음울한 빛의 뭉게구름이나 검은빛의 날카로운 물방울이 주로 나타나는데, 공허해 보이는 집, 뒤태를 보이며 서거나 걸어가는 사람들 앞에 이런 이미지들이 도사리고 있다. 육중한 물방울은 등짐을 짊어지고 가는 아낙 앞에 장애물처럼 놓여 있고, 바닷가의 빈집에도 사람을 대신해 들어차 있다. 그만큼 팍팍한 현실의 벽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는 작가가 수년 전 겪은 고난을 함축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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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야일 작 <구름을 고치는 사람>(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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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작가는 2015년 생계를 위해 작업을 잠시 접고 공사장에서 목수일을 하다 추락 사고로 하반신을 움직이지 못하게 됐다. 그 뒤 재활훈련을 거쳐 새롭게 작업을 모색하면서 10년 만에 다시 차린 작품마당이 이번 개인전이다. 작가는 전시까지 겪은 삶의 굽이굽이를 현실의 무게와 고통, 그리고 희미한 희망의 여운들이 뒤섞인 상징적 풍경을 통해 전달한다. 누른 구름 위에 ‘자라라…자라라’고 되뇌며 물을 뿌리는 할머니, 수평선을 보며 거대한 구름 덩이의 신기루를 피워 올리는 여인, 얼음산·장막·바위 사이 틈으로 가만히 들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면, 작가가 생각하는 희망의 이미지들이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몸의 고난을 겪은 작가가 이제 다시금 세상의 틈새로 제대로 들어가보겠다는 의지와 바람을 농축한 그림들이라고 할 수 있다. 19일까지. (02)733-4448, 4449.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박야일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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