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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3.09 12:58 수정 : 2019.03.10 17:04

전시장에 들어가기 전 출입구 쪽에서 볼 수 있는 돈선필 작가의 설치작품 ‘디버깅 스테이션’. 일본 업체에서 게임을 위해 만들었던 등장인물 공간 등의 배경을 작가 나름의 감성과 생각을 덧붙여 재현했다. 유년시절 게임에 심취했던 기억을 형상화한 일종의 판타지 조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돈선필 작가의 개인전 ‘끽태점’
정교한 피규어상과 창작품 뒤섞어
설치작품 같은 진열장 배치 독특
“피규어는 동시대 문화·욕망 반영”

전시장에 들어가기 전 출입구 쪽에서 볼 수 있는 돈선필 작가의 설치작품 ‘디버깅 스테이션’. 일본 업체에서 게임을 위해 만들었던 등장인물 공간 등의 배경을 작가 나름의 감성과 생각을 덧붙여 재현했다. 유년시절 게임에 심취했던 기억을 형상화한 일종의 판타지 조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장난감일까, 조각품일까. 상품일까, 창작품일까.

국내 청년미술계의 주요 작가 중 하나로 지목되는 돈선필(35)씨의 근작 전시는 두 가지 물음을 떠올리게 한다.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에 등장하는 인물과 괴물, 로봇 따위의 하위 문화 캐릭터들이 미술관에 작품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생기는 물음이다. 업체가 만든 정교한 캐릭터 조형물들, 이른바 ‘피규어’란 것들이 작가의 안목 아래 선택을 받아 창작품과 함께 또 다른 작품이 되었다. 그런 작품들과 이 작품을 제작한 업체의 포장 케이스까지, 전시장엔 아름답고 기괴하고 변태스럽기까지 한, 잡다한 피규어들이 다섯개의 진열장마다 층층이 무더기를 이루며 내부를 채웠다.

전시는 건축 대가 김수근의 대표 작품인 서울 원서동 옛 공간 사옥의 가장 깊숙한 공간인 옛 공연장 공간(현재는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에 차려져 있다. 지난달 20일부터 작가가 열고 있는 개인전에는 ‘형태를 음미하는 공간’이란 뜻의 ‘끽태점’(喫態店)이란 일본풍의 제목이 붙었다. 요즘 젊은 오타쿠(마니아)들 사이에 주목하는 아이템으로 자리를 굳힌 ‘피규어’ 수집품과 창작품을 뒤섞어 선보이고 있는 자리다. 작가의 컬렉션이 포함된 피규어 진열장이 마치 설치작품처럼 부각되는 설정이 독특하다.

돈선필 작가의 전시장에 나온 일부 진열장의 내부. ‘플레이모빌’, ‘인디아나존스’, ‘아스트로시티’ 따위의 피규어 제품 상호가 표기된 케이스와 레고스타일의 피규어상들이 보인다. 이들 사이에 작가가 직접 만든, 기울어지고 덩어리들이 붙은 집 모양의 창작품이 섞여있다.
피규어는 일본과 미국이 세계 시장을 주름잡는 양대 강국이다. 작가는 고등학교 때부터 미국의 피규어 ‘스폰' 시리즈에 빠진 이래로 피규어 마니아들의 성소인 일본 지바현 마쿠하리 원더페스티벌 이벤트를 순례하면서 숱한 컬렉션을 수집해왔다. <에반게리온>, <가면라이더>, <괴도 루팡> 등 일본과 미국의 유명한 캐릭터 피규어들이 칙칙한 빛깔로 미완성품처럼 합성수지를 주물러 인물 군상과 공간을 짓이겨 넣은 창작 신작들과 자리를 나란히 하고 있다. 마르셀 뒤샹이 기성품(레디메이드)을 상대로 작품이라고 지목하며 실행한 개념미술의 시각을 돈 작가는 현대 소비사회의 정교한 장난감 혹은 조형물인 피규어를 통해 새롭게 투시하면서 조각과 장난감, 제품의 경계를 허물고 있는 셈이다. 돈 작가는 “피규어는 특정 조각가 한명이 특정한 의도를 갖고 만드는 일반적인 조각품과는 다르다”고 힘주어 말한다. “피규어는 소비자는 물론 디자인을 하는 원형사, 제품을 대량으로 만드는 업체 등의 이해관계, 욕망 등이 맞아떨어져야 생산될 수 있으므로 필연적으로 동시대 현실과 문화, 욕망들의 단면을 반영하게 된다”는 것이다.

돈선필 개인전 ‘끽태점’ 전시장에 나온 일부 진열장 내부. 여러 종류의 캐릭터 피규어상과 제품을 담은 케이스, 작가의 창작품이 혼재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시장 곳곳의 피규어 진열장과 작가가 과거 게임모델과 피규어의 기억을 토대로 작업한 난해한 구도의 설치작업들은 뚜렷한 메시지나 주장을 담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놓임새 자체로, 청년 작가들이 시대를 바라보고 느끼는 감수성이 기존 미술판과는 전혀 다른 양상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돈 작가는 지금도 회자되는 2015년의 청년작가 직거래 전시장터 ‘굿즈’를 닷새간 꾸린 주역이다. 그때 “우리는 5일간 꿈을 꾸었다”고 했던 그는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서 수집전시공간 ‘취미가’를 다른 기획자와 함께 운영하며 그 꿈을 계속 잇고 있다. 6월13일까지. (02)736-5700.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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