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4.02 11:51
수정 : 2019.04.02 19:56
탁기형 사진전 ‘더 블루’
해뜰녘과 해질녘. 어둠과 밝음이 교차하는 때. 그 틈새의 시간에 나타나는 푸르른 빛. 그래서 사람들은 이 시간대를 ‘블루 아워’라고 부른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마루갤러리에서 4월9일까지 열리는 사진작가 탁기형의 개인전 ‘더 블루’는 생성과 소멸이 공존하는 블루 아워의 아름다움과 서늘함, 아련함을 포착해 보여준다.
그가 기억하고 있는 빛과 색깔의 원초적 체험은 일고여덟살 때 높게 쌓은 장작더미 위로 붉은 노을이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그는 그때 만난 ‘블루’에 대해 이렇게 썼다. “이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의 마법같은 시간이었다.”(작업 노트) 어른이 된 이후 ‘블루’는 희망이자 좌절의 빛이었다. ‘청운의 시기’에 겪은 방황과 비틀거림, 미숙함과 우울이 그의 내면에 블루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다.
지난 2016년 사건의 실체와 현장을 좇는 33년간의 사진 기자 생활을 마친 뒤 그는 꿈의 한 갈피에 끼워져 있는 이 최초의 색을 찾아 헤맸다. 어둠이 아직 물러가지 않은 신새벽에 내려앉은 눈의 질감, 어스름 저녁 디지털 카메라에 담은 담벼락, 나미비아 사막의 데드 블레이(죽은 습지)를 연상시키는 구불구불 솟아오른 나뭇가지, 달빛처럼 내려앉은 바위 표면 등 블루에 잠긴 22점의 작품이 선보인다. 모든 작품엔 ‘블루에 대한 향수’(A Nostalgia On Blue)라는 문구가 번호와 함께 붙었다. 청와대 출입기자로 국외 출장을 다니며 대통령 전용기에서 내려다 본 땅의 다채로운 표정을 담은 ‘하늘에서 본 세상’(2008), 조선시대 내시들이 묻힌 서울 노원구 초안산의 석물을 찍은 ‘로열티’(2014) 등 주로 다큐를 중심으로 개인전을 열어왔던 탁 작가는 “기존 전시와 조금 길을 달리하며 진정한 자유로움을 찾았다”고 말했다. (02)2223-2533.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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