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4.03 00:57
수정 : 2019.04.03 00:57
[짬] 인천 관동갤러리 관장 류은규·도다 이쿠코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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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초 인천 아트플랫폼의 ‘잊혀진 흔적’ 전시장 입구에서 사진가 류은규(왼쪽)·사학자 도다 이쿠코(오른쪽) 관동갤러리 관장 부부가 함께 했다. 김경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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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뒷산에 진달래가 분홍빛 아지랑이를 피워올리는 이맘때면, 봄맞이 소풍과 수학여행의 기대로 설레던 시절이 있었다. 아파트숲에 갇힌 요즘 학생들에게 상상조차 낯선 옛풍습을 되살려준 사진 한 장이 있다. 지난달 말까지 인천문화재단 주최로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열린 3·1운동 100돌 기념 다큐사진전 <잊혀진 흔적>에서 유난히 시선을 붙들었다.
사진에는 81년 전, 중국 지린성 룽징(용정)시의 민족학교인 동흥중 조선인 학생들 전국일주 수학여행 지도가 담겼다. 증기기관차를 타고 룽징을 출발한 학생들은 두만강 건너 회령~함흥~금강산~경성(서울)~평양~신의주~단둥을 돌아 압록강 건너 대련~봉천~장춘~하얼빈까지 돌아보고 있다.
한·일 부부이자 역사 기록작가로 널리 알려진 사진가 류은규(57·왼쪽)·도다 이쿠코(59·오른쪽) 인천 관동갤러리 관장 부부는 이번 전시에 맞춰 사진집 <80년 전 수학여행>도 펴냈다.
“지난 봄 4·27정상회담의 감동이 이어져서 남북 학생들이 100년 그때처럼 만주부터 제주도까지 한반도 종·횡단 수학여행을 하는 그날을 기대하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1930년대 용정 동흥중 조선학생들
경성~평양~하얼빈 등 일주여행 지도
‘80년 전 수학여행’ 사진집 출간
한·일 사진가-사학도로 결혼 화제
1993년 중국 이주해 조선족사 기록 <> “잊혀진 역사 복원시킬 자료관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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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간도 용정의 민족학교 동흥중학교 학생들의 수학여행 지역을 그림으로 표시한 지도. 사진 관동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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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지난달 <잊혀진 흔적> 전시에는 일제강점기 항일 독립운동과 생존을 위해 만주로 이주해야 했던 조선인과 그 후손인 조선족 동포들의 삶까지 중국 유민 100년사를 모두 5부에 걸쳐 소개했다. ‘역사의 증언자들’, ‘그리운 만남’, ‘삶의 터전’, ‘80년 전 수학여행’, ‘또 하나의 문화’ 등이다. 사진집에는 2년 전 같은 제목으로 열렸던 사진전에서 소개한 120장의 수학여행 사진과 엽서 등을 짤막한 설명과 함께 수록해놓았다.
“묵은 숙제 하나를 끝냈어요. 지난 25년간 중국 현지에서 수집한 근대 사진만 7만장이 넘거든요. 이제부터 주제별로 분류하고 출간해 아카이브를 만들어가야 해요.”
부부는 한-중 수교 직후인 1993년 중국 하얼빈으로 이주해 3년간, 다시 2000년부터 10년 가까이 살았다. 아들(명수) 진학을 위해 귀국한 뒤 2013년 근대 개항사 흔적이 남아 있는 인천 관동에 갤러리를 열고 정착했지만 지금도 반반씩 두 나라를 오가며 조선족 생활사를 기록하고 있다.
“생후 6개월된 젖먹이 아이를 안고 아무 연고도 없는 만주로 훌쩍 갔으니 지금 생각하면 무도한 도전이었죠. 중국어를 할 줄 알던 아내의 용기 덕분이었어요.”
실제로 부부의 이주사를 거슬러 가보면, 아내 도다 관장의 거듭된 결단이 돋보인다. 한국말이 워낙 유창해 일부 재일동포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지만 그는 아이치현 도요하시에서 태어난 순수 일본인이다. 1979년 일본사 전공 대학생으로 한국 연수를 왔던 그는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일제 침략사’를 알고 충격을 받았다. 한·중·일 동아시아사에 관심을 둔 그는 한국 유학을 감행했다.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강만길 교수의 고려대 사학과로 편입했다. 88올림픽 통역,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로 연구와 일을 병행하다 중국에 가서 조선족 취재를 한 것도 아내인 그가 먼저였다.
“수교 이전 1989년 혼자 하얼빈을 거쳐 연변에 가서 박창욱 교수의 소개서 한 장만 들고 조선혁명군 박윤골 선생을 비롯한 항일 운동가들을 인터뷰했어요. 중국에서도 한국에서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게 더 놀라웠지요.”
그런 용기 덕분에 도다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직후 일본 영사관에서 심문 받을 때 찍은 사진을 중국 당안국 창고에서 발굴하기도 했다. 그가 이토를 저격한 암살범으로 배웠던 안중근이 한·중에선 침략의 원흉을 처단한 영웅이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가능했던 성과였다.
1990년대 초반 한 주간지의 ‘한국샤머니즘’ 취재를 위해 경희대 서정범 교수와 전국의 무당을 취재하러 다닌 그는 그때 사진기자로 동행한 인연으로 류씨와 결혼까지 감행한다. 부부는 두 집안의 극심한 반대를 극복하고 성사된 결혼 이야기를 털어놓은 <한 이불 속의 두 나라>(1995년·길벗)로 한·일 모두에서 유명세를 얻기도 했다. 도다는 이제 일본에서 알아주는 문화 칼럼니스트로 꾸준히 책을 내고 있다.
중학교 때 눈을 뜬 이래 여러 유명 월간지의 사진기자로 프리랜서 작가로 잘 나가던 남편 류씨에게도 중국 이주는 ‘일생의 결단’이었다. “잡지사에서 요구하는 돈 되는 사진을 계속 찍을 것이냐, 이참에 조선족과 독립군 후손들에 대한 다큐사진에 도전할 것이냐 갈등했죠.” 1982년부터 교통편도 없던 지리산 오지 청학동 사람들의 생애사를 사진으로 기록해온 그는 1997년 연변대학 교수를 맡으며 ‘생활다큐사진’이란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1890년대 첫 간도 이주 이래 항일 투쟁사가 한국전쟁과 분단의 질곡 속에 파묻히거나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어요. 당장 돈도 되지 않고 알아주지 않지만, 나라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자연스럽게 생기더군요. 마침 아내가 역사 전문가로 힘을 합할 수 있으니 ‘운명’이란 생각마저 들지요.”
류 작가는 그렇게 찍고 모은 조선족 이주사를 <잊혀진 흔적>(1998년 도서출판 포토하우스), <잊혀진 흔적 Ⅱ-사진으로 보는 조선족 100년사>(2000년 APC KOREA)를 잇따라 펴내며 지워진 역사를 복원하고 있다.
“이번에 낸 <80년 전 수학여행>도 그렇지만, 역사학계에서 축적된 연구 자료가 워낙 빈약해요. 우리 부부의 노력이 학술적 문화적으로 널리 활용될 수 있도록 자료관이나 박물관을 만들어 공개하고 싶어요.”
인천/글·사진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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