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게와 판소리의 만남을 담은 앨범 <버전>을 발표한 레게 밴드 노선택과 소울소스와 소리꾼 김율희.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신현필(색소폰), 강택현(드럼), 시문(기타), 이종민(건반), 스마일리송(보컬·퍼커션), 김율희, 노선택(베이스·보컬).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흑인 울분 승화한 레게 리듬과
판소리·민요의 절묘한 조화
레게 밴드·소리꾼 의기투합으로
심청가·흥보가 등 8곡 담은 2집 내
“정서적으로 맞닿는 두 음악 장르
외국인들이 굉장히 놀라며 관심
전통을 통해 미래로 나아가는 과정
즐길수 있는 굿 음악 작업해보고파”
레게와 판소리의 만남을 담은 앨범 <버전>을 발표한 레게 밴드 노선택과 소울소스와 소리꾼 김율희.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신현필(색소폰), 강택현(드럼), 시문(기타), 이종민(건반), 스마일리송(보컬·퍼커션), 김율희, 노선택(베이스·보컬).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3월의 마지막 금요일 밤(29일) 서울 홍익대 앞 ‘컨벤트 라이브 펍’. 레게 밴드 노선택과 소울소스가 끈적한 레게 리듬을 연주하자 관객들이 흐느적흐느적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외국인들도 곳곳에 섞여 있었다. 얼마 뒤 황금빛 왕관을 쓴 여성이 나와 마이크 앞에 섰다. “이 뺑덕이네가 심봉사 재산을 먹기로 드는디 꼭 먹성질로 망하던 것이었다∼” 판소리 <심청가> 중 뺑덕의 악행을 이르는 대목을 부른 이는 소리꾼 김율희다. 구수하고 신명난 판소리가 두번째와 네번째 박자에 힘을 주는 레게 리듬과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이를 온몸으로 즐기는 다국적 관객들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무국적의 한판 난장이었다.
“레게가 영국 식민지였던 자메이카 흑인 노예 후손의 울분을 승화시킨 음악이듯, 판소리와 민요 역시 조선 민중의 마음을 해학과 풍자로 풀어낸 음악이죠. 둘은 정서적으로 맞닿는 데가 있어요.” 최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노선택과 소울소스는 두 음악의 배경을 두고 이렇게 설명했다. 노선택과 소울소스는 김율희와 함께 작업한 앨범 <버전>을 지난달 발매했다. 판소리 <심청가> <흥보가> <춘향가>와 남도민요 ‘흥타령’ 등을 레게·덥 장르로 풀어낸 8곡을 담았다. 이질적인 걸 결합한 게 아니라 원래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자연스러우면서도 신선하다.
레게 밴드 노선택과 소울소스와 소리꾼 김율희가 합작해 발표한 앨범 <버전> 표지. 동양표준음향사 제공
정규 2집인 이번 앨범의 출발은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5월 열린 음악 축제 서울뮤직위크 쪽의 제안으로 밴드와 김율희는 처음 호흡을 맞췄다. 김율희가 먼저 판소리와 남도민요를 부르면 밴드가 즉흥연주를 하면서 곡을 만들었다. 서울뮤직위크 첫 무대에 이어 7월 크로스오버 국악 축제 여우락 페스티벌에도 참가했다. 당시 만든 곡들을 뼈대 삼아 앨범 작업에 들어갔고, 그 결과물이 이번에 나온 것이다.
김율희가 서양음악과 협업한 게 처음은 아니다. 2014년 재즈 밴드 서영도 일렉트릭 앙상블과 외국에서 공연을 했고, 지난해 8월 독일 명문 음반사 이시엠(ECM)을 통해 발매된 한국 그룹 엔이큐(NEQ·니어 이스트 콰르텟) 3집에 참여했다. 지난해 평창 겨울올림픽 폐막식에선 크로스오버 밴드 두번째달과 함께 현대적인 판소리를 선보였다. 김율희는 “국악인들만 만나다 다른 음악 쪽 사람들을 만나니 처음엔 다른 세상에 나온 것처럼 낯설고 조심스러웠다. 스스로 확신이 없고 두려운 적도 있었지만, 노선택과 소울소스 멤버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다 보니 편하고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우리야 한국 사람이어서 율희 목소리가 낯설지 않은데, 2017년 미국 시에라 네바다 월드 뮤직 페스티벌에 가니 외국인들이 굉장히 놀라며 흥미를 보이더라고요.”(이종민·건반) “그들이 듣기에 레게는 레게인데 완전히 맛이 다른 레게인 거죠.”(노선택·베이스·보컬) “외국인들도 외국인들이지만, 국악 하는 사람들이 공연 보고 좋다고 해줬을 때 더 흥분되고 신나더라고요.”(김율희)
레게와 판소리의 만남을 담은 앨범 <버전>을 발표한 레게 밴드 노선택과 소울소스와 소리꾼 김율희. 왼쪽부터 신현필(색소폰), 노선택(베이스·보컬), 스마일리송(보컬·퍼커션), 김율희, 강택현(드럼), 시문(기타), 이종민(건반).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앨범에는 수록곡 중 ‘뺑덕’ ‘중타령’ ‘정들고 싶네’를 덥으로 믹스한 버전도 담았다. 덥이란 원곡의 개별 악기 소리를 넣었다 뺐다 하고 볼륨을 줄였다 늘렸다 하며 새로운 느낌의 곡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으로, 레게 장르에서 흔히 사용하는 기법이다. 일본 유명 엔지니어 우치다 나오유키가 작업해 ‘뺑 덥’ ‘몽크 덥’ ‘버리디컬 덥’이라는 별도 트랙을 만들었다. 노선택은 “덥은 사운드 엔지니어가 아티스트가 되어 연주자의 1차 창작 소스를 가지고 2차 창작을 하는 분야다. 우치다의 덥 버전을 듣고 감개무량했다. 그는 우리 밴드의 또 하나의 멤버 같다”고 말했다.
색다른 시도 이후의 행보는 어떻게 될까? “이번 앨범을 통해 얻은 건 ‘전통을 통해 미래로 나아가는’ 자연스러운 걸음에 대한 확신입니다. 앞으로 더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겠죠. 개인적으로 굿 음악에 애착을 갖고 있어요. 힙합, 재즈, 펑크솔, 레게, 덥 등에서 매력적으로 느낀 면모들이 굿 음악에서 더 진하게 묻어 나온다고 느끼거든요. 오늘날의 우리가 즐길 수 있는 굿 음악을 작업해보고 싶습니다.”(강택현·드럼)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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