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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30 19:34 수정 : 2019.04.30 20:19

상하이박물관 ‘동서양 3대가 기획전’
59년 전 파격적 행위예술 보여준
프랑스 거장 이브 클라인 작품
점·선·돌로 표현된 이우환 세계
중국 현대 추상 딩이 화폭까지

이우환 작가가 올해 그린 신작인 <대화>연작. 한가지 색으로 붓질하던 기존 <대화>연작의 패턴을 벗어나 여러 색조의 층이 아련하게 어우러지도록 잔붓질을 한 변화가 보인다.
그들은 `살아있는 붓‘이 됐다.

알몸의 여성모델들은 몸을 새파란 물감으로 뒤발한 채 큰 화폭 위를 뒹굴었다. 오묘한 빛깔, 형상의 윤곽들이 화폭 여기저기 찍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온 추상그림은 아름답고 역동적이었지만, 지켜본 관객은 경악했다.

평생 울트란 마린이란 파랑 빛깔의 영원성을 좇았던 프랑스 미술거장 이브 클라인(1928~1962). 그는 요절 2년전인 1960년 파리 스튜디오에서 미술사에 길이 남을 행위예술을 펼쳤다.`인체측정‘으로 명명한 퍼포먼스는 작업결과보다 과정을, 무형적인 몸짓을 순수의 색깔인 블루톤으로 표현했다. 기존 회화의 개념을 깨어버린 전위예술의 기념비였다.

59년전 외설논란 속에 실연됐던 파천황적 퍼포먼스를 담은 그의 작품들이 한국 거장 이우환(83) 작가의 점과 선 그림, 돌덩이, 유리판과 한자리에서 이미지를 섞었다. 2012년 창립된 중국 현대미술의 본산인 상하이당대예술박물관(피에스에이,PSA)이 만남의 판을 차렸다. 여기서 27일 개막한 이브 클라인, 이우환과 중국 추상화대가 딩이(57)의 3대가 기획전 `도전하는 영혼들‘은 클라인과 이우환 두 대가의 강렬한 콜라보레이션(협업) 무대로 수놓아졌다. 고갱이는 2층의 4전시실. 팔과 다리 몸을 자유자재로 꿈틀거리며 약동하는 59년전 모델들의 몸붓질 이미지들이 세 점의 작품으로 안쪽 벽에 걸리고, 맞은편 벽에는 푸른 붓질로 힘차게 점과 찍거나 선을 그은 이우환의 그림이 걸려 마주본다. 두 작품들 사이 공간 바닥의 유리판 위에 300kg넘는 돌덩이를 놓으며 보이지 않는 자연물 사이의 관계를 담은 이우환의 <관계항> 연작들이 놓였다. 두 거장의 작품들은 서로 마주보면서 독특한 긴장과 조응의 분위기를 빚어냈다. 몸붓질의 흔적인 <인체측정>연작의 분방한 흔적들과 돌에 찍혀 유리판이 쩍 갈라진 <관계항>의 이미지들이 자연과 인공의 미묘한 간극을 드러낸 것이다. 다른 한쪽면에는 특유의 십(十)자 무늬를 화면에 가득채워넣으며 도시의 문화, 역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중국 추상 대가 딩이의 대형 화폭도 내걸려 이우환의 색점, 클라인의 스폰지 조각들과 시선을 맞추게 했다.

전시는 이용우 국립상하이미술대교수와 공옌 피에스에이 관장이 1년간 함께 기획했다. 동서양 회화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화면을 하나의 색으로 채우는 단색조 회화(모노크롬 회화)의 동서양 대가들을 재조명하면서 그 전위적 세계의 배경을 재조명해보자는 뜻으로 만들었다. 주인공은 세 명이지만, 가장 강렬한 이미지를 자아내는 것은 역시 이브 클라인의 푸른빛 대작들이. 도입부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클라인에 대한 관심과 경의를 표시하는 건 이우환 작가의 `무한복도‘`무한계단’ 같은 신작 설치작품들이다.

이 작가는 미술관 정문 앞에 거울을 뒤에 세운 돌덩이로 구성된 <관계항>연작을 놓아 관객을 스스로 비춰보게 만들면서 시선을 끌어들였다. 이어 건물에 들어오면, 이브 클라인에게 헌정한 작품인 `무한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게 된다. 클라인 특유의 푸른색깔을 입힌 자갈돌과 이우환 자신의 작품을 상징하는 흰돌을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양 측면에 깔았다. 그렇게 서서히 돌들을 둘러보며 올라가면 저 유명한 클라인의 풀장과 그 끝에 놓인 딩이의 대형 十자로 채워진 두 화폭을 만나게 된다. `풀장’은 특허를 받은 클라인만의 푸른빛 안료가 수조를 연상하게 하는 거대한 틀 속에 가득 채워져 강렬한 화면을 연출한다. 무한과 순수를 표상하는 이 푸른빛 색상으로 작가는 고향 니스의 하늘, 바다의 색깔을 구현해냈다.

이우환 작가는 전시의 핵심인 4전시실에 이어지는 복도도 클라인 블루를 입힌 조약돌을 깔아놓았다. 푸른빛 복도와 자신의 작품을 상징하는 흰 조약돌을 깐 복도 설치물을 50여m가량 만들었다. 푸른빛 흰빛의 돌들이 갈라지는 중간지점에 관객의 모습과 얼굴을 볼 수 있는 유리 칸막이를 달았다. 성찰과 변화의 공간이다. 이 작가에게 소감을 물었다. 그는 “난 지금 후끈 달아있다”면서 설레는 마음을 털어놓았다.

“전시장을 보면, 나와 이브 클라인의 작업은 통하는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우리 둘은 모든 것을 획일화하고 자연의 질서와 순리를 외면한 모더니즘에 문제를 제기해왔어요. 보이지 않는 것의 의미, 무한에 대한 의미를 탐색해온 아웃사이더였던 거죠. ”

57년전 심장발작으로 숨진 클라인은 이 작가보다 불과 8살 많다. 동세대의 연령대와 더불어 그의 이력과 작품세계가 이 작가와 연결되는 부분이 적지않다는 게 감상의 별미다. 클라인은 1952년 일본에 건너가 수개월간 유도를 배우면서 선 철학에 심취했다. 이우환 또한 일본 불교철학자 니시다 기타로의 영향을 받아 선가의 철학을 탐구하면서 여백과 관계의 작품론을 배양했다. 52년 클라인이 일본 체류시절 살았던 도쿄 부근 가마쿠라가 56년 일본에 밀항한 이우환의 훗날 작업 터전이 된 것이나, 현지에 두 거장의 존재감을 알리게 된 계기가 도쿄화랑 전시였다는 점도 그렇다. 가장 안쪽 5전시실에 나온 이우환 작가의 올해 <대화>신작들도 눈길을 줄 만하다. 한가지 색으로 붓질하던 기존 <대화>연작 패턴을 벗어나 파랑, 빨강 색조의 여러 농도층이 아련하게 어우러지도록 잔붓질을 한 변화가 아련한 미감을 자아낸다. 기획자 이용우 교수는 “이우환은 아방가르드를 상징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모더니즘에 대한 도전과 반박의 내적 과정이 클라인의 전위 작업들과 맞닿는 부분이 있다. 이런 맥락을 도전이란 화두로 짚어보는게 흥미로왔다”고 했다. 전시는 7월28일까지. 상하이/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이우환이 이브 클라인에게 헌정한 설치작품인 ‘무한의 계단’. 클라인 특유의 푸른색깔을 입힌 자갈돌과 이우환 자신의 작품을 상징하는 흰돌을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양 측면에 깔았다.

‘무한의 계단’의 세부.

이우환의 푸른빛 계단을 올라가면 2층에서 ‘풀장’으로 불리는 이브 클라인의 대형 색채작품을 만나게 된다. 특허를 받은 클라인만의 독특한 푸른빛 안료가 수조를 연상하게 하는 거대한 틀 속에 가득 채워져 강렬한 분위기의 화면을 연출한다. 클라인은 무한과 순수를 표상하는 이 푸른빛 색상으로 어릴 적 보았던 고향 니스의 하늘빛과 바닷빛을 구현해냈다.

이우환 작가가 올해 그린 신작인 <대화>연작. 한가지 색으로 붓질하던 기존 <대화>연작의 패턴을 벗어나 여러 색조의 층이 아련하게 어우러지도록 잔붓질을 한 변화가 보인다.

생각에 잠겨있는 이우환 작가. 지난 27일 오후 전시 개막행사 직전 찍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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