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5.01 19:15
수정 : 2019.05.01 19:19
|
갤러리현대의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된 청전 이상범의 1945년작 병풍 <효천귀로>(일부).
|
이상범·변관식 한국화 대가부터
청년 작가·재외 동포 화가까지
로버트 머더웰 회고전도 주목
|
갤러리현대의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된 청전 이상범의 1945년작 병풍 <효천귀로>(일부).
|
서울 북촌 거리에 전시꽃이 활짝 피었다.
율곡로 동십자각에서 북쪽 삼청동으로 꺾여 올라가는 삼청로 화랑가가 요즘 부산하다. 미술사 대가들의 못보던 걸작, 수작들이 잇따라 선보이자 관객들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상범, 변관식 같은 한국화 거장들을 비롯해 재러시아 동포 화가 변월룡,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거장 로버트 마더웰 등 굵직굵직한 작가들의 재조명 전시들이 지난달부터 잇따른다. 가장 아래쪽인 사간동 갤러리현대부터 청와대 춘추관 바로 옆인 공근혜갤러리까지 직선거리로 1km도 안되는 길이지만, 의미심장한 전시들이 많아 제대로 감상하려면 반나절 혹은 종일 발품을 들여야한다.
먼저 발길을 멈추게 하는 게 한국화 걸작 잔치다. 삼청로 들머리 갤러리 현대의 ‘한국화의 두 거장 청전·소정’ 전(6월16일까지). 마른 붓질의 깔깔한 필선으로 금강산을 비롯한 한국 산하의 꼬장꼬장한 기운과 활력을 산수화에 담은 소정 변관식(1899~1976), 안개 낀 듯한 대기를 깔고 차분하고 안정된 구도로 산촌 풍경을 그린 청전 이상범(1897~1972)이 주인공이다. 그들의 40년대 장년기부터 70년대 말년까지의 주요 작품들이 망라되어 신관, 구관에 내걸렸다. 뼛기운 가득한 산악미를 내지르듯 표현한 소정을 금강산 그림의 대명사로 꼽지만, 이번 전시에선 청전이 1940년대 그린 단아하면서도 웅건한 <금강산 12승경>이 구관에 내걸려 신관에 있는 소정의 금강산 그림들과 비교감상하는 재미가 색다르다.
|
재러시아 동포작가 변월룡이 북한 체류시절인 1953년 그린 <조선인 학생>.
|
바로 옆 금호미술관에서는 젊은 작가 지원 프로그램의 15년 성과를 돌아보는 ‘금호영아티스트:16번의 태양과 69개의 눈’의 2부 전시(26일까지)가 열리는 중이다. 정재호 작가의 낡은 건물벽 연작들과 청년 작가들의 다기한 미디어, 설치작업을 본 뒤 위쪽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간다. 현재 러시아 영상작가 안톤 비도클의 우주론 영상전(7월21일까지)과 서구 전위그룹 ‘코브라’에 참여했던 덴마크의 비주류 작가 아스거 욘 개인전(9월8일까지), 빅데이터·인공지능 따위의 데이터기반 작품들을 보여주는 기획전 ‘불온한 데이터’(7월28일까지)를 볼 수 있다. 지금 세계에서 데이터가 권력, 전쟁, 투쟁 등에 활용되는 방식을 예술적 고리를 통해 드러낸 ‘불온한 데이터’ 전을 주시할 만하다. 이스라엘 군이 무고한 팔레스타인 주민을 살해하고도 테러로 뒤집어씌운 행태를 시각 데이터 추적으로 고발한 인권회복 운동단체 ‘포렌식 아키텍처’의 다큐데이터 작품은 전율이 일어날 만큼 충격적이다. 더 안쪽의 아라리오갤러리 삼청과 학고재는 안창홍 작가 신작전과 재러시아동포작가 변월룡(1916~1990)의 회고전을 각각 차렸다. 사실주의적인 인물 초상과 풍경화, 석판화 등에서 서구 거장들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평가를 받은 거장 변월룡의 유화, 데생, 판화 189점을 선보인 학고재 회고전은 새롭게 찾아서 확장된 한국 미술사의 또다른 광맥을 보여준다. 50년대 북한에서 활동할 당시 그린 현지의 풍경과 사람들, 한국전쟁의 참상 등이 선연하게 다가온다. 찬란한 햇빛 아래 인상파적 기법으로 담아낸 그의 금강산 그림을 청전, 소정의 연작들을 떠올리면서 감상하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바라캇 콘템포러리는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1세대 작가로 국내에는 생소한 로버트 마더웰의 회고전(12일까지)을 열어 그의 주요 작품들을 국내 처음 내걸었다. 내전 당시 파시스트군에게 무너진 스페인공화국에 대한 ‘비가’로 이름붙여진 그의 출품작은 흑백 모노톤으로 사각형, 선과 타원형을 화폭에 그려 조합했다. 메마르고 건조한 느낌이 아니라 절규 같은 감성의 울림이 느껴진다. 20세기 모더니즘 그림의 정수로 꼽히는 마더웰 구작들을 보는 흔치않은 기회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