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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5.09 17:43 수정 : 2019.05.09 21:53

8일 오후 공개된 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 남화연 작가의 설치 영상작품 <반도의 무희>. 스크린 옆 전망창 밖으로는 카스텔로 공원의 숲과 바다가 펼쳐져 역사와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2019 국제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 개관

김현진 기획자와 3명의 작가
춤추는 최승희·제주 부당의 굿판…
격변에 희생된 여성 이야기 펼쳐
성 정체성 담은 강렬한 공간 연출

아르세날레 본전시엔 이불 작가의 ‘탑’
DMZ 철조망으로 높이 4m 작품 선보여

국립현대미술관은 ‘기울어진…’ 팝업전
베네치아시내 미술관에선 거장 윤형근 회고전도

8일 오후 공개된 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 남화연 작가의 설치 영상작품 <반도의 무희>. 스크린 옆 전망창 밖으로는 카스텔로 공원의 숲과 바다가 펼쳐져 역사와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묻혔던 여성들의 역사가 빛을 뿜었다

지난 세기 세계를 매혹시켰던 조선 최고 춤꾼 최승희(1911~1967)가 이탈리아 베네치아(베니스)에 나타났다. 스크린 주위 창 너머로 아드리아해의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는 카스텔로 공원의 특설극장에서다. 70~80년 전 무용가가 남긴 발자취가 빛의 실루엣과 춤사위가 되어 공원의 자연에 스며들었다.

오는 11일 개막하는 세계 최고의 격년제 미술축제인 제58회 베네치아비엔날레의 한국관이 9일 개관했다. 자연과 인공무대를 배경 삼아 최승희를 주제로 과거와 현재 여성의 역사를 싱그럽게 펼쳐낸 남화연 작가의 영상설치물 <반도의 무희>가 일단 눈을 잡아끌었다.

2019 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의 정면. 앞쪽 곡면창 부분에 정은영 작가가 작업한 여성 국극 배우의 동영상이 보인다.
한국관의 전시 주제는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지난해부터 전시를 준비해온 김현진 기획자와 남화연, 정은영, 제인 진 카이젠은 최승희, 옛 여성 국극 배우, 그리고 역사적 격변에 희생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고심 어린 연출로 원형의 공간에 풀어냈다. 1995년 세워진 한국관은 내부가 원형의 곡면 얼개여서 전시 연출이 매우 까다로운 곳이다. 김 기획자와 세 작가들은 나름 기지를 발휘했다. 내부 안쪽의 아드리아해가 보이는 핵심 공간은 남화연 작가의 최승희 아카이브 영상이 펼쳐지는 소극장처럼 만들었다. 관객석을 놓되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해 양옆 공간 위쪽에도 구조물을 채웠다. 출입구 정면부의 곡면은 정은영 작가의 국극 배우 춤사위와 연기가 펼쳐지는 대형 화면이 설치됐고, 측면 공간엔 제인 진 카이젠이 제주의 여성들을 취재하며 직접 찍은 무당의 하늘당굿이 아득한 하늘 위로 시선을 끌어올린다. 정은영 작가는 여성들로만 무대를 꾸미는 국극 배우의 옛 연기 영상과 그들의 뒤안길을 담은 자신의 대표적인 영상작을 내놓았고, 이와 함께 몸이 불편한 장애인 배우와 성소수자 배우가 자극적인 전자음악 속에서 절규하고 몸부림치는 강렬한 시퀀스를 만들어냈다. 8~9일 현장을 찾은 국내 상당수 미술인은 일단 내용을 잘 풀어냈다고 호평하고 있다. 중견기획자 이영철씨는 “여성들의 묻힌 역사, 성 정체성 등을 담은 매우 강렬한 작업들이 절묘한 공간 연출을 통해 기운과 메시지가 증폭됐다.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데 성공한 것 같다. 역대 한국관의 공간 연출 가운데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고 평했다. 반면 여성사와 성 정체성을 다룬 세 작가의 메시지가 비슷하고, 관객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을 스펙터클이 거의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베네치아비엔날레의 아르세날레 본전시장에 놓인 이불 작가의 설치작품 <오바드 V>. 휴전선 디엠제트 시설물의 철거 잔해를 녹여 만들었다.
카스텔로 공원의 국가별로 세워진 전시장에서 따로 떨어진 옛 조선소터 아르세날레에서도 한국 작가들의 활약상을 뚜렷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8일 랠프 루고프 총감독이 기획한 본전시의 주요 작품들이 공개됐는데, 비무장지대 디엠제트(DMZ) 잔해로 날개탑을 세운 이불 작가의 설치 작품을 비롯해 강서경, 아니카 이의 작품들이 모두 첫번째 전시장인 공장지구의 주요 공간에 나왔다.

베네치아비엔날레의 아르세날레 본전시장에 선보인 아니카 이 작가의 <바이올로가이징 더 머신>
이불의 작품은 4m 높이의 날개탑 <오바드 V>는 비무장지대 감시초소(GP) 철조망 등을 녹여 만든 발상의 파격을 통해 이념과 기념비의 허망함을 철제 내부의 빈 공간을 통해 표상하고자 했다. 하지만 작가가 지향한 메시지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전달되지 않고 조형적으로 강한 인상을 주지 못한 느낌이다. 루고프 총감독이 선호하는 작가로 소문난 강서경 작가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추억과 이미지를 추상적·개념적인 선과 구성으로 직조한 <그랜드마더탑>, 한국 전통 가무의 움직임을 담은 무보(舞譜)를 모티브로 삼은 화문석 조각 작업을 관객의 핵심 동선에 내놓아 주목을 받았다. 샘과 벌통 같은 생태적 모티브를 연상시키는 아니카 이의 설치 작업도 국내 다른 작가에서 볼 수 없는 색다른 조형적 구도를 선보였다.

베네치아 시내 포르투니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윤형근 회고전.
베니스 시내 포르투니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윤형근 회고전.
비엔날레 연관 전시는 아니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이 아르세날레관 입구의 해군클럽 건물에서 벌인 노순택, 함양아, 문경원-전준호 등 동시대 한국 미술작가 9명의 미술 팝업전 ‘기울어진 풍경들: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11일까지)와 시내 유명 미술관인 포르투니에서 마련한 거장 윤형근 작가의 회고전(11월24일까지)도 이날 공개됐다. 특히 8일 저녁 개막행사를 연 윤형근 전시는 지난해 전시의 아쉬움으로 지적받은 아카이브 공간을 이번엔 베네치아 교회의 종탑이 창가로 들어오는 5층 다락방 공간에 재현했다. 국내 컬렉터의 미공개 작품들도 추가해 <뉴욕타임스> <르피가로> 등 많은 국외 매체 취재진이 몰리는 등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이밖에 카스텔로 공원 입구의 건물에서 갤러리 현대가 주관하는 중견 이강소 작가의 70년대 전위작업들을 소개하는 전시도 열려 눈길을 모았다.

베네치아/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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