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5.27 17:45
수정 : 2019.05.27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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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출신 연극 연출가·배우인 로베르 르파주가 27일 서울 주한캐나다 대사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말하고 있다. 엘지아트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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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9일~6월2일 엘지아트센터]
어릴적 살던 곳 ‘887’ 배경으로
자전적 이야기 풀어내
첨단기술로 무대 극적전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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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출신 연극 연출가·배우인 로베르 르파주가 27일 서울 주한캐나다 대사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말하고 있다. 엘지아트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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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마이크를 받아들자 목소리를 체크했다. 약간 어색한 듯 마주 앉은 기자들을 보며 수줍게 웃었다. 동공이 자리를 찾지 못하고 한참을 헤맸다. 대가라는 수식어가 입 아픈 캐나다 출신 연극 연출가 로베르 르파주는 근엄한 표정으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다른 거장들과 사뭇 느낌이 달랐다. 12년 만에 내한해 27일 주한 캐나다 대사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그는 “나이 드니 대사를 잘 못 외운다” “기계를 못 다룬다”고 ‘고백’하며 권위를 벗어던진 소탈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사실 그는 전세계 연극계의 범접할 수 없는 존재다. 1984년 27살에 <순환>으로 데뷔한 이후 35년간 50편이 넘는 연극, 오페라 등을 만들며 프랑스 최고 권위 훈장 레지옹 도뇌르를 받았다. “현대 이미지 연극의 연금술사”(<가디언>)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다. 쉽게 말하면 그의 연극을 본다는 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감독들의 작품을 보는 것과 다름없다.
그런 르파주의 작품을 한국에서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왔다. 그가 2015년 첫 선을 보인 연극 <887>이 오는 29일부터 6월2일까지 서울 엘지(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달의 저편>(한국 공연 2003·2018), <안데르센 프로젝트>(2007), <바늘과 아편>(2015)에 이어 한국에서 네번째로 만나는 르파주 작품이다. 특히 <887>은 1인극으로 르파주가 연출은 물론 직접 연기까지 맡아 관심이 뜨겁다. 그동안 한국에선 배우로 출연한 르파주의 모습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자전적 이야기인 <887>은 1960년대 어린 시절을 보냈던 퀘벡 시티 머레이가 887번지가 배경이다. 일곱 식구가 부대끼며 사는 모습, 같은 건물에 살던 이웃 등의 이야기를 담는다.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왜 그것을 기억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기억의 메커니즘을 알고 싶었다.” 60년대 정치적·사회적 혁명의 물결 속에서 독자적인 정체성을 형성해갔던 퀘벡의 역사도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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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7’의 한 장면. 엘지아트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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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파주는 전통적인 연극의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첨단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독창적 무대를 선보여왔다. <달의 저편>에선 세탁기 창문이 돌아가며 어항이 되고, 달이 되는 등 변화하는 세트가 화제를 모았다. <887> 역시 무대 위에 미니어처처럼 재현한 세트가 빙글빙글 돌며 현재의 집, 어린 시절의 아파트 등 여러 공간으로 변한다. 르파주는 무대 혁신에 신경쓰는 이유를 “관객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라고 했다. “다른 예술들은 빠르게 신기술을 도입한다. 연극은 단순한 커뮤니케이션이 아닌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넷플릭스로 다양한 콘텐츠를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연극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예술이 됐다. 하지만 연극은 관객과 아티스트의 공감대를 통해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경험을 줄 수 있다.”
그는 스스로를 “언어에 관심이 있는 예술가”라고 정리했다. “언어는 단순한 텍스트가 아닌,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식을 뜻한다. 텍스트, 사운드, 이미지 등 다양한 ‘언어’로 소통하는데 흥미가 있다.” 그의 상당수 작품에서 여러 언어가 등장하는데 <887>에서도 프랑스어와 영어로 계급 사회를 표현했다. 아마도 여기엔 그의 성장 과정이 영향을 끼친 듯하다. 르파주는 이중언어(프랑스어·영어)를 사용하는 퀘벡에서 태어났다.
르파주의 뿌리는 영화에도 닿아 있다. 그는 <고해실>(1995), <달의 저편>(2003) 등의 영화를 직접 연출했다. 르파주는 예술가의 경지에 오르기까지 터닝포인트를 꼽아달라는 질문에 “영화를 만든 것”이라며 “영화의 다양한 경험들이 오히려 연극에 더 집중하게 만들었다”고 답했다.
‘기억’은 <887>의 주제이지만, 르파주가 예술을 통해 말하려는 궁극의 주제이기도 하다. “지금의 시대가 기억을 망각하고 있다. 사람들은 기억을 잃은 듯 살아간다. 수많은 일들이 재난·전쟁을 불러일으켰는데 이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예술가로서 예술의 역할은 이런 기억을 상기시키는데 있다. 역사를 재현해서 기억을 되살리고 사회와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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