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06 14:43
수정 : 2019.06.06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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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그룹 엔시티 127이 최근 캐나다 밴쿠버에서 공연하는 모습.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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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도 높지 않은 신예 앨범차트 11위 껑충
전통적 SM 아이돌 그룹 비해 힙합 요소 늘려
세계적 프로듀싱팀과 협업, 세계 무대로 성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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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그룹 엔시티 127이 최근 캐나다 밴쿠버에서 공연하는 모습.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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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그룹 엔시티(NCT) 127의 앨범 <위 아 슈퍼휴먼>이 최근 공개된 미국 빌보드 앨범 차트 ‘빌보드 200’ 11위에 올랐다. 방탄소년단이 세차례나 이 차트 정상을 차지한 바 있지만 이번에는 대중적 인지도가 높지 않은 엔시티 127이라는 점에서 신선한 결과다.
이런 흐름은 엔시티 127이 지난 한달여간 11개 도시를 돈 북미 투어에서 어느 정도 감지됐다. 필자가 직접 다녀온 로스앤젤레스 공연에선 마이크로소프트 극장에 7000여명의 팬들이 운집했는데, 흥미로운 것은 상당수 관객이 스스로 ‘엔시티즌’(엔시티 127 팬클럽)을 자처하며 앨범 수록곡 모두를 ‘떼창’하는 결속된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미국 현지에서 엔시티 127 팬덤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이 공고한 팬덤은 신보가 첫주에만 2만5000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미국 내 앨범 판매 1위를 차지하게 한 동력이 됐다.
엔시티 127의 성공적인 미국 시장 진출은 케이팝 산업이 지난 수십년간 정교하게 갈고닦아온 시스템의 결실이다. 타이틀곡 ‘슈퍼휴먼’에서 잘 알 수 있듯 이들은 화려한 퍼포먼스와 첨단 사운드로 대표되는 케이팝 본연의 미학에 충실하다. 전통적으로 보컬에 치중했던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아이돌 그룹에 비해 랩과 힙합의 요소를 강화하고 거칠고 솔직한 음악을 추구하는 미국 케이팝 팬덤 트렌드와 발을 맞춘 것이 특징이다. ‘서울’ 혹은 ‘도시’라는 로컬 이미지를 음악과 뮤직비디오에 꾸준히 강조해온 점도 흥미로운데, 이는 ‘지역성’을 제거함으로써 무공간 혹은 무국적의 인공미를 강조했던 과거 에스엠 음악보다 한층 더 유기적이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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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그룹 엔시티 127이 최근 미국 뉴저지에서 공연하는 모습.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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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준비한 면면도 눈에 띈다. 미국 시카고 출신인 쟈니, 캐나다 토론토 출신인 마크 등 북미 출신 멤버를 둠으로써 북미 케이팝 팬들에게 소속감과 일체감을 심어주는 동시에 현지 활동 때 통역 없이 자연스러운 의사소통을 가능케 한다. 미국 최고 레이블 중 하나인 캐피틀 레코드는 공격적 마케팅으로 이들의 미국 시장 안착을 돕고 있다.
무엇보다 엔시티 127의 핵심 매력은 에스엠이 내세우는 ‘송 캠프’ 시스템을 통해 얻은 첨단 음악에 있다. 한국 음악으로서의 정체성이 결여됐다는 비판도 있지만, 현지 시장에 정통한 외국 작곡가들의 감각적 사운드를 빠르게 도입할 수 있다는 장점은 무시할 수 없다. 이번 앨범의 또다른 대표곡 ‘하이웨이 투 헤븐’은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의 히트곡을 만든 세계적인 프로듀싱 팀이 참여해 미국 대중이 선호하는 깔끔한 일렉트로 팝으로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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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그룹 엔시티 127이 최근 미국 시비에스(CBS) <제임스 코든 쇼>에 출연한 모습.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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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성이 부족하다는 아이돌 음악에 대한 비판은 적어도 엔시티 127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소방차’ ‘체리 봄’ 같은 곡들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종종 난해하면서 전위적인 사운드를 내세웠는데, 이는 미국 케이팝 팬들에게 명곡으로 회자된다. 대중적인 실패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차별화된 음악으로 우직하게 승부를 건 것은 결과적으로 수많은 케이팝 그룹이 난립한 시장에서 엔시티 127만의 브랜드를 쌓고 음악적인 신뢰감을 얻도록 했다.
레드오션이 된 국내 아이돌 음악 시장에서 케이팝의 명운은 국외 시장에 달려 있으며, 특히 미국은 수익과 명성을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시장이다. 케이팝 산업이 전방위적으로 시장을 확대해나감에 따라 과거처럼 한국과 아시아에서 먼저 입지를 다지고 북미나 유럽에 진출한다는 공식은 깨지고 있다. 이제 미국 케이팝 팬들은 한국에서의 명성과 상관없이 자신들 취향에 맞는 아티스트를 지지하는 경향을 보인다. 엔시티 127은 국내 팬들이 미처 눈치채지 못한 사이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이 새롭게 주목하는 케이팝 아티스트로 떠오르고 있다.
시애틀/김영대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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