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6.08 21:05 수정 : 2019.06.08 21:22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2일까지 부산 해운대 벡스코에서 열린 국제미술품 장터 ‘아트부산 2019’의 전시 풍경. 지난달 31일 오후 독일 화랑 페 레즈 프로젝트가 출품한 부스의 작품 앞에서 관객들이 대화하고 있다.

리뷰/ 2일 끝난 ‘2019아트부산’ 살펴보니
규모는 채우고 품격은 못채운 미술장터
거장 대가 빼어닮은 작품들 곳곳 내걸려
국제페어 걸맞지 않은 민망한 풍경들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2일까지 부산 해운대 벡스코에서 열린 국제미술품 장터 ‘아트부산 2019’의 전시 풍경. 지난달 31일 오후 독일 화랑 페 레즈 프로젝트가 출품한 부스의 작품 앞에서 관객들이 대화하고 있다.
“세계 미술계 최고의 생존 거장이죠? 독일작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이 나온 줄 알았어요. 색조가 층층이 겹치고 끊기는 리히터 특유의 추상화 같은 이미지가 전시장에 커다랗게 붙어 있어서요. 놀랍고 반가워서 들어가봤는데...”

“인사동 화랑가에서 본 한운성 작가의 그림이 단박에 떠올랐어요. 극사실적인 과일 정물화 같은 작품들이 여러 곳에 내걸렸더군요. 대리만족할 수 있겠다 싶기는 했지만.”

지난달 30일 시작해 이달 2일 끝난 국제 미술품 장터 `2019아트부산‘에 대해 나온 `뒷담화’들이다. `아트부산‘은 주최사 쪽이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시장 이벤트이자 서울 이외 지역에서는 최대 규모의 미술품 장터(아트페어)라고 개최 전부터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행사다. 미술인, 컬렉터들이 부산 해운대 벡스코 전시장에 차려진 현장을 돌아본 뒤 털어놓은 지적들은 홍보 내용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화면이 찢겨진 듯 단속적인 색선이 출몰하는 리히터의 회화, 사과 따위의 과일 모음을 그린 국내 대가들의 정물화들과 빼어닮은 출품작들이 내걸려 혼돈스럽고 민망했다는 감상평들이 적지않았다.

실제로 전시장을 둘러본 기자도 느낌이 비슷했다. 리히터와 한운성 말고도 김창열 작가의 물방울 그림, 전광영 작가의 옛 고서 그림들을 연상시키는 다른 작가의 도상들이 여기저기 나온 것을 목격했다. 이런 작품들은 한결같이 전시장 가장자리나 구석자리에 주로 내걸려 있었다. 비슷한 도상은 아니어도 소품을 점두에 늘어놓아 장식공예품 판매점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도 종종 나타났다. 군소화랑들이 벌인 동네 장마당 같은 풍경이었다.

이와 달리 들머리 브이아이피 프론트에서 곧장 이어지는 아트부산 전시장 중앙 통로쪽 부스들은 작품 수준이 외국 유수의 아트페어와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았다. 국내외 유력 화랑들이 넓직한 부스를 차려놓고 때깔 좋고 독창적인 설치, 회화, 조각 신작들을 줄줄이 내놓았다. 페 레즈 프로젝트, 알만 레쉬, 펄램, 탕 아트 등 유럽과 싱가포르, 홍콩서 날아온 유력 화랑들은 에르빈 부름, 아이웨이웨이 등 유력 작가의 회화, 설치 신작들을 부스에 채웠다. 국내 화랑들도 윤형근, 이우환, 김종학, 박서보, 이건용 등 원로 대가들의 단색조 회화 계열 작품들과 클로드 비알라, 조지프 콘도의 수작들을 걸었다. 부스 사이 프로젝트 공간에는 잉카 쇼니바레, 해리 도노 등의 설치조각과 더불어 국내 거대산업 현장의 풍경과 유럽의 옛 갑옷전사를 찍은 조춘만, 클라우디아 훼렌켐퍼 사진가의 2인 특별전 등이 눈길을 끌었다.

주최쪽은 국외 유력 화랑 유치에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밝혔다. 홍보팀 관계자는 “연중 해외 페어를 다니면서 아트부산 대표와 사무국 관계자들이 유럽서 직접 미팅하고 팔로우업하는 등 공들여 화랑들을 데려왔다“면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전했다.

노력한 만큼 페어 핵심부의 작품들이 주목도를 높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유력 참가 화랑과 국내 군소화랑들의 출품작들은 빈익빈 부익부처럼 수준의 편차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출품한 국내 화랑들 가운데는 평상시 공개 전시를 하지않고 유한층 컬렉터들을 상대로 끼리끼리 예약을 받거나 통보해 작품을 보여주는, 이른바 `프라이빗갤러리‘도 상당수 포함되었다. 화랑가나 미술판에서는 이름도 생소한 이런 화랑들이 넓은 부스를 차지하고 전시하는 모습이 눈에 종종 띄기도 했다.

아트부산 쪽이 전시가 끝난 뒤 발표한 총입장객수는 6만3000명. 지난해보다 3000명 많은 역대 최대 관객들이 왔으며, 유럽 아시아권 주요 화랑들과 작가들이 참여하면서 연일 관객들로 붐볐다고 자랑했다. 화랑가에선 많은 관객들이 찾았다는 것은 수긍하는 분위기지만, 국내외 대가들의 작품을 빼어닮은 출품작 일부의 수준, 화풍을 놓고서 뒷말들이 무성했다. 한마디로, 페어의 신뢰도나 수준 측면에서 여전히 큰 맹점이 노출됐다는 것이다.

대가, 거장들의 작품과 닮았다고 공박할 수는 없다. 개념과 패러디 차용이 시각언어와 기법으로 이미 정착된 현대미술판에서 비슷한 작품이라고 짝퉁이나 표절이라고 몰아붙이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다만, 냉정한 거래를 하는 미술시장의 국제 아트페어는 사정이 다르다. 아트바젤이나 프리즈처럼 권위나 인맥, 전통을 중시하는 국제장터에서 거장 작품과 유사한 미지의 작품들이나 인지도가 없고 검증되지 않은 프라이빗갤러리의 출품은 일차적인 솎아내기 대상이 된다. 컬렉터 고객들의 신뢰성 확보를 위한 일종의 금기다. 이런 허실은 지난해 아트부산에서도 일정부분 지적이 되었던 부분들이다. 올해 장터에선 중심부 화랑들 공간이 더욱 화려한 구색을 갖춘 탓인지 그 대비가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국제 인지도가 낮으니 일단 국내외 유명화랑들은 물론 군소화랑들까지 끌어들이기에 치중하다보니 빚어진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요즘 세계 미술시장은 스위스 바젤아트페어가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등에 잇따라 대형 장터를 차리면서 제국을 구축하는 상황이다. 홍콩에서 매년 3월 열리는 아트바젤 홍콩페어가 한중일을 비롯한 아시아권 미술시장의 투자자금과 컬렉터들을 빨아들이는 상황에서 국내 국제 아트페어의 운영 여건은 앞으로도 더욱 험난해질 가능성이 있다. 국내 최대규모의 한국국제아트페어(키아프)는 화랑협회라는 화랑들 권익단체가 주최하는데, 수준 이하의 작품과 화랑 솎아내기를 거부하는 군소화랑 회원들의 반발을 의식해 경직된 운영 구조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화랑들 단체가 아닌 기업체, 개인이 출연한 사단법인 아트쇼부산이 주도하는 아트부산은 키아프보다 유연하고 가변적인 운영 체계를 갖고있다. 바다도시 부산의 관광 인프라 강점까지 감안하면 잠재력을 지닌 셈이다.

독일 사진가 클라우디아 훼렌캠프가 ‘2019아트부산’의 특별전에 출품한 옛 유럽기사의 갑옷 사진 작업인 <아르모르>연작의 일부.
단, 미술품들을 사고 파는 장사판에서 권위있는 장터로 인정받으려면 품격도 갖춰야 한다. 좋은 입지나 떠들썩한 참가규모로만 결정되는 게 아니다. 국내외 화랑들을 긁어모으는데 급급하고 업자들이 ‘수질관리’라고 이야기하는, 작품의 질적 수준을 관리하지 않으면 장터는 크지 못한다. 신뢰와 평판 문제에서 진일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외국 화랑에 특혜처럼 주는 부스설치 할인 관행도 입도마에 오르내린다. 주최쪽은 “통상 20프로씩 동일할인율을 적용해 유럽 등 외국 참여화랑들에게 부스를 싼 값에 설치하는 혜택을 줬다”고 했다. 화랑가 업주들 사이에서는 국외 화랑들만 참가부스 비용을 확 깎아주는 게 국내 화랑들에 대한 역차별이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심지어 체류비까지 지원해온 것이 아니냐는 뒷소문까지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 올해 아트부산에 서울은 물론 부산쪽 중견 화랑들이 상당수 불참했다. 이런 상황에서 참가해봤자 별다른 매상을 올릴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화랑가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국내 중견 강소 화랑들을 두루 포용할 수 있는 열린 구조, 국외 유명 화랑유치에만 집착하지 않고 일정 수준 이상의 화랑과 작품들을 솎아내는 건실한 운영 체계로 가는 길을 찾는게 숙제다. 주최 쪽의 자랑처럼, 관객이 몇천명 더왔고, 마지막날까지 관객이 전시장을 메우는 장관이 펼쳐졌다고 변방의 장터가 명품행사로 공인되는 건 아니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